*정


1.

정이 들고 있는 중이다.

마주보고 웃는 날이 많아질수록 

함께 뛰어다니는 날이 많아질수록 

서로를 조금씩 조금씩 이해할수록

점점 더 정이 들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계속 정이 들고 있는 중이였으면 좋겠다.


2.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그냥 마냥 너무 작았다. 그래서 이 집도 그냥 패스하고 다른 집을 보러 갔었다. 하지만 결국 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이 그나마 제일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때가 채 타지 않은 하얀 벽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4면의 벽 중 한 면의 벽이 벚꽃 꽃다발느낌의 꽃무늬 벽지가 조금은 거슬렸지만) 기본 옵션으로 있던 책상은 아예 빼버리고, 책상이 있던 옷장과 냉장고 사이를 책장과 서랍장을 사서 끼워넣었다. 전자렌지가 없는 것을 당장은 깨닫지 못했었는데, 곧 그 사실을 깨닫고 저렴하고 최대한 사각형모양으로 버튼이 튀어나와있지 않은 전자렌지를 사서 냉장고 위에 올려두었고, 신발장이 없는 것이 단점이라 다이소에서 다용도 정리함 큰 것을 두개 사와서 신발장 대용으로 사용했다. 여름엔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무지 더웠고, 2층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빨래 말리기에 애를 수차례 먹었다. '이 집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해가 잘 드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조금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친구들이 소인국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집은 작고 아담하다) 우풍이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바람이 잘 통하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지금보다 방음이 더 잘 되는 집으로 이사가야지' 등 이사갈 이유들은 참으로 많은데, 그래도 나름 나의 공간이라고 집에 들어오면 편안하고 아늑하고, 안정감이 들었다. 물론 영원히 내 집이 아니니, 언젠가 이 집에서도 떠날 날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말 '그 날'이 내게 성큼성큼 찾아와버렸다. 나의 한 젊은 날의 안식처가 되었던 이 집을 기억해야지. 마음 속에 고이 담아둬야지.


3.

한때 어떤 정 뒤에는 의무감이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의무감이 정을 앞서나가버려 더이상 정이 의무감을 따라오지 못할 때,

공허함이 정 뒤에서 바짝 쫓아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공허함을 더이상 감수할 수 없었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

http://doranproject.tumblr.com/



'도란도란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8.열매  (0) 2017.12.31
207.적응  (0) 2017.12.24
206.정  (0) 2017.12.17
205.반짝임  (0) 2017.12.10
204.찬란한 계절  (0) 2017.12.03
203.병(病)  (0) 2017.11.26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