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라떼

어느 흐렸던 주말, 목티에 초록색 가디건을 입고 한때 좋아했던 체크무늬 패턴의 코트와 새빨간 목도리를 하고 집에서 나왔다. 여름엔 별로 멀게 느껴지지 않았던 거리인데, 특히 겨울만 되면 그렇게 홍대역에서 멀게 느껴지는 산울림 소극장 쪽까지 열심히 '돌아갔다'. 홍대역에서 경의선 방향으로 먹자골목을 쭉 따라 바로 올라가는 길도 있었지만 까마득한 과거에 홍대 바로 옆 편의점(사라진지 오래다)에서 알바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고 싶어서 괜히 홍대 앞까지 쭉 걸었다. 그리고 미술학원 거리를 지나 걷다보면 좋아하는 카페가 보이기 시작하고, 은은한 커피향을 맡으며 라떼를 주문하고 창가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기약도 없이 잡은 약속이지만 괜히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터라 신이 났었다. 얼마 채 지나지 않아 기다렸던 사람이 등장했고 깔깔대고 웃으며 함께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이제 그 사람도, 그 카페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젠 겨울이 되어도, 한국에 다시 가도 그 사람과의 약속을 잡지는 못하지만 언제든 그 카페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에서야 그 카페도 작년에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아쉽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던 카페였는데, 우습게도 난 그 카페의 이름이 단번에 떠오르지 않아 이런 내가 황당해지면서 과거 추억을 더듬어본 후 카페 이름을, 그 카페에서 즐겨먹던 메뉴 이름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 카페를 잃었다는 허탈함이 그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들이 흐르며 아쉽게도 하나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되짚어보게 된다. 그렇지.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말이 있듯, 그 마음이 다른 무언가로 다시 채워지겠지. 문득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더 허망해진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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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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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직전의 커피

그시간 2016. 9. 28. 20:30


가을이 오기 직전의 커피.

향도, 맛도, 테이블도 너무 좋아 

다음에 꼭 다시 오고 싶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의식적으로 가야 할 것만 같았던 곳.

통유리가 인상적이여서 함박눈이 펑펑오는 겨울이나 천둥번개가 쾅쾅 치는 여름에 또 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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