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1.

식사를 하고 배가 부르면 산책을 하자고 100번 중에 99번은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은 배가 부르지도 않고, 부러 산책을 하지도 않는다.

단지 무더운 여름날이여서 입맛을 잃은 건 아닐까 생각도 해보고,

혹여나 내 입맛에 음식이 맞지 않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보지만,

내 체중과 하루에 쓰이는 에너지의 양을 지탱하기 위한 정도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수저를 내려놓는다.

그렇다고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 일정한 몸무게였고, 여름이라 조금 더 살이 빠지면 빠졌지 더이상 찌진 않았다.

예상하기로는 아마 음식을 먹고 배를 채운다는 생각보다 그 이면에 완전 다른 생각들이 엉켜있어서 그런건 아닌가싶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머릿 속은 이미 다른 생각들로 엉켜있고, 그러니 음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밖에.

맞다. 요즘 나는 갈등과 고민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미 답이 정해져있는 답정너의 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충분히 갈등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때 나는 충분히 갈등하고 고민할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너는 내가 처음 봤을때, 완전 로봇인 줄 알았어. 로봇같이 매일 새로운 앱을 써보고, 또 써보고 그러잖아.'

그 당시 계속해서 흥미로운 앱이 끊임없이 나올때였고, 지금도 앱스토어를 두리번거리지만 그때처럼 매일매일 받고 있지는 않았기에

저 말이 상당히 내게 크게 와닿았다. 내가 저렇게 보였구나. 내가 저런 사람이였구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굉장히 정신적으로 약해져서 멘탈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는데.

원래 나는 엄살을 부리면 안되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해서 꾹 참고 조용히 넘어갔던 자그마한 일들에도

괜시리 엄살도 부려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이렇다저렇다 투정도 한번 부려보았다. 내가 이렇게 약한 소릴 한 적이 있었던가.

다시 학교에 복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서 그나마 내 삶이 정상궤도에 올랐다. 

어쩌면 모든 것은 자존감 싸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일도, 사랑도, 우정도, 여행도, 내 삶도, 내 존재자체도. 이 모든 것이 자존감 싸움이 아닐까.

내 자신과의 싸움이고,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고, 지키는 것에 더 나아가 높이고, 높이는 것에 더 나아가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필승법이 아닐까.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나는 다시 굳건해지리라 믿고 있으며,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갖는 것이 지금의 나에겐 최우선이다.



2.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쑤시는 듯한 기분이였다.

아직 해가 있는 상태여서 산책하기는 내키지 않았고,

이럴땐 운동이 최고지,라는 생각으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 헬스장에 갔다.

아무도 없겠지,라는 생각에 헬스장 문을 열었는데

30대 중반 정도는 되보일까.

한 여자가 요가매트 위에서 열심히 요가 동작을 하고 있었다.

운동할때는 렌즈를 끼지 않기에 자세한 얼굴은 보지 못하고 흐릿하게 몸의 윤곽선만 보였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요가와 운동을 엄청 오래한 포스가 풍겼다.

내가 이 날 헬스장에 간 큰 목적은 엄청나게 땡기는 배의 근육통 때문이었다.

4일 전 쯤에 윗몸일으키기를 무리하게 하고나서 생긴 근육통이였는데,

그나마 조금 완화된 시점에서 다시 윗몸일으키기를 해보자는게 가장 큰 목적이다.

사실 2일 전에도 헬스장에 왔었다.

윗몸일으키기를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배가 아파 20개이상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누워 다리를 들어올렸다내리기를 반복해봤는데  마치 근육을 쥐어짜는듯한 통증에 눈물이 고였다.

젠장. 그래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오자는 마음에 다시 헬스장을 찾았다.

열심히 요가하는 여자랑 나랑 단둘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티비를 켜는 소리가 났다. 

티비는 런닝머신에만 달려있기 때문에, 이제 요가는 안하고 런닝머신을 하려나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티비만 켜놓고 다시 요가매트로 돌아와서 요가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헬스장에는 음악이 따로 흐르지 않기에 그 여자와 나는 서로 침묵을 지키며 운동을 하다가

가끔 오는 근육통에 신음소리같은 비명소리만 서로 냈었는데, 그 침묵이 뭔가 어색했나보다.

덕분에 티비소리는 운동하는 헬스장의 백색소음이 되었고, 그 여자와 나는 운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3.

'소리없이 아파하거나 기뻐하는 시간동안에도

가을은 문득 오고 있었어

그러니 오늘도 마음껏 쉬고, 웃고, 행복하자.

오늘이 아닌 어떤 날이라도 우리는 계속 행복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구와도 행복할 수 있어

가을이 온다.

우리는 정말로 오늘도 내일도 행복하자' 라는 내용의 메일이 도착했다.

아마 이 메일을 받아본 난 행복에 겨워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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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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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산책코스-

그시간 2011.04.23 01:33




밍이랑 오늘은 기필코 운동을 해보자 해서 나간 산책코스-
집 앞 공원이다 :)
늦은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덕분이 밍이랑 둘이서 아이패드로 음악 제일 크게 틀어놓고
운동기구도 요것조것 많이하구
이리저리 미친듯이 걸어다니고.
푸헤.

그리고 비온 후 갠 날씨라 산뜻한 공기가 날 더욱 행복하게 했다.
여름되면 정말 괜찮을 곳일텐데.
여름이 되면 여긴 이미 안녕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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