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간격


알고 있다. 어느 때 얼굴을 붉히게 되는지. 어떤 주제에 아둔한지. 어떤 질문에 정색아닌 정색을 하는지. 어떤 문제에 삐걱대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아주 닮지도 않았으며, 어느 부분에선 감정의 각도가 첨예하게 다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의 슈퍼맨이 될 수 없으며, 산타할아버지도 될 수 없다. 우리는, 뾰족하고 정확한 독심술이 있지도 않으며, 그저 지금까지 경험에 의하여 판단하고 움직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에 했던 경험일지라도 현재, 그리고 미래에는 과거와 같게 행동하지도 않을 뿐더러, 과거 시점의 그들도, 우리도, 모두 사라졌기에 경험이 모든 것에 대한 정답이 될 수 없다. 가치관을 미워하기엔 사람을 미워할 수 없으며, 했던 행동을 타박하기엔 현재의 가치가 자칫 녹슬어 버리게 된다. 다만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올바르면 더 좋겠지만, 딱히 아니여도 좋다. 아직 앞엔 바다같은 시간이 있다.) 같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연습을 하고, 노력을 하다보면 엇갈리지는 않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아직은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고, 해보고 싶은 말들도 많기에 그것들은 끝없는 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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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것

오늘은 조금 다른 길로 출근을 해보았다. 항상 같은 길만 걷기엔 재미가 없었고, 빤히 여러 갈래의 길들이 끝에서 합쳐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다른 길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평소와는 달랐던 그 길에는 오른 쪽에 쇠창살 담이 주욱 늘어져있었는데, 그 담 위로 장미넝쿨(같다)들과 이름모를 나무 줄기들이 서로 질세라 파랗게 잎사귀를 매달고 삐죽삐죽 튀어나와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잎사귀를 뽐내는 줄기들 덕분에 자연스레 그늘이 생겨 햇빛을 피해 그늘로 걸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조명등을 켰다. 집에 있는 조명등은 잘 때만 사용하는데, 보통은 자정을 가뿐하게 넘기고 1~2시쯤 잠자리에 들 때 켠다. 하지만 오늘은 밤 11시를 조금 넘겨 이불을 덮었다. 오늘 하루의 일들 중 몇 가지를 머릿속에 상기시켜보았다. 그리고선 괜한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이때 저 행동을 했으면 어땠을까. 쟤가 저런 말을 했으면 어떘을까. 상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자연스럽게 잠에 들게 하였다. 다음날에는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에 일어났다. 일어날 때도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마음 편히 늦잠을 자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평소에 잘 안하던 귀걸이를 했다. 귀걸이는 사도사도 끝이 없고, 자꾸만 자꾸만 새로운 디자인이 나와서 아마 죽을때까지 쇼핑할 수 있을 것 같은 물건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엄청 손이 자주 가는 귀걸이가 있고, 막상 샀지만 잘 안하게 되는 귀걸이가 있다. 손이 가는 귀걸이들은 첫 번째 서랍 속에 들어있으며, 자주 안하는 귀걸이들은 두 번째 서랍에 들어있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다 입고, 귀걸이를 해야 할 차례인데, 오랜만에 두 번째 서랍을 열어서 귀걸이를 골랐다. 괜히 새 귀걸이를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 서랍에는 내가 잊고 있었던 귀걸이들이 많았다.

오늘은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고 싶었다. 보통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데, 그것도 대낮에 집에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격상 낮에 집에 있는 날이 많이 없다.) 빨래를 널고,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키고, 밝게 형광등을 켜고, 베개를 등받이삼아 벽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데, 좋은 향기가 날아왔다. 빨래에서 살랑살랑 섬유유연제 향과, 창문 앞에 둔 디퓨저의 향이 섞여 코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이런 낮이 오래도록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꼭 하고 싶었던 낯간지러운 말이 있었는데, 뭐도 해본 사람이 잘한다고,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을 하려고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했다. 걸으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면서. 괜히 혼자 두근두근하며 그 말을 할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자 머릿속엔 그 말이 빼곡한데, 괜히 다른 말만 하다가 이야기를 마쳤다. 오늘도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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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1. 전 괜찮아요
사실 걱정이라는 건 전부 날 생각해주어서 하는 말들이지만 듣기 불편한 걱정이 있다.
걱정이라는 말을 무기삼아 내가 임하고 있는 삶의 이곳저곳을 함부로 찌르는 경우를 종종 만난다.

그런 걱정은 안해도 돼요.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내심 그 걱정의 저의가 의심될 때도 있어요.

2. 기준
"네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사는 방식을 이해해주어서 좋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사실 난 너의 방식을 전부 이해해주기 보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었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기준이였다.
나와 하루의 시차가 조금은 있더라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던 그 때가 있었기에,
적어도 내가 원하는 때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었기에,
네가 그렇게 느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3. 행운
동생과 나는 서로 적지 않은 시간을 떨어져 있다가 다시 한 집에서 산 적이 있다.
각자의 삶의 방식을 고수해왔던 우리는 정말 많이 부딪쳤다.
나는 동생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동생이 너무 예민해졌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싸울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릴 적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주 부딪쳤고,
그 갈등에 알게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인 나는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고, 동생과 나는 서로 합의점을 찾아갔고, 집은 평화로워졌다.
어릴 적부터 함께 한 가족이라도 확연하게 차이나는 삶의 방식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하물며 각자의 히스토리도 모른 채 만나는 사람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잘 맞는다'라고 생각이 든다는 것은,
상대방과 내가 정말 삶을 임하는 태도가 유사하거나,
상대방이 나를 엄청나게 잘 이해해주고 있거나,
내가 상대방을 잘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
이 세 유형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이 되는데,
저 유형을 형성하고 있는 관계 자체가 귀중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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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1. 보물찾기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마음을 바로잡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
하지만 잊고 지냈던 것들에 대해 떠올려본다.
맞아. 
난 새로운 걸 아는 것을 좋아했지.
괜시리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았지.
처음 듣는 주제의 이야기를 좋아했지.
뭔가 내 마음을 들끓게 하는 대화를 좋아했지.
내 마음이 일렁거리게 하는 사람을 좋아했지.
담백한 노래를 좋아했지.
조금은 느리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좋아했지.
정제되지 않은 질문을 좋아했지.
잊고 있었지만 좋아했던 것들을 물 흐르듯 떠올려보며,
숨겨두었던 보물을 찾은 것처럼 입꼬리가 올라갔다.

2. 어느 대화
달리기를 하면 숨은 가빠지고,
가슴은 터질 것 같고,
얼굴은 심각해지지만,
잡다한 생각들은 정리되고,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만 남게되요.
그래서 달리는 건가봐요.

3. 살다보면
10 Things I hate about you에서 캣이 하는 명대사를 들어보면,
그의 여러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를 싫어하지 않는 내가 싫다고 그랬다.
캣도 내면의 프레임이 깨지는 순간이겠지.
나도 그렇다. 머리로만 판단했던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4년 전인가.
내 의견의 90%이상을 반대했던 이가 있었다.
그를 보며 마음 속으로 생각했었지. 
저 사람은 나랑 생각의 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지속될 수 없는 인연이겠지.
하지만 그와 나는 지금까지 종종 밥을 먹고, 웃으며 대화하고, 커피를 마신다.
살다보면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고, 당연할 것만 같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변할 때도 있다. 
보편적인 것들이 나에겐 보편적이지 않을 때가 많았고, 그것들을 보편적인 기준에 맞추려고 하다보면
수많은 갈등과 오해와 마음앓이가 뒤따르고, 그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또 하루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도 했다.
세상에는 100% 나에게, 내 기준에 맞는 사람이 없다고.
결국 그 맞지 않는 차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정하느냐에 따라 결말이 다른거라고.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어떠한 부분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면,
그 사람과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내 자신의 그릇이 작은 것인가.
아니면 진정 그 사람과 본질적으로 맞지 않은 것인가.
이런 딜레마에 종종 부딪히기도 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늘 변수였지만.
경험을 많이 하고,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에 수렴하는 실마리라는 사실을
항상 유념해두어야지.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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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

궁금했다.
마음이 궁금했다.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힘을 얻고 싶었다.
우린 계속 함께하고 싶어하고,
그러려고 노력하는 와중이니,
과정에 있어 더 많은 동기를 부여하고 싶었다.
듣고 싶었다.
너의 인생에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삶에 있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냥 너의 진심을.
좋아하다, 사랑한다, 따위의 말들 말고,
네가 생각하는 나를.
삭막한 세상에서,
숨이 막히는 세상에서,
사랑을 받고 있구나,
애정어린 시선이 있구나,를 느끼고 싶었다.
반가운 마음에 ,
그 마음들이 반가워서,
먼저 그 마음들을 아는 체 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기뻐하며 했던 이야기는,
영문모를 비꼬음으로 다가갔고,
그렇게 들렸다는 너는 내게 바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아는체 했던 나는
너무 무색해지며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서운한 마음에 이야기했던 것들은,
되려 성향이 다르다는 말들로 되돌아왔고,
속상한 마음에 이야기했던 것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들로 되돌아왔고,
섭섭한 마음에 이야기했던 것들은,
앞으로 계속 그럴까봐 걱정이 된다는 말들로 되돌아왔고,
아쉬운 마음에 이야기했던 것들은,
할 말이 없고 어렵다는 말들로 되돌아왔다.
어떤 상황이든 내게 다정하길 바랐고,
나를 포용해주길 바랐고, 감싸주길 바란 마음들은
너무나도 딱딱하고 감정없는 너의 말에 와장창 금이 갔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다칠새라 두려워
문을 닫고 어딘가로 꽁꽁 숨어버렸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파하며 우는 것 밖엔 없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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