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1. 보물찾기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마음을 바로잡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
하지만 잊고 지냈던 것들에 대해 떠올려본다.
맞아. 
난 새로운 걸 아는 것을 좋아했지.
괜시리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았지.
처음 듣는 주제의 이야기를 좋아했지.
뭔가 내 마음을 들끓게 하는 대화를 좋아했지.
내 마음이 일렁거리게 하는 사람을 좋아했지.
담백한 노래를 좋아했지.
조금은 느리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좋아했지.
정제되지 않은 질문을 좋아했지.
잊고 있었지만 좋아했던 것들을 물 흐르듯 떠올려보며,
숨겨두었던 보물을 찾은 것처럼 입꼬리가 올라갔다.

2. 어느 대화
달리기를 하면 숨은 가빠지고,
가슴은 터질 것 같고,
얼굴은 심각해지지만,
잡다한 생각들은 정리되고,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만 남게되요.
그래서 달리는 건가봐요.

3. 살다보면
10 Things I hate about you에서 캣이 하는 명대사를 들어보면,
그의 여러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를 싫어하지 않는 내가 싫다고 그랬다.
캣도 내면의 프레임이 깨지는 순간이겠지.
나도 그렇다. 머리로만 판단했던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4년 전인가.
내 의견의 90%이상을 반대했던 이가 있었다.
그를 보며 마음 속으로 생각했었지. 
저 사람은 나랑 생각의 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지속될 수 없는 인연이겠지.
하지만 그와 나는 지금까지 종종 밥을 먹고, 웃으며 대화하고, 커피를 마신다.
살다보면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고, 당연할 것만 같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변할 때도 있다. 
보편적인 것들이 나에겐 보편적이지 않을 때가 많았고, 그것들을 보편적인 기준에 맞추려고 하다보면
수많은 갈등과 오해와 마음앓이가 뒤따르고, 그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또 하루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도 했다.
세상에는 100% 나에게, 내 기준에 맞는 사람이 없다고.
결국 그 맞지 않는 차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정하느냐에 따라 결말이 다른거라고.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어떠한 부분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면,
그 사람과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내 자신의 그릇이 작은 것인가.
아니면 진정 그 사람과 본질적으로 맞지 않은 것인가.
이런 딜레마에 종종 부딪히기도 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늘 변수였지만.
경험을 많이 하고,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에 수렴하는 실마리라는 사실을
항상 유념해두어야지.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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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

궁금했다.
마음이 궁금했다.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힘을 얻고 싶었다.
우린 계속 함께하고 싶어하고,
그러려고 노력하는 와중이니,
과정에 있어 더 많은 동기를 부여하고 싶었다.
듣고 싶었다.
너의 인생에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삶에 있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냥 너의 진심을.
좋아하다, 사랑한다, 따위의 말들 말고,
네가 생각하는 나를.
삭막한 세상에서,
숨이 막히는 세상에서,
사랑을 받고 있구나,
애정어린 시선이 있구나,를 느끼고 싶었다.
반가운 마음에 ,
그 마음들이 반가워서,
먼저 그 마음들을 아는 체 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기뻐하며 했던 이야기는,
영문모를 비꼬음으로 다가갔고,
그렇게 들렸다는 너는 내게 바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아는체 했던 나는
너무 무색해지며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서운한 마음에 이야기했던 것들은,
되려 성향이 다르다는 말들로 되돌아왔고,
속상한 마음에 이야기했던 것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들로 되돌아왔고,
섭섭한 마음에 이야기했던 것들은,
앞으로 계속 그럴까봐 걱정이 된다는 말들로 되돌아왔고,
아쉬운 마음에 이야기했던 것들은,
할 말이 없고 어렵다는 말들로 되돌아왔다.
어떤 상황이든 내게 다정하길 바랐고,
나를 포용해주길 바랐고, 감싸주길 바란 마음들은
너무나도 딱딱하고 감정없는 너의 말에 와장창 금이 갔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다칠새라 두려워
문을 닫고 어딘가로 꽁꽁 숨어버렸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파하며 우는 것 밖엔 없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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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1. -
사랑은 너무나도 현실인 것이라,
무얼 바라기도, 무얼 요구하기도, 무얼 원할 수도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내뱉기에는 무색해진 단어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표현하기에는 내게 서먹한 감정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이제 표현받기엔 이리저리 겉을 떠도는 마음갈피들을 잡을 힘조차 부족한 감정이다.
자존심은 사랑을 무심하게 스치고,
자존심은 사랑이라는 것을 마치 까맣게 잊은 것마냥 거리낌없이 내세워지고,
자존심은 사랑에게 한 톨의 배려도 용납하지 못하고,
이기심은 사랑을 비웃듯 무시하고,
현실은 사랑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조차 모르게 한다.
그 어느 곳에도 로맨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2. -
그는 쿨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였다.
그는 그냥 내게 무심했던 것이였다.
그는 내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였다.
그는 절대 쿨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내게만 다정하게 대하는 줄 알았다.
나는 그에게 전부인 줄 알았다.
나는 그가 나를 많이 그리워하는 줄 알았다.
나는 그에게 감성적인 존재인 줄 알았다.
나는 오만했으며, 어리석었다.

3. -
사랑은 잊혀질까 두려워 항상 불안함에 몸을 떨었고,
사랑은 사랑이 혹여라도 질릴새라 토로하지 못했고,
어쩌다 내뱉은 불만이 사랑에 대해 생채기가 날까봐 두려웠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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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

1. Life is
죽게 되는 순간이 닥치면 지금까지 살았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는데,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일 경우 그 주마등을 이루는 기억들이
어떤 기억들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것들을 기억하려고 했다.
그런데 과거를 기억하려고 애쓰니, 
애써 잊고 싶었던, 좋지 않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좋지 않았던 순간들이 하나 하나 기억해내는 나도 웃기지만,
애써 떠올린 내 자신 덕분에 우울해진 나도 웃겼다.
만약 내가 죽을 고비에 나의 좋지 않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면
더 우울해져서 차라리 죽고싶은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아니야, 역시나 죽음은 두려운 것이고, 아무리 잊고 싶은 순간들이 와도
내가 살아있는 것이 곧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끝을 맺었다.
근데 정말 살아있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그렇겠지?

2. -
억지로 하는 모든 것들은 전부 슬프다.

3. -
진심을 다해 마음을 표현해도,
아닌 건 아닌거고, 통하지 않는건 통하지 않는 것이였다.
진심은 아무 힘이 없다.
가여운 마음의 종류일 뿐이다.
씁쓸하다.

4. -
의미가 없어져버린 순간들.
의미 없는 대화들.
의미 없는 물음도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우울하고, 속상하고, 슬퍼져서
아예 생각하지 말까도 싶었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내가 들은 말들은 결코 내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날카롭고 잔인한 말들.
난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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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1. 죄책감
집 앞 복도 끝에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그곳은 타칭 택배함으로 이 건물 택배는 층마다 있는 보일러실에 배달된다.
우리집 호수가 매직으로 크게 쓰여져 있는 택배상자가 두 개 있었다.
두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하나는 저번주에 주문한 블라우스였고, 또 하나는....
피크닉 세트?
난 피크닉 세트를 시킨 적이 없다.
오늘따라 택배 상자를 바로 칼로 뜯지 않고 무심코 택배 상자 겉에 쓰여져 있는
내용물을 읽어본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소를 확인해봤다.
옆옆집 택배였다.
어떻게 된건가 생각해보니,
택배 아저씨가 깨알같이 작은 폰트 사이즈로 붙어있는 주소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배달하기 위해
매직으로 호수를 크게 써 놓은 곳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주소 스티커에는 옆옆집이였는데, 실수로 우리집 호수를 매직으로 크게 써 놨던 것이다.
피크닉세트를 시킨 옆옆집 사람에게 더 기다리지 않게 다시 그 택배상자를 보일러실에 갖다 두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나.
퇴근 후 불현듯 그 택배상자가 떠올랐다. 잘 찾아 갔겠지?
혹시 매직으로 크게 쓰여져있는 우리집 호수 때문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대로 있는건 아니겠지?
또다시 복도 끝에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아니나다를까 택배는 그대로 있었다.
정말 매직으로 크게 쓰여진 우리집 호수를 보고 찾아가지 않은걸까?
아니면 바빠서 아직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지 않고 있는걸까?
아.. 저 매직 호수 자체를 내가 차라리 제대로 바꿔놓을까? 
흠, 집에 굵은 매직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매직이 없었다.
뭐, 알아서 잘 가져가겠지. 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났다. 계속 그 택배가 마음에 걸렸다.
괜히 내가 매직으로 호수를 제대로 바꿔써주지 못했던 사실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았다.
택배가 사라졌다.
드디어 잘 찾아갔구나, 하며 괜히 안심이 됐다.
죄책감도 사라졌다.

2.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확인해보니 소셜커머스 링크를 내게 공유해줬다.
뭐지, 하고 열어보니 2L생수 8통을 엄청 싸게 파는 링크였다.
나는 바로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다.
이 소소한 구매는,
친구와 나 모두의 속이 다 시원한 구매였다.
전말은 이렇다.

물은 무겁다.
2L짜리 물통은 정말 무겁다.
2L 생수 6통은 너무너무 무겁다.
어느 주말,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 앞에 2L 생수 6통짜리들이 엄청 많이 놓여있었다.
심지어 굉장히 싸게 세일하고 있었다.
마침 집에 생수가 떨어져서 물을 살 마음에, 편의점 앞으로 다가갔다.
생수 6통을 단단하게 묶어놓은 끈을 잡았다.
영차!하며 팔에 힘을 줬는데 들지 못했다.
다시 한번 영차!하며 팔에 힘을 줘서 들으려고 노력했다.
생수들은 옆으로 이동만 할 뿐 들리지 않았다.
아.
너무 웃기고, 황당한 마음으로 다시 뒤돌아서 집으로 걸어갔다.
생수 살 돈은 있어도 생수를 들 힘이 없다면 생수를 싸게 사지도 못한다.
그냥 한 통, 한 통 사 마셔야 하나.
생각해보면 집에 생수를 들고왔던 사람은 내가 아니였다.
종종 친구들이 집에 놀러올 때 생수 6통짜리를 사 들고 왔었다.
그렇게 받기만 했더니 생수가 이렇게 무거운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 서글픈 순간을 친구에게 토로했다.
예전부터 종종 친구는 내게 말했다.

제발 물, 이런건 인터넷으로 주문하라고.
그럴때마다 나는 물은 너무 싸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괜히 택배아저씨 무겁게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서 시키지 않는다고 대답했었다.
다시 친구가 반박했다. 집 건물이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주문해도 괜찮다고. 진짜 착한거라고.

어느 날 우리집 앞에 물이 배달되어 있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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