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귤

도란도란 프로젝트 2014.02.04 18:46

 

*귤


한때 나를 귤귤이라고 부르던 사람이 있었다.

난생 처음 들었던 애칭,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이였던 그 당시, 나는 철학과 인문학에 빠져있었다. 

철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뭔가, 내 주위 사람들과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딱히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도 없었을뿐더러, 

이 시대에 왠 철학이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내가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그리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넘어서서, 나와 같이 토론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내가 아닌 타인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고, 또 타인의 시각이 궁금했기 때문에 이러한 토론을 진심으로 바랐던 나는, 

계속해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하루는 커피를 마시다가 장보드리야르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내가 시뮬라시옹 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책을 읽고

엄청난 공감과 현실에 대한 회한을 느껴, 정말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정답없는 토론을 했다.


하루는 한나아렌트의 결론이 정말 좋아서, 신이나서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전범재판이라는 중요한, 그리고 거대하면서도 살벌한 역사속에서 어떻게 ‘사랑’이라는 부드러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는지, 정말 감명깊었다고 말이다. 

지금도 한나아렌트를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따뜻해진다. 

사랑이라니.


하루는 ‘통섭’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그 단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그 단어 속에는

엄청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이후 융합(Convergence)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기에 조금은 부드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귤귤이는, 

그냥 내가 귤을 먹고 있다고, 아 귤을 먹고 싶다고 하니 그냥 그 이후로 나는 귤귤이가 되었다.

귤귤, 귤귤, 뭔가 의성어 같기도 하면서 캐릭터 이름 같기도 하면서 간지러운 단어 같기도 하고.

그렇게 수 많은 대화들이 이어지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바뀌었다.

그런 대화들로 인해,

-생각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넓어졌다. 물론 지금도 더더욱 넓어져야 하겠지만.

-조금 더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내 자신을 대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약간이지만 터득 할 수 있었다.

-차분하게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고, 오롯이 나만을 두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는지, 내 존재에 대해 사색해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예민하게, 그리고 엄청 딱딱하고 어떻게 보면 빡빡했던,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차가웠던 나였다.

하지만 모든 것을 차갑지 않고 따뜻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내 자존감도 높아졌다.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동안 수많은 대화들로 서로 성숙해질 수 있었다.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한게 아쉽긴 하지만, 어디선가 토론을 하고 있을거라 확신한다.

나 역시 그 이후로 많은 곳에서 한 주제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며 대화를, 혹은 토론을 했을테니.


요즘은 토론프로그램을 많이 찾아볼 수 없다. 백분토론과 심야토론만 (공중파기준) 남은 것 같은데.

라디오에서도 토론을 메인으로 한 프로그램보다는 그냥 코너 사이에 끼워넣는 그런 프로그램이 많다고 들었다.

크나큰 정치적 주제도 좋고, 아니면 소소한 주제라도 좋으니, 조금은 더 많은 장이 열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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