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겠습니다

1.
다행인지 불행인지 심보 참 고약하다. 그렇게 좋아해달라고 사람을 끌 땐 언제고, 막상 좋아해버리면 도망간다. 도망간 주제에 별안간 그 마음이 그리워져서 다시 좋아해달라고 한다. 잊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레퍼토리. 이제는 그만두자. 

마음껏 그리워하는 건 괜찮다 싶다가도 죽어도 약자가 되긴 싫은가봐. 혼자서만 그리워하고 있는 현실이 초라한가봐. 진한 이별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데, 자존심은 하늘 끝까지 솟아있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한다.

2.
무엇이든 나의 멈춤을 아쉬워하는 친구가 있다. 반대로 나의 시작은 항상 응원해준다. 앞으로도 나의 많은 시작들은 기본적으로 응원이 깔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마음이 든든. 

3.
10년 전 춘천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염리동으로 이사온 적이 있는데, 며칠 전 일하다가 우연히 그쪽 지도를 볼 일이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내가 잠시 살았던 염리동 집은 물론이고 그 주변이 재개발돼서 올해 새로운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것이다. 아. 이젠 다시 와이파이를 찾아 헤매던 계단도, 와이파이를 빌미로 먹던 빵도, 처음 오이와 당근이 소주와 잘 어울린다고 느꼈던 가본 실내 포장마차도, 퇴근 후 혼자 우동을 시켜먹었던 분식집도, 쌀쌀한 날 그린티 라떼를 주문했던 카페도 모두 사라졌다. 다시 한국에 가서 이대역 5번 출구를 찾아 나간다 하더라도 그 자리엔 그 모든 곳들이 없다. 정말 완벽한 상전벽해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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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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