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까 말까

아, 그 브랜드. 친구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물건보다 더 비싸고 좋은 브랜드의 어떤 모델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찾아봤고, 내가 알고 있었던 브랜드였다. 그래서 쉽게 그 모델을 찾았다. 가격도 그 정도면 됐다. 부담이 없는 가격이었다. 이제 결제 버튼만 누르면 된다. 받는 사람의 주소도 이미 배송지 정보에 저장되어 있었다. 핀테크의 무궁무진한 발달로 이젠 비밀번호 4자리조차 필요 없이 아이폰에 얼굴만 들이밀면 결제가 완료된다. 1초면 끝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금액의 물건이었지만 친구는 취미에 그 돈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물건이 없어도 대체할 수 있는 더 저렴한 물건을 이미 친구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난 그 친구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이왕이면 조금 더 좋은 걸 썼으면 싶었다. 그리고 그나마 조금의 여유가 있는 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친구의 삶을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결제 버튼까지 왔지만, 버튼을 누르기 직전 마음 한 편에선 '친구가 내 선물을 부담스러워하면 어쩌지, 내가 동정이나 연민하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지'라는 조바심이 들었다. 물론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선물을 줄 핑계도 없었다. 그 친구에게 받을 명분을 먼저 주고 싶었는데 그 명분을 주는 것조차 실패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그 누구도 신경 쓰고 있지 않는 나이가 갑자기 신경 쓰였을까. 작년에 그 친구가 겪었던 너무 마음 아픈 일이 최근 다시 떠올라서였을까. 일차원적으로 봤을 때 조금 덜 불행한 내 삶 때문이었을까. 작은 마음보다 배려의 탈을 쓰고 끼어든 오만 때문이었을까.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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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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