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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510.춤

puresmile 2023. 10. 12. 09:52

*춤

그때도 지금처럼 일교차가 큰 가을이었다. 자켓이나 가디건이 필수인 밤에 S와 엄청 좋아했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와인에 빠져있던 S의 취향이 떠올라 S에게 '와인 마실래?'라고 물었더니, '그래!'라는 대답이 1초도 안되어 돌아왔다. 와인 보틀과 홍합 요리를 주문했고, 밀렸던 수다를 잔뜩 풀어대며 신나게 웃고 떠들었더니 앞엔 빈 보틀과 그릇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적당히 취했는데 술은 더 마시기 싫어서 배부른데 나가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어느새 S와 나는 택시를 타고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목적지는 호텔 지하에 있는 클럽! 심지어 그 클럽은 이제 젊은 나이대는 거의 가지 않는, 블로그 말을 빌자면 '옛날 잘나가는 오렌지 족이 갔던' 그런 클럽이었다. 어둡지만 휘황찬란하고 느껴지는 조명 사이를 걸어 맥주를 한 병씩 주문하고 쭉 돌아봤는데 멋진 드레스 입은 여자들, 양복을 입은 외국인들, 반짝거리고 무겁게 생긴 커다란 시계를 찬 아저씨들이 바에 앉아서 칵테일과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2~3개 나눠진 스테이지는 모두 텅 비어있었고, 각 스테이지마다 음악이 달랐고, 텅 빈 스테이지에선 외로운 DJ만 열심히 컨트롤러 위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S와 나는 서로 '여기다!'라는 의미의 눈빛을 보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리듬을 탔다. 그 누구도 S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S와 나조차 서로의 춤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냥 둘이 말 그대로 마음껏 몸을 흔들었다. 둘 다 정말 무아지경으로 아무렇게나 있는 대로 춤을 췄다. 아주 잠깐 펄프 픽션에서 우마서먼이 다이너 스테이지에서 춤추는 장면이 떠올라 혼자 웃었고, 소화가 다 될 정도로 춤을 춘 S와 나는 그제야 만족한 하루를 보냈다는 듯한 표정으로 깔깔거리며 클럽에서 나왔다. 이제는 클럽도, 프렌치 레스토랑도 사라졌고, 더 이상 S와 클럽을 갈 수도 없지만 어디선가 또 그때처럼 춤을 출 순 있겠지.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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