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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592.비키니

puresmile 2025. 5. 11. 22:40

*비키니

1.
하루 종일도 아닌 길어봤자 반나절 정도일까 싶은 결혼식 날이 가까워질수록 모든 신경이 그 날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 뒤 3주라는 시간 동안의 여행보다 고 몇 시간의 중요성이 더 컸던 것이지. 사실 분하기도 했다. 고작 그 하루가, 그 몇 시간이 나를 이렇게 여러모로 복잡하고 다양하게 신경 쓰게 하는 것이. 심지어 내가 주인공이었던 날이기에 모든 것을 내 계획대로 해야 직성에 풀려서 1부터 100까지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디데이 전 날 자기 직전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내일 눈 뜨자마자 모든 것이 실전이고, 이제 내 손안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즐기자'라고. 그렇게 새벽부터 일어나서 하루 종일 웃고 울고 떠들며 최대치로 즐긴 나는 밤 10시가 되어도 배고픈 지 몰랐다. 10시가 넘어서야 삼겹살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게 어디로 들어가는지, 내 배를 채우고 있는지 모를 만큼 묘한 각성 상태가 지속됐다. 다음날 아침, 못해도 두 달 전엔 잘랐어야 했지만 메이크업샵에서 더 이상 머리 길이가 짧아지면 안 된다는 말에 정말 꾹 참고 길어지게 두었던 머리를 자르러 미리 예약해둔 미용실에 갔다. 싹둑싹둑 속 시원하게 머리를 자른 후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 되자 피로가 몰려왔다. 미리 싸둔 배낭을 어깨에 메고 공항으로 가서 전날의 결혼식과 끝났다는 후련함을 잘근잘근 곱씹으며 집에서 출발한 지 거의 18시간 만에 코사무이에 도착했다. 첫 숙소에 체크인을 한 뒤 입고 있었던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비키니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하얀 백사장으로 달려갔다.

2.
사실 나는 도시여행을 더 좋아했다. 딱히 바다와 친하지도 않았다. 근데 바다가 있는 여행지 매력을 이제 깨달았다. 그저 하루 종일 비키니만 입고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는 홀가분함과 자유로움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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