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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54.버스

puresmile 2015. 1. 11. 19:51

*버스


'그럼 우리 나가서 세 번째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여덟 번째 정류장에서 무조건 내리는거다' / '그래!'

대학로 파스쿠찌 2층에서 현재 앉아있는 이 파스쿠찌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바라는 어플리케이션의 이상과 머릿속 한 구석에 숨어있던 만들고 싶은 것에 대한 어떤 것에 대해 가지치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이미 아침일찍 안국역에서 시작해, 북촌한옥마을을 한바퀴 빙 돈 후, 성균관대학교를 지나 혜화동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뭐 그리 신나는지, 어딜 그리 그렇게 가고 싶었는지, 아니면 이미 산책아닌 산책을 엄청나게 하고 난 뒤 그 뒤에 찾아오는 어쩔 수 없는 생체리듬의 루즈함을 이겨내고 싶어서였는지, 새로운 곳에 대한 갈망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페 2층에서 내려와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겨울치곤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햇빛 쨍쨍한 날도 아니였다. 날씨가 흐리고, 하늘은 포토샵 웹컬러 파렛트에서 두번째 옅은 회색과 비슷한 색이였다. 그런 하늘 아래에서 버스 한 대를 보내고. 또 한 대를 보내고. 그 다음 버스가 곧바로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올랐고, 버스에서 내렸다. 안그래도 사람이 많았는데, 다들 두툼한 패딩, 외투 등등을 입고 있어서 더 분주하게 느껴지는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안그래도 중심을 못잡는 나였지만, 가만히 서 있는게 어색하고 또 어색해서, 괜히 버스 위에 붙어있는 정류장지도를 보았다. '여기서부터 정류장 여덟개를 지나면.. 아, 여기서 내리면 되겠다'라며 내릴 곳을 확인 한 후 창 밖을 보았다. 이미 창 밖은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풍경들이 보였다. 웬만한 서울 곳곳은 다 다녀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곳들이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리기도 하고, 내가 내릴 곳은 어떤 풍경들이 펼쳐질까 설레어 하며 있을 동안 어느덧 내릴 곳에 다다랐다. 잉차- 버스에서 폴짝 뛰어내리니, 6차선 도로쯤 되는 큰 길을 사이에 두고 주변에 가구점과 아웃도어점이 군데군데 있는 곳이였다. 어라. 이렇게 되면 어디로 가야하지. 무작정 느낌이 가는 쪽으로 걸어갔다. 성큼성큼 걷다보니 골목이 나왔고, 오르막길인 골목을 올라갈까 말까, 하다가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이때 내 발이 힐을 신어서 굉장히 편하지 않았는데, 힐을 신고 오르막길을 걸으면 상대적으로 편했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만으로 내린 결정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는 몰랐다. 골목으로 들어가보니, 양쪽이 빌라인 그런 골목이 펼쳐졌다. 오른쪽 골목을 보니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딱 그때 시간이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집집마다 저녁밥을 할 즈음이였는데, 집앞에서 동네오빠언니들이랑 놀고 있으면 엄마가 꼭 들어오라고 부를 그 시간. 줄넘기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곧 엄마가 밥먹으라고 부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지나쳐서 계속해서 골목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간판이 굉장히 오래된 세탁소를 중심으로 길이 두갈래로 나뉘어졌다. 한쪽 골목은 계속해서 오르막길, 올라가는 길이였고, 다른쪽 골목은 내려가는 골목이였다. 고민 끝에 계속 올라가기로 결정. 계속해서 길을따라 올라가보니 어느덧 주택가는 끝이 났고, 다시 차들이 쌩쌩달리는 6차선 큰 길이 나왔다. 계속 올라가면 뭐가 나올까 궁금했다. 조금만 더 올라가보자, 라고 서로 이야기를 한 뒤에 계속 올라갔다. 그러니 이젠 눈 앞에 어느 귀엽장한 (귀엽게 꾸미려고 노력한) 육교와 구름다리 비스무리하게 생긴 것이 나타났다. 단지 큰 길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육교겠지, 저 육교를 올라가 큰 길을 건너서 다시 내려가자,라고 결정을 하고 계단을 올랐다. 육교 가운데쯤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차들이 쌩쌩 달려서 뭔가 을씨년스러웠다. 육교 끝에 다다르자, 갑자기 갈림길이 보였다. 다시 육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과, 뭔가 언덕 산책로 같은 조그만 산 속의 오솔길. 비록 구두였지만, 이미 구두를 신어서 어딜 못 걷겠다는 생각은 오래전에 잊어버렸기 때문에 오솔길로 들어갔다. 오솔길을 들어가자 나무들이 양쪽에 줄을 지어 뻗어있었고, 바닥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자박자박 소리를 냈다. 이 길은 어디까지 가는걸까, 이러다가 등산을 하게 되는건 아닐까, 라고 이야기하며 올라가자 정자같은 곳이 눈에 띄었다. 이미 해는 거의 졌고, 저기 정자에서 조금만 쉬었다가 내려가려고 정자까지 열심히 걸었다. 정자에 도착하자 알고보니 정자처럼 생긴 조그마한 전망대였다! 오. 뜻밖에 전망대를 발견했다. 망원경은 하나밖에 없었으며 아래 귀엽게 나무토막도 놓여있었다. 나는 그 것들을 보자마자 뛰어가서 나무토막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굴을 망원경에 밀착시켰다! 우와. 망원경으로 난생처음 도시를 보았다. 항상 등산가서 산만 봤는데, 이 곳에선 도시가 보였다. 이미 깜깜한 밤이 되서 차들이 라이트를 켜고 다녀서 예쁜 조명처럼 보였고, 교회 위에 십자가들도 LED전구 덕에 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파트에서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의외의 광경이라서 아이폰을 망원경 렌즈에 대고 사진을 찍었다. 만족할만한 사진이 찍혀 기뻤다. 그런데 진짜 아예 캄캄해져서 길이 조금이라도 보일때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내려왔다. 내려오니 아파트단지가 나왔고, 그 아파트단지를 가로질러 다시 차가 쌩쌩 다니는 큰 길목으로 내려왔다. 갑자기 엄청난 공복감이 밀려오며 현기증이 났다. 하지만 엄청나게 태연한 척을 하면서 밥을 먹자며 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땐 맛집이고 뭐고, 일단 밥을 먹어야지 쓰러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겉모습이 통나무로 꾸며진 가게였고, 지하로 내려가자 주막과 밥집을 같이 하는 곳이였다. 메뉴를 고르고 주인아주머니한테 주문을 했는데, 술을 안시키자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밥을 먹고 싶을 뿐이라구요, 아주머니...' 라는 간절한 눈으로 주문을 했고, 한정식 집에서 나올만한 그릇으로 반찬과 밥이 나왔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나서 뭐가 또 아쉬운지 백화점 지하로 들어가 한바퀴를 빙 돌았다. 그제서야 정말 힘들어져서 전철을 타러 가자고 이야기를 했고, 드디어 전철을 타서 집을 왔다. 아마 이 때가 내 생애 가장 많이 걸었던 날일 것이다. 추운 겨울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높은 힐을 신고,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거리를 걸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걷게 했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걸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종종 그 때가 생각난다. 정확히 말하면 그 곳, 전망대가 생각난다. 언제 그 곳에 다시 갈 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일부러 찾아갈 마음은 아직 없다. 최근에 되어서야 그 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았다. 그 위치를 정확히 안 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찼기에, 아직 다시 찾아갈 마음은 없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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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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