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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시

나의자랑 이랑

puresmile 2015. 8. 26. 00:34

넌 기억의 천재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지.


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콧물을 책상 위에 뚝뚝 흘리며,


막 태어난 것처럼 너는 울잖아.


분노에 떨면서 겁에 질려서.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네가 사귀던 애는


문 밖으로 나가버리고. 나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


내가 네 남편이었으면 하고 바랐지.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


벽에는 네가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고


바구니엔 네가 만든 천가방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좁은 방 안에서,


네가 만든 노래들을 속으로 불러 보면서.



세상에 노래란 게 왜 있는 걸까?


너한테 불러 줄 수도 없는데.


네가 그린 그림들은 하얀 벽에 달라붙어서


백지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고.


단아한 갑아들은 내다팔기 위해 만든 것들, 우리 방을 공장으로, 너의 손목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들.


그 가방들은 모두 팔렸을까? 나는 몰라,


네 뒤에 서서 얼쩡거리면


나는 너의 서러운,


서러운 뒤통수가 된 것 같았고.


그러니까 나는 몰라,


네가 깔깔대며 크게 웃을 때


나 역시 몸 전체를 


세게 흔들 뿐


너랑 내가 웃고 있는 까닭은 몰라.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고 싶은 너.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오리발 같아 도무지 신용이 안 가는 너는, 나무 위에 올라 큰 소리로 울었지.


네가 만약 신이라면


참지 않고 다 엎어버리겠다고


입술을 쑥 내밀고


노래 부르는


랑아,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


인간들을 분류했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막 박수치면서,


네가 나는 선한 사람에


껴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 걸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김승일, 나의자랑 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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