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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할아버지.

puresmile 2012. 12. 20. 20:45

서점에서 종종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데리고 와서 책을 사주는 모습을 본다.

요즘 책들은 만화로 된 책들도 많고, 겉 표지가 화려한 책들이 (특히 아동책일수록) 많아서

손주들이 '할아버지 나 이거 사주세요'라고 책을 가지고 오면,

되레 할아버지는 '이거 불량서적아니야?'라며 껄껄 웃으며 반문하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 짠-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나 역시 우리 할아버지에겐 첫 손주였다.

내가 어릴 적일이여서 기억이 잘 안나지만, 가족들 말로는 할아버지가 나를 땅도 못밟게

동네 방네 업고다니고 하셨단다.

할아버지가 젊은시절에 무얼 하셨는지는 잘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그나마 젊은시절의 할아버지는 군복을 입고 계셨다.

상사라고 하는데.. 군대에 많이 무지한 나는 그게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

월남전에도 참전하셔서 지금은 국립묘지에 계신다. 


할아버지는 글을 잘 쓰셨다. 글을 읽어보려 했으나 온통 한자로 도배되어 있어서 도통

무슨말인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에게 가서 '맨날 할아버지는 공부만해-_-'라고 했다.


태어날때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할아버지랑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미약하게 담배냄새가 났다.

그게 나는 할아버지 냄새인줄 알았다.

 

연필깎기가 집에 없었을 적, 할아버지에게 연필을 깎아달라고 맨날 가져갔다.

그럼 할아버지는 재털이에 뚜껑을 열고 거기다가 대고 연필을 깎아 주셨다.

재털이가 꽉 차 있을 때에는 전단지를 가져와 네 면을 조금씩 접고 접시모양으로 만들어서

그 안에다가 연필을 대고 깎아 주셨다. 

(아직도 나는 그게 생각나서 손톱을 깎을 때 전단지의 네 면을 접고 거기다가 깎아 버린다.)


할아버지는 경상도 분이셨다. 본적이 경북.

그래서 엄청 무뚝뚝하셨다. 

3형제를 둔 할머니도 복작복작한 남자형제들과 할아버지 덕분에

같이 무뚝뚝해지셨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는 살가운 시어머니가 그리웠다고 한다.)

이런 집안 분위기 덕분에 어릴 적 나도 굉장히 차가웠고 무뚝뚝했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에게 애교한번 떨어보지 못했다.

그게 쑥쓰러웠다.

물론 지금은 많이 유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런 면이 남아있다.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도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갔을 무렵,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불러서 가봤더니, 손수 당신이 입을 수의를 이미 구해놓으셨고,

산소보다는 요즘은 납골당이 좋으니 화장을 해달라고 하셨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굉장히 찡했다. 죽음을 준비하시고 계신 할아버지.

물론 그 이후로도 오래 사셨지만, 자식들에게 짐 안지게 할려고 당신이 하실 몫이라 생각하고,

준비하셨던 것이다.


5년 전, 할아버지는 병원에 몇번 갔었다.

후두쪽이 안좋으셔서 치료를 받으셨다.

그 이후로 반평생(언제부터 인지는 모르나) 피우던 담배도 딱 끊으셨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고 할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셨다.

노환으로 인해.


그리고 내가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들어가서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저 대학교 합격했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목에 호스를 끼고 계셨던 할아버지는 말을 제대로 못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내 손바닥을 피시곤 손가락으로 '축'라고 손바닥에 쓰셨다.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몇달 뒤, 할아버지의 임종소식을 들었다.

새벽에 엄마아빠가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가셨고, 나와 동생은 다음날 아침에 부랴부랴 장례식장으로 갔다.

내 주변에서 처음 있는 상이여서 실감이 안났다.

장례식장으로 가서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는데도 멍-했다.

제일 큰 손주이기 때문에 상복으로 갈아입고, 3일동안 열심히 문상객을 맞이했다.

그리고 마지막 발인하던 날.

관을 영구차에 옮기려고 운반하던 그때,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관을 처음 봤다.

그때서야 '죽음'이라는게 실감이 났다.

그때서야 '아, 할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라는게 실감이 났다.

땅에 주저 앉아서 울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너무 슬프고, 또 슬펐다.

눈에 맺힌 눈물을 닦고 계셨던 할머니, 그 외 친척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땅을 치고 울었다.

영구차에 타고 할아버지댁을 한바퀴 돌 때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실신하지 않은게 다행일 정도로.

그 뒤 화장하는 곳에 도착해서 할아버지를 정말 떠나 보내고,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났다. 정말 문득, 종종,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길지도 않고 생생하지도 않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을 추억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을 때다. 

그 뒤로, 그리고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서 장례식장에 갈 상황이 없지는 않겠지만,

언제나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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