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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1.
여름, 그때 당시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분과 약속했던 날이기도 했다.
밖엔 주룩주룩 비가왔다. 아마 장마라서 비가 왔던 것도 같다. 굉장한 장대비였고, 오래오래 내리던 비였다.
내가 밖에 나갈 때 장대비가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하이힐에 치마를 고집했던 나에게 비란 성가신 존재였다.
장대비가 바닥에서 튀어 내 발을 온통 점령하고, 내 하이힐을 몽땅 적시고,
심지어 종아리까지 모두 빗물이 튀면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겐 그 흔한 레인부츠 하나 없었다.
그 날도 평소와 같은 복장을 하고 밖에 나갔었다.
약속장소는 꽤나 먼 거리였다. 아마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내려 역에서도 조금 더 걸어야 하는 곳이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약속시간에 늦기 싫었다.
하이힐과 발가락과 발목에 튀는 수많은 빗방울들 보다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는게 백 배는 싫었다.
장마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장대비가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얕은 물 웅덩이는 그냥 첨벙첨벙 밟고 지나갔다.
일단은 내가 그 곳에 제 시간에 도착을 해야 한다는 그 마음 뿐이였다.
그 마음 덕에 물이 잔뜩 들어와 하이힐 바닥이 미끈거려 나의 발가락들이 자꾸 앞으로 쏠려 힘들었지만,
그 힘듬이 제시간에 도착하게끔 만들어주었다.
돌이켜보면 '어떤 것에 대한 망설임'에 대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을 사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 몸과 마음을 사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일들에 대해 사려버리니 망설임이 따라오게 되고,
결국 나는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였다.
조금만 더 거침없어도 괜찮았을텐데.
조금만 더 과감해져도 괜찮았을텐데.
조금만 더 용기내어도 괜찮았을텐데.
앞으로는 어떤 일이든 조금 더 거침없고, 조금 더 과감하고, 조금 더 용기를 내어봐야지.
2.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각인시키고, 각인되어버리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계절, 물건, 장소, 혹은 날씨에게도.
장마도 아마.
3.
어느 장마철이다.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고싶어하는 내 자신만 남았다.
-Hee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