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해묵은 미련들을 덜어내는 것. 영어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 러닝 컨디션을 늘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더욱 갈구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것. 아마 평생의 숙제.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 http://doranproject.tumblr.com
*정전 주말에 공휴일까지 더해져 3일을 푹 쉬고 월요일 같은 마음가짐으로 집을 나선 지난 화요일. 이날은 또 한 달에 한 번 그랜드 미팅이 있는 날이라 그랩 안에서 지난주에 미리 만들어 둔 발표 자료를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려보며 회사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힘차게 사무실로 직행했는데, 사무실 불이 꺼져있었다. 평소 내가 사무실에 도착하는 순서는 앞에서 4~5번째는 되기 때문에 늘 일찍 오는 직원들이 있기 마련인데 불이 꺼져있다니. 근데 재밌는 건 사람들이 불 꺼진 사무실 안에 있었다는 점. 지문을 찍은 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왜 이렇게 캄캄하게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정전이라고. 신기했다. 난 분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고, G층에 있는 카페와 식당에선 평소처럼 불을 환하게..
한동안 헤이즈의 만추 앨범을 들을 수 없었다. 찬 바람이 불던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 종일 마음 둘 곳 없는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다가 그나마 익숙해져 버렸다고 생각한 곳에선 내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헤이즈의 만추 앨범을 들으면 마치 그때의 온도가 생각나고, 그때의 마음이 아직도 떠올라서 애써 외면하고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려 했었다. 그 뒤 약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정확히는 2년하고도 조금 더 지났다. 그 사이 꽁꽁 감추고 눌러왔던 마음들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고, 최근 반년간은 정말 업앤다운이 심했던 감정 변화를 겪으며 그때는 그때일 뿐이라는 것을 야금야금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 뒤 가까스로 많은 투쟁 끝에 평화를 겨우 되찾은 어느 주말, 나는 다시 용기 내어 헤이즈 만추 ..
*김치볶음밥 어쩌다 큰맘 먹고 김치볶음밥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겐 그 김치볶음밥 하나에 있는 생색, 없는 생색 다 낼 수 있지만 평소에 요리를 자주 하는 사람에겐 김치볶음밥따윈 난이도 낮은, 그냥 아무 노력도 들지 않고 해 먹을 수 있는 요리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 http://doranproject.tumblr.com
*제주도 며칠 전 우연히 내 생애 첫 제주도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들을 봤다. 약 14년 전 사진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두운 건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없어서 놀라웠다. 난 분명 즐거웠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음속에선 나도 모르게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표정으로 나마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여름인데 입고 있는 옷들은 또 왜 이렇게 더워 보이던지. 꽤나 애쓴 모양이 우스웠다. 그래도 그땐 그 모습조차 만족스러워하며 디카로 찍은 사진들을 모두 인화하는 정성까지 보였는데, 그 사진들은 다 어디로 갔나. 당시엔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고 여기며 끔찍하게 아꼈을 텐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모두 바람에 흩날리듯 사라져버리고 남은 건 조소뿐이네. -Hee -------------------------..
*천상의 맛 1. 진미채와 미역줄기볶음. 그리고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곰피나 물미역, 살짝 데친 느타리버섯, 삶은 브로콜리나 삶은 오징어. 내가 한국에 가면 엄마가 꼭 해주는 천상의 맛 세트들. 여기에 내가 한 번은 꼭 찾는 마른 오징어에 마요네즈도 빠질 수 없다. '여기가 바로 집이야'하는 맛이다. 2. 한국에서 30년 이상을 살 동안은 몰랐는데, 말레이시아에 와서 찾은 천상의 맛은 바로 새우가 들어있는 딤섬. 여기에 고수까지 들어있다면 그냥 눈이 뒤집힌다. 여기에 비교적 늦게 치총펀을 경험했는데 새우 치총펀 정말 맛있다는 사실을 왜 이제 알았냐.. -Hee ---------------------------------------------------------------------------------..
*그런 날이 있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근심과 걱정 한 톨 없는 사람처럼 어떤 일을 해도 마냥 즐겁고, 무슨 말을 들어도 마냥 행복한 그런 날이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똑같은 스케줄인데, 어디서부터 끓어올라온 것인지 모를 에너지가 마구 샘솟아 어떻게든 넘치는 에너지를 표출해대고 싶을 때가 있다. 새로운 것들은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몸은 깃털처럼 가볍다. 이런 날엔 분명 어떤 새로운 일을 꾸미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떤 아침엔 눈을 뜨는 순간부터 고통스럽다. 내재된 근심과 걱정이 문득 내 키보다 몇 배 높은 벽이 되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는 것조차 힘겹다. 분명 별일도 없는데, 내 주변엔 당장 해결해야 할 뾰족한 문제도 없는데, 삶이 어쩔 수 없이 살아내야..
*결국 어쭙잖은 기획자가 좋다고 쫓아다녔던 A는 결국 그토록 좋아했던 사람의 직업인 기획자가 되어 연봉을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자리로 올라가 이젠 그 자리에서 사내정치까지 하고 있었고, 집에서 캔맥주를 3~4캔씩 까먹던 B는 결국 술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 점심이고, 저녁이고 마음껏 술을 마셨고, 올 듯 말 듯 한 사람을 쫓았던 C는 결국 원하는 결혼을 한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가끔씩 A는 한 줄기, 아니 1%도 되지 않는 미세한 희망을 좇아 손수 편지를 쓰려는 시도를 했고, 남다른 예민함을 가진 B는 언제 터질지 모를 마음속 응어리를 조금씩 키우고 있었고, 어쩌다 한 번씩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생존신고를 했던 C는 누군가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Hee -----------..
한국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또 캐리어를 꺼냈고 정말 꾸역꾸역 짐을 쌌다. 솔직한 마음으론 가기 싫었던 출장을 등 떠밀리듯 다녀왔다. 유일했던 나만의 시간 조금이라도 더 채우려고 했던 나만의 시간 며칠 전부터 눈 밑에 뾰루지가 났는데 너무 아프다… (마스크 끝이 딱 닿는 부분이다 - 며칠 전에 급하게 마스크가 필요해서 부직포로 된 허접한 마스크를 썼는데 그게 내 생각엔 나랑 안 맞았던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간지러워서 살짝 긁었더니 정말 너어어어어어어어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빨리 사라져라…… 요즘들어 꽤 쉽게 우울해지고 꽤 쉽게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