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1. 열정의 형태는 모두가 다르다. 열정의 색도 물론 다르다. 다른걸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사이의 갈등은 무시할 수 없다. 그 갈등을 얼마나 잘 컨트롤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2. 나에게 열정과 새벽은 항상 맞닿아 있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 http://doranproject.tumblr.com
*백색소음 1. 대학생때 공강인 어느 날, 아마 지금처럼 흐린 여름은 아니고, 바람이 솔솔 부는 날이 좋은 여름 날이였다. 내 방은 큰 창이 있어서 문을 열어놓으면 방충망 사이로 바람이 정말 많이 쏟아졌고, 그런 오후에 난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골똘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거실에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이 생각이 들자, 문 밖으로 라디오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마음이 짠했다. 나와 같이 점심을 먹고 난 후 바로 난 방으로 들어왔는데, 괜히 들어왔나, 집에 이렇게 오랜만에 오래 있는 건데, 엄마랑 더 시간을 보낼 걸 그랬나, 엄마가 적적한 마음에 괜히 라디오를 틀어놓은 건 아닌가, 하는 괜한 기우(였으면 좋겠다. 지금도.)때문에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라디오에서는 누구지 모를 약간 시끄러..
*자리 1. 사실 넌 모르겠지만, 네 자리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20대의 대부분을 너와 함께 했으니, 쉽게 지워질 수는 없겠지. 언젠가 너의 소식을 우연히 접했었고, 우린 그렇게 더이상 잘 될 수 없음을 알았을 때, 미련하게나마 그때 느꼈지. 그래, 우리는 원래 그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너는 나보다 더 좋은, 착하다고 하면 착하고, 좋다고 하면 좋은, 그런 사람을 만났어야 했다고. 부디 지금 너의 곁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훨씬 나은 그런 사람이였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진심으로 빌었지. 내가 널 많이 힘들어 했고, 나 때문에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뭐 지금은 나같은 사람은 너의 마음 어디에도 없을지 모르겠지만, 네가 원하는 사람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허전함 내 빈자리가 허전하다고 하는 말이 은근 좋다. 내 흔적이 남아있고, 그 흔적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좋다. 나 때문에 허전함을 느끼는 것도 좋고, 내 허전함이 외롭게 하는 것도 좋다. 이게 내 욕심 중 하나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 http://doranproject.tumblr.com
*비타민 1. 예전에 아이허브에서 비타민과 실리마린을 산 적이 있다. 나도 이제 이런 보충제를 먹으며 건강을 관리해보자, 라는 생각에. 그런데 웬걸. (사실 너무 건강해서 그런지 몰라도) 2~3개월을 꾸준히 먹어봤는데도 별 다른 효과를 느끼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약따위 그냥 때려쳤다. 아침에 집에서 나설때의 상쾌한 아침공기, 그리고 귀에서 흘러나오는 (내 흥을 돋우는)신나는 음악, 애매한 공복에 마시는 커피, 생각지도 못하게 정말 황홀한 맛인 빈브라더스의 이달의 원두, (킁킁거리며 책에 코를 박고 맡는) 새 책 냄새, 응원의 말과 애정어린 눈길들, 귀여운 관심과 약이되는 모르는척, 큰 숙제를 해결한 후 뒤에 허무함과 함께오는 여유로움, 섬유유연제 향기, 동이 트기 전 잠시 기상,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소설 1. 그 사람은 더 이상의 섹스어필이 없어, 라고 그 여자가 딱 잘라 말하는 동시에 그 여자 역시 단정지었다. 그 여자에게 섹스어필이 없어 보였던 가여운 그 남자는 아직도 그 여자의 옆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남자의 행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남자에게도 여자는 그냥 툭 찔러보고, 아니면 아닌 상대였던 것이라는 것을 여자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사로잡힌 생각때문에 만남에 대해서, 인연에 대해서 집중할 수 없었고, 결국 끝내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사이처럼 남은 인생을 지내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 여자는 생각한다. 살다보니 인생에서 섹스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도 같은데. 그리고 가끔 남자는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내 마음 속에 아련한 기억은 그..
*사고 1. 10년째 무사고였던 아빠는 (때때로 10년째 무사고라고 자랑도 하셨다지) 그 말이 무색하게 교통사고가 두 번이나 났다. 게다가 두 번째는 차를 폐차시킬 정도로 크게 났다. 무사고라는 말은 없다. 10년이든 20년이든 그냥 사고는 언제든지 날 수 있는 법이다. 2. 그 날 나를 만나기 직전, 넌 사고가 나도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 앞에 앉았지. 얼마나 놀랐을까. 내가 뭐라고. 3. 주변에 차를 운전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사고 소식도 들린다. 제발 조심하자. 제발. 4. 사실 나도 안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무렴. 모를까봐. 알고도 남았지. 그래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애를 써보기도 하고, 질끈 못 본 척 눈감아보기도 하고, 그냥 왜 그러는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채로 넘어..
*실수 1. 매번 (실패아닌 실패같던)사랑이 끝날 무렵에 드는 생각은, '이번에도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것일까.' 분명 사랑을 시작할 무렵에는 나와 너무 잘 맞(을 것 같)고, 기대와 설렘을 가득 품고 하루하루가 즐거웠는데. 하지만 점점 끝이 보이고, 그만큼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때면 그 사람을 탓하는 것보다 내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맞는 사람으로 착각하며 지냈다고 생각했다. 남을 탓하면 그 남은 내가 바꿀 수도 없을 뿐더러, 옆에 두고 볼 수도 없으며, 내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할 자신이 없고, 내 마음이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극도의 답답함과 아쉬움과 상실감을 견딜 수 없을거라 생각해서. 그래서 항상 내 마음을 애써 설명안해도 너무나 잘 아는 내..
1. 새벽이 신경쓰인 적이 있었다. 새벽에 깨어있는 것도 신경쓰였고, 심지어 새벽에 자고있는 것도 신경쓰였다. 어떨 때는 새벽이 부담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고, 또 어떨 때는 새벽이 슬펐다. 하지만 이젠 새벽이 편안하다. 2. 새벽 3시 반에 집에서 나가려고 일찍 알람을 맞추고 잔 적이 있다. 10시즈음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5시간 반 정도 밖에 잘 수 없는 시간이였는데, 원채 일찍자는 습관이 없어 쉽사리 잠이 오진 않았다. 쏟아지는 카톡이 궁금해서 11시가 되었고, 내일이 기대되 12시가 되었다. 그렇게 잠을 자는둥 마는둥 새벽 3시 10분에 일어나서 양치와 세수를 대충하고, 로션을 바르고, 헬맷을 쓰고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그랬던 나의 새벽. 3. 새벽이 아쉬워 한껏 만든 샌드위치 한 봉다리와 어..
*지금 1. 발 아래로 개미들이 바삐 움직이는 나의 지금. 멍하게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는 나의 지금. 커다란 상추쌈을 입에 가득 우적우적 씹으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진미채를 집어먹는 나의 지금. 늦은 밤, 밥솥에 남은 밥을 그릇에 따로 덜어두려도 주걱으로 펐는데, 그 밥이 너무 맛있게 보여서 그냥 그대로 계란간장밥을 만들어먹는 나의 지금. 2. 난 지금이 소중한지 몰랐지. 시간만 지나길 바라고 있었지. 그때가 반짝이는 줄도 몰랐고, 그 시간이 예쁜 지도 몰랐지. 미련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바뀔 줄 알았지. 지금을 간과하게 되면 변화도 없지. 3. 나와 한 친구의 카톡방 공지사항에는 (심지어 서로 1년 넘게 없애지도 않았다) '오늘이 우리의 생 중 가장 젊은날~'이라고 되어 있다. -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