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1. 카드를 꺼내려고 지갑을 열었는데 지갑에 3만원이 있었다. 누군가가 날 위해 넣어둔 3만원이였다. 그때 그 3만원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3만원이라는 가치보다 그것을 넣어둔 마음이 그땐 뭔가 어른스러워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행동은 아무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2.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현금을 더더욱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친구 아무개는 타코야끼를 사먹기 위해 만원씩 가지고 다닌다고 했지만. 요즘 구두방도 갈 일이 없고, 카카오톡으로 돈도 주고 받는 마당에. 하지만 얼마전 주말에 구디역을 경유해서 집에 왔는데, 그 앞에 옥수수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2개에 2천원을 주고 샀는데, 냄새부터 향긋하게 코 끝을 찌르는 바람에 집에 다 가기 ..
*깍쟁이 1.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지만, 겉으론 깍쟁이같이 보여도,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가까워질수록 딱히 그렇지 않구나, 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뭐. 깍쟁이 이미지 덕분에 편한 것도 있지만. 누군 나보고 그런다. 가까워지지 않았을 때는 너무 깍쟁이같아서 별로였는데, 막상 친해지고 나면 아예 생각했던 것이랑은 반대라고. 약간 빈틈도 많고, 어떨때보면 야무지지도 못하고, 물렁물렁한 면이 많아서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뭐 더 가까이 지내보면 나쁘다는 말보단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주변에 친한 사람들 중에 엄청난 깍쟁이는 없는 것 같다. 다들 겉으로는 연약해보이지 않지만 마음은 반대로 여린 사람들이 많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역시 ..
1. 그래도 가족이라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있다고, 서운하긴 하구나. 웃기다, 나도. 어찌보면 그렇게 연락도 안하고 지냈는데도 서운함을 느끼다니. 연락 한 번 더 했다면, 꾸준하게 연락하고 지냈다면 달라졌을까. 2. 난 항상 내가 아는 좋은 사람들이 다같이 만나서 더 좋은 시너지를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물론 부작용이 있긴 하다. 욕심일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게 좋은걸. 3. 세상에 억지로 연결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설사 억지로 연결되었다 하더라도 금새 삐걱거리고 어긋나기 마련이다. 어떤 이와는 결이 맞지 않아 더 다가갈 수 없었고, 어떤 이와는 리듬이 맞지 않아 금새 바람빠진 풍선처럼 흥을 잃었다. 어떤 이와는 서로 다가가려고 노..
1. 여러 계절이 지나고 또 지났다. 이제 네가 사라졌고, 기억을 애써 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지만 어떻게 보면 마음 편한 망각의 동물이다. 2. 가을에 네가 있었는데, 봄에도 네가 있다. 겨울에는 꽤나 친절한 너였는데, 여름에는 성난 네가 있다. 가을에는 날 외면하는 네가 있었는데, 봄에는 자꾸만 나를 부르는 네가 있다. 겨울에는 따뜻한 네가 있었는데, 여름에는 무심한 네가 있다. 3. 겨울이 지날 무렵, 집에 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비교적)뚜렷한 나라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옷이 그나마 나뉘어져 있어서 항상 계절마다 옷 정리 하기 바쁘고, 때로는 (특히 겨울철에) 옷의 부피가 옷장의 크기보다 더 커져서 넘칠 때도 많은데...
1.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 적지 않은 순간들이 하나씩 기억났다. 같이 퇴근하고, 길을 걸으며 내가 어떤 아이템을 만들었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신나게 이야기했던 순간.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들리게 (지루하지 않게) 말하면서 힐긋 그녀의 표정을 살폈던 순간.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내한강의를 같이 가자며 그녀가 모두를 설득했던 순간. 그 내한 강의에서 그녀가 맨 마지막으로 질문했던 순간. 매번 만날때마다 내가 이야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그녀의 알 수 없는 표정을 보았던 순간. 혹여라도 내가 부족한 건 아닌가, 내가 그렇게 별로인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나, 조바심을 냈던 순간. 어쩌면 이기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던 순간. 그랬던 순간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났다. ..
1. 그런 기분 알려나, 주말 후 다음 월요일에 회사를 가면 자잘한 업무부터 중요한 업무까지 나에게 모두 쏠릴 것이라는 걸 아는 기분.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지만 도무지 막을 수 없어 결국 내가 다 해야 하는 그런 기분. 그럴 땐 주말에 늦잠을 잘 수도 없고, (잠이 안오기 때문이지) 이렇게 머릿 속이 복잡하면 대게 주말 오전에 선잠을 자는데, 머릿 속에서 예상하고,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선잠을 든 나의 꿈에 개꿈으로 나타난다. 자고 일어나도 잔 것 같지 않고, 기분만 괴상한거지. 이게 지난 주 바로 내 모습이다. 이럴 땐 주말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크다. 누군가 들으면 소중한 주말을? 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나 답답한 주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1. 나의 눈이 사랑하는 초록의 계절이 온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초록빛의 나뭇잎들과 새파란 하늘이 만나는 장면을 좋아한다. 햇살을 받아 살짝 투명해진 나뭇잎과 그렇지 않은 진한색 나뭇잎들이 어우러져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을 좋아한다. 괜시리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쨍한 색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고 싶은 초록의 계절. 2. 봄을 맞이해서(는 사실 핑계고) 안하던 것을 해보고 싶어서, 굳이 가까이하지 않았던 샛노란색 아이폰케이스를 사서 끼웠다. 이런 쨍한 노란색케이스는 처음이라 2주일이 지난 지금도 낯설다. 3. 초록색하면 떠오르는게 또 있다. 작년에 유튜브에서 처음 보았던,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행복하게 노래부르던 백예린. 4. 생화보다 예쁜 조화는 없다. 주말에 모던하우스에 가서 조화 ..
*케첩 1. 핫도그 먹을때 절대 그냥 못먹겠다. 사실 그렇다고 많은 양의 케첩이 필요한 건 아니다. 난 케첩 한 줄이면 끝인데, 어느 누구는 진짜 핫도그 위에 케첩을 있는대로 세 줄이고, 네 줄이고, 케첩이 흘러 넘치 정도로 마구마구 뿌려먹더라. 하루는 어느 누구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케첩을 많이 뿌려먹냐고. 그랬더니 어느 누구는, "내가 먹는건 밥 한 숟갈 가득 먹는 느낌이고, 네가 먹는건 쌀 세 톨만 먹는 느낌이야. 그럴 정도로 맛이 안나."라고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입이 짧고 작긴 하지만, 그 정도인가? 그래서 나도 하루는 그 어느 누구를 따라서 케첩을 있는대로 잔뜩 뿌려서 핫도그를 먹어보았다. 윽. 케첩 맛이 너무 강해서 혀가 아릴 정도였다. 빵 맛은 전혀 안나고, 시큼시큼한 케첩만 ..
*소비 1. 친구들을 만날 때나, 예쁜 구두를 봤을 때의 3만원, 5만원, 10만원과, 부모님께 드리는 3만원, 5만원, 10만원은 왜 이렇게 무게가 다른가. 2.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개발이나 공부를 한다거나, 읽고 싶다고 하는 책이 있다면 아낌없이 꼭, 사줄꺼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독서시간을 꼭 마련해서 나란히 앉아서 책 읽는 습관을 들여줘야지. (마음처럼 될까) 3. 러닝시계를 강력하게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알쏭달쏭하네. 4. 이런 기분을 느낀지는 꽤 오래 전부터인데, 예쁜 블라우스나, 비싼 자켓이나, 사고싶었던 가방보다 나이키에서 운동복을 사는 내 모습이 너무 어른같아서 이상하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코트보다 비싼 것도 아니고, 블라우스보다 화려한 것도 아닌데. 뭔가 어색해...
*결 1. 이제까지 잘 다듬어왔다고 생각했다. 계속 이대로만 더 다듬어가면 더할 나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대로 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의 정도, 사람의 마음, 믿었던 관계, 심지어 나의 마음까지도. 곱게 다듬었다고 생각한 것들은 너무나도 무심하게 거칠어졌다. 거칠어졌다고 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이미 고르고 골라서 다듬었던 건데. 내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뭐겠어. 또 다듬는 수 밖에. 2. 산송장같이 거실바닥에 오랜시간 누워 생각을 해봤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무니, 거의 시간여행 수준이 되어버렸다. 13살때의 나도 나오고, 15살때의 나도 나오고, 19살때의 나도 나오고, 21살때의 나도 나오고, 24살때의 나도 나오고, 26살때의 나도 나오고, 2015년의 나도 나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