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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394.조립

puresmile 2021. 7. 25. 20:54

*조립

첫 자취방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한 친구는 나보고 상자 속에 들어있는 느낌이라고 했고, 한 친구는 옷장이 자기 키만하다고 했을 정도니까.
그래도 이사 오기 전 원래 방에 옵션으로 포함되어 있는 옷장과 책상 중에 책상을 빼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긴 작았다.
작은 방이어서 청소도 하루 만에 끝났다. 
작은 옷장에 옷도 꾸역꾸역 다 채워넣었다.
짐은 최소한으로 가져왔지만 화장품이랑 잡다한 소품들을 넣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2단 수납장과 문이 달린 공간박스 1개를 주문했다.
며칠 뒤 조립엔 자신이 없어서 이미 조립이 된 것들을 골랐더니 나름 커다란 택배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문 앞에서 포장을 뜯고 안에 들어있는 수납장을 방 안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그것조차 무거웠다.
고작 2단 주제에. 낑낑대고 몇 발자국을 떼며 원하는 자리에 옮겼다. 
공간박스는 그나마 1단이라 옮기기 수월했다. 그리고 수납장 위에 올려놓았다.
수납장과 바닥 사이즈가 완벽하게 맞는 것이 없어서 조금 큰 걸 샀더니 수납장보다 조금 튀어나오긴 했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했다.
곧 공간박스는 화장품들로 가득 채워졌다. 
수납장은 회사에서 사인한 계약서와 집 계약서, 다이어리, 당시 한창 읽었던 이랑의 책 몇 권, 인스타그램으로 처음 주문해본 김민준 작가에 책 몇 권 등으로 가득 채워졌다.
문짝에 달린 자석이 엄청 강해 요령있게 열어야 했던 공간박스와 큰 맘먹고 하얀색으로 산 수납장은 꽤 튼튼했고, 나와 꽤 오래 함께 했다.
그리고 지금은 걔네들이 내 곁에 없다.
그 안에 내 화장품들과 내 책들은 사라졌고, 
두껍고 무거운 영어사전으로 채워진 수납장과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공간박스는 어디선가 제 본분을 다하고 있다. 
종종 생각나는 내 귀여웠던 첫 가구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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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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