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

나는 운전면허가 소위 물면허라고 불리고 있던 시대에 면허를 땄다. 더 자세히 말하면 물면허 막차를 탔던 것. 내가 운전면허를 딴 뒤로 다시 어렵게 바뀌었다는 얘긴 들었다. (실제로 정말 바뀌었는지, 얼마나 어렵게 바뀌었는지는 확인을 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엄마가 '언젠가는 트럭을 몰아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라는 말에 솔깃해서 트럭을 타고 시험을 봤고, 네 번의 도전 끝에 결국 1종 면허를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정말 몇 번 안되는 (비록 한 번은 서울에서 산청까지 달렸지만) 운전 경력과, 일단 주위에서 들었던 대로 국제면허증까지 갖추어 말레이시아로 왔는데, 지금은 아침마다 그랩드라이버를 애타게 찾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책상 서랍에 있는 국제면허증은 이미 만료된 지 오래다. (내 국제면허증 기간은 1년이었다. 딱 1 년.) 주변에선 이제 운전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하루에 그랩비로 80링깃 정도 쓰는 내 상황도 나를 운전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난 아직 도로가 두렵다. 솔직하게 말하면 차폭감이 없는 내가 두렵다. 내가 볼 수 없는 공간의 두려움이 굉장히 큰 상태인 내게 사람들은, 하다 보면 저절로 익히게 되는 것이라고 매번 말해주지만 글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과거에 겁도 없이 운전을 했지만 하면 할수록 감이 느는 것은 전혀 없었다. 정말 운전을 얼마 안 해서 그런 것일까. 운전을 100번 하면 달라질까. 200번 하면 달라질까. 차폭감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갑자기 고속도로에서 후진을 하는 차,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 차선으로 넘어오는 차, 그래도 깜빡이를 켜면 그나마 다행이지, 깜빡이 따윈 마치 없는 차처럼 무작정 차선 변경을 하는 차들이 흔한 말레이시아에서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을지 그것도 모르겠다. 거기에 자갈이 잔뜩 들어있는 비커의 빈 공간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물처럼 서커스 하듯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고 다니는 오토바이들까지. 조수석이나 뒷좌석에 타서 도로 상황을 봐도 무서운데, 운전석에 앉으면 오죽할까. 물론 내가 운전을 하면 좋아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안다. 편해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어쩌면 날 포함해서). 언제쯤 운전석 앉아 도로를 누빌 수 있을까. 말레이시아가 되었든, 한국이 되었든, 그날이 오긴 올까.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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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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