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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513.농구

puresmile 2023. 11. 3. 23:14

*농구

 

초등학교 때 날 연자방이라는, 지금 들어도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부른 친구가 있었다. 내 기억에 서울 어딘가에서 전학 온 그 친구는 얼굴이 참 뽀얗고, 하얬고, 마치 미용실에서 갓 매직이라도 하고 나온듯한 쭉쭉 뻗은 생머리가 절대 어깨에 닿지 않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살집이 조금 있어서(아마 젖살이었겠지) 웃을 때 굉장히 순해 보이던 그녀는 가을이 되자멋쟁이처럼 바바리코트를 입고 다녔다. 그 모습이 마치 형사같아보여서 내가 맨날 강형사라고 불렀다. 하루는 학교 끝나고 늦은 오후쯤 강형사랑 나는 다시 학교를 향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강형사가 농구를 하자고 제안했고, 의욕이 넘치던 나는 단숨에 오케이했다. 강형사가 농구공을 들고나왔고, 우리는 운동장 한구석에 있는 농구대 앞에서 열심히 공을 튀기고, 골을 넣어보려고 노력도 했고, 어쩌다 골이 들어가면 깔깔 웃으며 기뻐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농구가 아니라 공놀이에 가까웠지. 해가 질 때까지 그렇게 농구공을 튀기던 강형사랑 나는 운동장 스탠드에서 쉬다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한 잔 두 잔 비워내는 술잔!(근데 그때 가사 기억이 잘 안나서 '순간'이라고 둘다 말했던 것 같다),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초딩들에겐 딱히 어울리지도 않는 '한 잔, 두 잔'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뱉어내면서 그게 뭐가 웃겼는지 그렇게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에 안양천따라 러닝하고 있는데 옆에서 농구하는 사람들을 봤다. (초등학교때 나처럼 농구가 아닌 약간 공놀이 같긴 했지만) 20대로 보이는 남녀가 열심히 공을 튀기고, 골대를 향해 농구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농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맞아, 공놀이) 그리고 강형사도 보고 싶다. 그때 그 모습이 남아있을까.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내가 알아볼 수 있을까.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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