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1. 4월의 주말  
근 두 달만에 간 집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일 년 넘게 아무도 없었던 내 방은 이제 거의 창고 수준이 되어 있었고,
핸드메이드 동호회를 만들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동생 방은 거의 공방 수준이 되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모님 얼굴을 들여다 보았는데, 아직 예전 모습 그대로셨다.
원래 집에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나인데, 아빠가 밖에 나가서 회까지 떠오시는 바람에,
어쩌다보니 내 앞엔 꽉 찬 소주잔이 놓여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항상 건강하자!'를 외치며 짠을 하고, 소주도 마시고, 회도 먹고,
먹고 싶었던 김치전도 먹고, 엄마표 김치찌개도 먹고, 내가 온다고 사다두신 딸기도 먹었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만든 음식은 항상 엄마만의 맛이 담겨있다.
같은 메뉴를 다른 곳 어디에서 먹어보아도 맛 볼 수 없는 유일한 맛.
엄마는 조그맣던게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아빠랑 소주를 마시냐며 감회가 새롭다고 하셨다.
두런두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고, 소주 두 병 정도를 비운 후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각자 제일 편한 자세로 티비를 보았다.
어느덧 나도 부모님 댁이 생겼고, 부모님께 용돈이라는 것도 드리고, 이젠 사용하지 않는 내 방이 생겨버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순간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도 엄마아빠는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도 잔병치레를 자주 해서 병원과 조금은 친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병원에 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마냥 그냥 건강하자.

2. 램프의 요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사실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없을지도 모른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머피의 법칙마냥 무언가를 바라면 기대가 생기고, 그러면 꼭 실망이 따라온다.
그렇기에 난 그다지 무언가를 평소에 간절히 바라지 않는다.
그나마 꼭 바라는 것이 생긴다면, 무언가의 도전, 행위 등을 한 후 결과를 기다릴 때 정도.
그것도 내가 '후회없게 준비를 한 경우'라는 전제가 깔린다.
원인에 맞는 결과가 뒤 따라오고, 정비례 하진 않지만 노력에 따른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아무런 노력과 준비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바라는 건 너무 허황된 꿈이며 그림의 떡이다.

3. 거의 미녀와 야수에서 나오는 마법의 걸린 궁전 수준
그래도 램프의 요정이 있어서 소원을 빌어보라고 한다면,
내 냉장고가 과일화수분이었으면 좋겠고,
매일 머리를 감으면 빠져서 화장실 배수구에 남아있는 머리카락이
스스로 걸어가 쓰레기통에 들어가주었으면 좋겠고,
인덕션 위 웍에는 항상 따끈한 음식이 담겨져 있었으면 좋겠고,
공부하는 것들이 내 머리 속에 한 번에 다 들어갔으면 좋겠고,
물티슈들이 알아서 스스로 방바닥을 헤엄쳐 깨끗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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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1. 2017년의 만우절
만우절답게 새파란 하늘에 해가 쨍쨍 비추고 있는 와중에 
거짓말처럼 하늘에서 물이 떨어졌다. 그것도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비를 피하려 우산을 쓰고, 따뜻한 햇빛을 쬐며,
얼굴은 평온한 것 같으면서도 속에선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요즘 내 안에 '화'라는 기준선이 낮아진 건지, 아니면 정말 '화'가 날 만한 일이었는지,
사실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냥 조금만 이렇게 하면 어땠을까, 조금만 저랬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나'라는 존재가 개입되어버리니 화가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나'를 더 생각했으면, 조금만 '나'라는 존재를 배려했으면, 이라는 생각이 끼어들면서
결국 그렇지 못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화가 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더 중요해진건지도 모르겠다. 

2. 그들만의 (썩은)세상
요즘따라 어떻게 그런 기가막힌 말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여럿있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건지, 예민해서 그런건지,
(제발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지만)
저런 나이에는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는 건지,
(살면서 앞으로 내가 증오하는 종류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까봐 두렵다)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건강한 정신을 갉아먹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도 나름 할 말은 다 하고 지나가자고 하며, 혼자 신경전을 벌이느라 한껏 신경을 곤두세우며 지냈다.
휴. 지난 2주 간은 특히나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
이런 식으로 계속 살다간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나의 건강한 정신을 꾸준하게 영위하고 싶다. 
심호흡하고, 정신을 가다듬자. 좋아하는 것들만 생각하자.

3. 이랑,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게 상처를 줬던
그 사건들은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걸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는걸
알게되면
그대로 우리는
그대로 우리는
얼굴을 보며
마냥 서글퍼져서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고
한 땐
어쩌면 제일 즐거웠던
한 시간 모든 그 시간 아님 먼 하루에
그 기억을 둘 중에 하나만 갖고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그저 웃으며 인사하겠지만
사실 나는 모두 기억하고 있단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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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1. 조심 또 조심
베트남 돈은 동그라미가 참 많다.
동전도 없다.
지난번 호치민에 갔을 때,
그 동그라미에 둘러쌓여 (사실 술 기운도 한 몫 했다.) 그만 바가지쓰고 말았다.
조그마한 항아리같은 것을 3만원이나 주고 사다니!
그래도 3만원에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동그라미가 많은 화폐를 사용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또 여행가고 싶다.
사실 아무 생각없이 쉬고싶다.

2. 만두에 대한 단상
지난주 식당에서 만두를 먹었다.
고추만두였는데,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고추만두였다.
뭔가 먹음직스럽지 못했다.
만두는 뭔가 손으로 빚어 울퉁불퉁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나도 정확하게 생겨버린 만두는 정이 안갔다.

3. 둥글게 사는건 어렵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날수록 
둥글게, 더 둥글게만 살 줄 알았는데.
힘껏 날이 서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모서리는 둥글게 깎이다 말았으며,
누가 날 어떻게 찌를지 몰라 더욱더 끝은 더 날카로워지기만 한다.
날이 서다 못해 그 날에 나조차 베어 아프다고 소리지른다.

4. 심각한 사태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기만 하는 경우를 요즘 너무 많이 접했다.
혼자만 열심히 하면 뭐하나. 
열심히 집중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아주 우스운 현실이다.
의욕이 떨어진다. 동기부여는 커녕 솟아날 구멍을 찾기 바쁘다.
삭막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집중해보려고 노력해보지만.
아직은 타협할 수 없는 마음이 꿈틀거린다. 

5.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것들
좀처럼 상냥함을 만나기 힘들다.
좀처럼 따뜻함을 느끼기 어렵다.

6. 다른 때 말고
슬플때만 울었으면 좋겠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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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1. 슬픈 사실 
사실 이 곳에서의 초심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동기는 커녕 그 어떤 이유도 생기지 않았다.
이유가 붙이면 그만이기도 했지만,
붙이면 그만, 안붙여도 그만인 이유따윈 필요없었다.

2. 그냥 해봐 
'일단 해보자.'
이게 지금까지의 나를 만든 문장이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생각을 해봐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냥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겪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 문장때문에 쭉 뻗은 길을 놔두고, 빙빙 돌아온 적도 있고,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기도 했지만,
겪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하고,
금동아줄인지, 썩은 동아줄인지도 알 수 있다.

3. 너에겐 귀감이 되는 그 무엇이 무엇이니?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내 자신에게 귀감이 되는 무언가를 찾는 편이다.
2차원 적인 귀감보다는 어떠한 감정이 매개가 되는 귀감을 선호한다.
보통은 책, 노래, 또는 장소를 통해 찾은 적이 많다.
아, 어떨 땐 특정 시간과 날씨의 바깥 공기도 방법이다.
내가 원하는 귀감은 형태가 없다.
올바른 방향(인지는 100% 확실하진 않으나)으로 가는 느낌만 있을 뿐.

4. 번쩍
생각지도 못했던 칭송을 받았다.
나 자신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어떤 것을,
누군가가 내게 상기시켜주었다.
간간하게 나에게 건네주는 말들 덕분에 번쩍 정신이 들게 한다.
참, 감사한 일이지.

5. Direction
글쎼. 언제의 마음이 초심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내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초심 중 최우선이 아닐까.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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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recipe)

1. 나의 아침
이사를 하고, 가구를 사고, 마지막으로 주방 살림살이들을 채우는 중이다.
전기밥솥(사실 이건 집에서 밥을 직접 해 먹고 싶은 니즈에 의해 샀지만, 보온기능이 크게 떨어져 전자렌지를 살 예정이다.)을 샀고, 커다란 웍(파스타를 해먹을 용으로 샀지만 아직 파스타를 내 생애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다. 곧 시도해 볼 예정이다.)을 샀고, 주걱(고르고 골라 투명한 주걱을 사왔는데, 막상 집에와서 보니 예~전에 엄마가 챙겨준 새 주걱이 서랍장에 있었다. 그리고 전기밥솥에도 미니주걱이 딸려왔다. 결론은 난 주걱부자다.)을 샀고, 마음에 드는 포크를 샀고, 더치커피를 마실 기다란 유리잔도 샀다. 그리고 한 시간 이상 심혈을 기울여 고른 그릇들(하지만 그릇 선반이 없어 쌓아두었기에 꺼낼 때 깨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꺼내야 한다.)도 수납장에 채워넣었다. 조미료들을 담을 조미료 통도 사서 조미료를 채워넣었다. 이젠! 나만의 레시피로 요리할 일만 남았다. 지금으로써 가장 요리를 자주하는 시간은 아침이다. 평소보다 20분정도 일찍 일어나서 눈을 비비며 인덕션 위에 후라이팬을 올리고 온도를 올린다. 그리고 포도씨유(올리브유도 있지만 이건 나중에 파스타할때 먹으려고 아껴두고 있다.)를 후라이팬에 한 바퀴 돌리고, 후라이팬이 달궈지길 기다리며 냉장고에서 사과, 달걀, 샐러드야채, 드레싱을 꺼낸다. 샐러드야채를 그릇에 담고 드레싱을 뿌리고나면 후라이팬이 달궈진다. 그러면 달걀을 후라이팬에 풀어 계란후라이를 한다. 풀어진 계란의 한 면이 다 익을 때 쯤 뒤집개로 노른자를 터트린다. (난 완숙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완반숙!) 그리고 계란을 뒤집어 남은 면도 익힌 다음, 접시에 옮겨담는다. 그리고 사과를 씻어 사과 반 쪽을 깎아 접시에 옮겨 담으면 아침 완성! 내일 아침에도 이렇게 먹어야지. 질릴 때쯤 메뉴를 바꿔봐야겠다. 사실 내일은 베이컨이 추가 될 예정이다. 예전에 사둔 베이컨의 유통기한이 오늘까지라는 소식.. 냉장고에 넣어두었으니 내일 아침까진 괜찮겠지?

2. 뭐든 해보면 알게 되겠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어?"라는 물음에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요리를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으며, 그나마 해 본 요리들은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밑반찬 정도와 20대 초반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께 해드린 버섯전골정도. 뭐, 이제부터 하나씩 해보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모든지 원하는 건 해준다고 큰소리쳤지만, 나도 내가 제일 자신있어하는 요리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잡채를 제일 좋아하는데, 잡채를 연마해볼까? 아니야, 김치전도 좋아하니 김치전을 연마해볼까? 아니야아니야, 가벼운 걸 좋아하니 월남쌈을? 하지만 월남쌈은 손이 부지런하면 되는거 아닌가. 뭐, 뭐든 해보면 알게 되겠지! 

3. 우리 관계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봐
어떤 관계던, 의무적인 관계는 너무 슬픈 것 같다. 관계에 대한 의미가 무뎌지면 의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관계에 대한 희망이나 욕심따위 등이 없으면 괜히 의무감이 커지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알맹이가 없이 껍데기만 남아있는 느낌이 들면 그걸로 관계는 끝일 것이다. 아무 발전이 없는, 생산적이지도 않은, 영혼이 없는, 의무적인 관계를 더이상 만들지 말자. 우리 모두. 자신도 모르게 의무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4. 비법전수가 필요해요
집에 기름을 사용한 요리를 하면 기름냄새가 깔끔하게 사라지지 않네요. 요리 후 캔들을 꾸준하게 켜놓고 있지만, 혹시라도 더 확실한 방법이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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