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1. -
사랑은 너무나도 현실인 것이라,
무얼 바라기도, 무얼 요구하기도, 무얼 원할 수도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내뱉기에는 무색해진 단어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표현하기에는 내게 서먹한 감정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이제 표현받기엔 이리저리 겉을 떠도는 마음갈피들을 잡을 힘조차 부족한 감정이다.
자존심은 사랑을 무심하게 스치고,
자존심은 사랑이라는 것을 마치 까맣게 잊은 것마냥 거리낌없이 내세워지고,
자존심은 사랑에게 한 톨의 배려도 용납하지 못하고,
이기심은 사랑을 비웃듯 무시하고,
현실은 사랑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조차 모르게 한다.
그 어느 곳에도 로맨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2. -
그는 쿨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였다.
그는 그냥 내게 무심했던 것이였다.
그는 내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였다.
그는 절대 쿨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내게만 다정하게 대하는 줄 알았다.
나는 그에게 전부인 줄 알았다.
나는 그가 나를 많이 그리워하는 줄 알았다.
나는 그에게 감성적인 존재인 줄 알았다.
나는 오만했으며, 어리석었다.

3. -
사랑은 잊혀질까 두려워 항상 불안함에 몸을 떨었고,
사랑은 사랑이 혹여라도 질릴새라 토로하지 못했고,
어쩌다 내뱉은 불만이 사랑에 대해 생채기가 날까봐 두려웠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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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

1. Life is
죽게 되는 순간이 닥치면 지금까지 살았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는데,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일 경우 그 주마등을 이루는 기억들이
어떤 기억들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것들을 기억하려고 했다.
그런데 과거를 기억하려고 애쓰니, 
애써 잊고 싶었던, 좋지 않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좋지 않았던 순간들이 하나 하나 기억해내는 나도 웃기지만,
애써 떠올린 내 자신 덕분에 우울해진 나도 웃겼다.
만약 내가 죽을 고비에 나의 좋지 않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면
더 우울해져서 차라리 죽고싶은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아니야, 역시나 죽음은 두려운 것이고, 아무리 잊고 싶은 순간들이 와도
내가 살아있는 것이 곧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끝을 맺었다.
근데 정말 살아있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그렇겠지?

2. -
억지로 하는 모든 것들은 전부 슬프다.

3. -
진심을 다해 마음을 표현해도,
아닌 건 아닌거고, 통하지 않는건 통하지 않는 것이였다.
진심은 아무 힘이 없다.
가여운 마음의 종류일 뿐이다.
씁쓸하다.

4. -
의미가 없어져버린 순간들.
의미 없는 대화들.
의미 없는 물음도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우울하고, 속상하고, 슬퍼져서
아예 생각하지 말까도 싶었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내가 들은 말들은 결코 내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날카롭고 잔인한 말들.
난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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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1. 죄책감
집 앞 복도 끝에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그곳은 타칭 택배함으로 이 건물 택배는 층마다 있는 보일러실에 배달된다.
우리집 호수가 매직으로 크게 쓰여져 있는 택배상자가 두 개 있었다.
두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하나는 저번주에 주문한 블라우스였고, 또 하나는....
피크닉 세트?
난 피크닉 세트를 시킨 적이 없다.
오늘따라 택배 상자를 바로 칼로 뜯지 않고 무심코 택배 상자 겉에 쓰여져 있는
내용물을 읽어본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소를 확인해봤다.
옆옆집 택배였다.
어떻게 된건가 생각해보니,
택배 아저씨가 깨알같이 작은 폰트 사이즈로 붙어있는 주소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배달하기 위해
매직으로 호수를 크게 써 놓은 곳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주소 스티커에는 옆옆집이였는데, 실수로 우리집 호수를 매직으로 크게 써 놨던 것이다.
피크닉세트를 시킨 옆옆집 사람에게 더 기다리지 않게 다시 그 택배상자를 보일러실에 갖다 두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나.
퇴근 후 불현듯 그 택배상자가 떠올랐다. 잘 찾아 갔겠지?
혹시 매직으로 크게 쓰여져있는 우리집 호수 때문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대로 있는건 아니겠지?
또다시 복도 끝에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아니나다를까 택배는 그대로 있었다.
정말 매직으로 크게 쓰여진 우리집 호수를 보고 찾아가지 않은걸까?
아니면 바빠서 아직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지 않고 있는걸까?
아.. 저 매직 호수 자체를 내가 차라리 제대로 바꿔놓을까? 
흠, 집에 굵은 매직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매직이 없었다.
뭐, 알아서 잘 가져가겠지. 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났다. 계속 그 택배가 마음에 걸렸다.
괜히 내가 매직으로 호수를 제대로 바꿔써주지 못했던 사실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았다.
택배가 사라졌다.
드디어 잘 찾아갔구나, 하며 괜히 안심이 됐다.
죄책감도 사라졌다.

2.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확인해보니 소셜커머스 링크를 내게 공유해줬다.
뭐지, 하고 열어보니 2L생수 8통을 엄청 싸게 파는 링크였다.
나는 바로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다.
이 소소한 구매는,
친구와 나 모두의 속이 다 시원한 구매였다.
전말은 이렇다.

물은 무겁다.
2L짜리 물통은 정말 무겁다.
2L 생수 6통은 너무너무 무겁다.
어느 주말,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 앞에 2L 생수 6통짜리들이 엄청 많이 놓여있었다.
심지어 굉장히 싸게 세일하고 있었다.
마침 집에 생수가 떨어져서 물을 살 마음에, 편의점 앞으로 다가갔다.
생수 6통을 단단하게 묶어놓은 끈을 잡았다.
영차!하며 팔에 힘을 줬는데 들지 못했다.
다시 한번 영차!하며 팔에 힘을 줘서 들으려고 노력했다.
생수들은 옆으로 이동만 할 뿐 들리지 않았다.
아.
너무 웃기고, 황당한 마음으로 다시 뒤돌아서 집으로 걸어갔다.
생수 살 돈은 있어도 생수를 들 힘이 없다면 생수를 싸게 사지도 못한다.
그냥 한 통, 한 통 사 마셔야 하나.
생각해보면 집에 생수를 들고왔던 사람은 내가 아니였다.
종종 친구들이 집에 놀러올 때 생수 6통짜리를 사 들고 왔었다.
그렇게 받기만 했더니 생수가 이렇게 무거운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 서글픈 순간을 친구에게 토로했다.
예전부터 종종 친구는 내게 말했다.

제발 물, 이런건 인터넷으로 주문하라고.
그럴때마다 나는 물은 너무 싸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괜히 택배아저씨 무겁게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서 시키지 않는다고 대답했었다.
다시 친구가 반박했다. 집 건물이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주문해도 괜찮다고. 진짜 착한거라고.

어느 날 우리집 앞에 물이 배달되어 있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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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아요

1. 나의 과거
그 때의 나는 무엇이 옳은건지, 그른건지 판단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
지금 현재 내가 숨쉬며 살고 있는 것이 제일 중요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곧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누굴 만나고 재미있었고, 어떤 것들을 해도 즐거웠으며, 
추운 겨울 밤에 밖에 나가 낯선 동네를 달리는 일조차 흥겨웠다.
그 당시의 우리들은 거의 24시간 중 자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들을 함께 하였고,
이런 것이 바로 최고의 팀웍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잘 맞았다.
서로 이해관계를 절대 따지지 않았으며, 거의 세 명의 돈이 공공재였으며,
누군가 무엇을 제안하면, 호불호와는 별개로 모두들 기뻐하며 함께했다. 
모두가 바라보는 그림은 하나였(겠지)으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반드시 믿었다.
하루하루 나쁜 일이 없는 것이 행복했고, 항상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다녔으며,
혹여라도 안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응원도 하고, 욕도 했다.
눈치를 볼 사이도 아니였고, 배려랍시고 가식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내가 자유와 책임이라는 것을 느꼈던 시기였고, 
어떠한 규율이나 억압에서도 벗어났었으며, 조금의 불만도 없었다.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였다. 
종종 무언가에 부딪쳐 고민하거나 갈등이 될 때마다 나는 그 때의 나를 생각한다.
돌아보면 무언가 삶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에 오늘도 감사하다.

2. 소통불가
알면 알수록 소통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
만날 때마다 동상이몽이라는 생각이 너무하리만큼 들고,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딱 맞는 사람.
보통 그런 사람이 만나자고 했을 경우에는 내 경험상으로 딱 하나다.
자기 만족에 나를 만나자고 하는 사람.
나와의 만남이 자신의 어떤 계획이나 그려놓았던 궤적에 맞춰지기에 만나자고 하는 사람. 
그렇다고 그 사람이 내게 어떤 악의가 있는 게 아닌 건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어렵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알게모르게 내 자신이 소외되는 것을 느낀다.
분명 서로 마주보며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소외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만남은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내 중심에서 볼 땐 껍데기만 있는 만남이다.
그런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3. 세상의 진리
빛 좋은 개살구들이 많이 걸어다닌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4.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넌 나를 기억할까.
아주 가끔 떠올려보는 질문.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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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1. 슈퍼 안으로 날아들어간 사람
조금 더 싼 가격을 찾아 헤매던 한 여자애는
길가에서 허름하지만 작은 두 가게정도를 합쳐놓은 것만 같은 슈퍼를 찾았고,
저 슈퍼에는 마치 찾던 물건이 합리적인 가격에 있을 것만 같아 씩씩한 발걸음으로 슈퍼에 도착했고,
미처 보지 못한 슈퍼 입구의 높은 문턱에 걸려 슈퍼 안으로 거의 날아들어가게 되었다.
슈퍼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 카운터에는 주인 할아버지가 앉아있었고,
슈퍼입구를 기준으로 왼쪽 난로가에는 주인 할아버지 친구가 앉아있었다.
정확히 두 할아버지의 중간에 갑자기 어떤 여자애가 날아서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착지했으며,
그 두 할아버지는 너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벌떡 일어났다.
그 여자애는 사실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두 할아버지의 리액션에 덩달아 놀라 '아얏! 아프다'라고 내뱉었으나,
사실은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다리가 풀려 계속 털썩 자세로 일어나지 못했다.
두 할아버지는 그 여자애의 양쪽 팔을 잡고 일으켜세웠으며, 연신 괜찮냐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기 바빴고,
이제 다리에 힘이 생겨 걸을 수 있는 여자애는 치마를 툭툭 털며 '괜찮아요!'라고 외치며,
'혹시 여기 콘센트는 어디있어요?'라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고, 
주인 할아버지는 '귀하고 어렵게 오셨는데 콘센트가 어딨더라' 하면서 선반을 뒤적거리며 콘센트를 찾으려했고,
결국 콘센트를 찾지 못한 주인 할아버지는 '콘센트가 원래 있었는데..'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귀하고 어렵게 오신' 여자애는 괜찮다고 웃으며 높디높은 슈퍼 문턱을 찬찬히 바라보며 
이번엔 정확히 디디고 나가야겠다는 생각과, 그럼 집 앞 편의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로가에 다시 앉았던 주인 할아버지의 친구 할아버지도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며
그 여자애는 다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2. 여름감기
목소리가 갈라진다.
쉰 목소리가 난다.
며칠 전 병원에 가보니 급성인후염이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이 다시 말하면 그냥 목감기라고 하면서 약 잘 챙겨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약을 잘 챙겨먹었는데,
술도 안마시고, 커피도 정말 거의 안마셨는데.
목소리가 갈라진다.
쉰 목소리가 난다.
나는 겨울에 참 튼튼하다.
하지만 여름에 감기가 걸린다.
여름감기가 독하다던데.
돌아보면 심하던 약하던 그냥 다 여름에 끙끙 앓았다.
겨울 추위에는 강해도,
에어컨 앞에선 한없이 약해진다.
회사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자마자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무릎담요도 잘 덮고 있었는데. 
음. 저녁 약을 챙겨먹어야겠다.

3. -
시간이 흘러도 마음의 짐이 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짐의 무게가 더 선명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덜 곳 조차 없었고,
차라리 외면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큰 것을 어찌 외면하리.

4. 생각을 해보니까
나는 다정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 좋다.
나는 나에게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 좋다.
나는 다정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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