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1. 그 시절의 일탈

고등학교때 제일 친했던 친구랑, 어느 가을에 같이 야자(란 말도 정말 오랜만이다)를 몰래 빠지고,

수원 남문에 타로카드를 무작정 보러 갔었다. 우리는 누구에게 수원 남문의 타로가 그렇게 잘 본다는 소문을 들었을까. 

버스를 중간 지점에서 내려서 한번 더 갈아타야했었는데, 그 중간지점인 버스정류장에 빵집이 하나 있었다.

학교에서 저녁도 안먹고 바로 나왔기에 배가 고파서 둘이 빵을 나란히 사서 다음 버스로 환승을 했다.

난생처음 남문에 도착한 우리는 찾고 찾아 허름한 상가 안으로 들어갔다.

상가에는 이미 밖에 대기석같이 포장마차 의자처럼 플라스틱 의자가 주욱 놓여져 있었고,

그곳엔 우리와 같은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깔깔대며 앉아있었다.

친구와 나도 빈 의자 하나에 번갈아가면서 앉아 두근두근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차례가 다가왔고, 커텐 막을 올리며 좁디좁은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 타로카드 점술사에게 그 당시 무슨 질문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보단 

점술사의 손이 굉장히 현란했다는 점과 화장이 너무 화려해서 약간 무섭다는 기억만이 남아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었을까.

사실 그땐 궁금한 것들이 단순했었을지도 모르는데.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타로점에 대한 신뢰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얘기와,

과연 학교에서 야자를 튀었다는 사실이 선생님 귀에 들어가진 않았을까라는 조바심과,

학교에 남아있는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으니 아무일도 없이 지나갔을 거라며 안도를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그 시절 귀여웠던 고등학생때의 일탈.


2. 광주의 기억

작년 여름에 내가 좋아하는 과장님이랑 광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과장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과장님이 동양철학, 사주풀이, 역학 등등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덕분에 과장님이 내 사주풀이도 해주셔서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과장님한테 물었다.

아홉수라는 것이 있냐고. 29살이 된다면 아홉수일텐데 진짜 그게 있는 거냐고.

과장님은 아홉수를 안 믿는다고 했다. 

모든 것은 믿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믿는 사람한테만 해당된다고 했다.

그 말이 내게 와닿아서 나도 아홉수를 믿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그리고 올해, 스물아홉살이 되고, 누군가 내 나이를 듣고 '아홉수네' 라고 하기 전까지 

난 한번도 아홉수라는 말을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나쁜일이 생기지도 않았으며, 그냥 잘 살아가고 있다.

문득 작년에 과장님이 해줬던 말이 생각나면서, 그 말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아홉수를 검색해보니 어느 누구는 나이에 9가 들어가는 것을 아홉수라고 하진 않는다고 하며,

어느 누구는 사람마다 아홉수는 따로있다고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좋지 않은 일들이 어느 순간에 일어난다고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며,

언제 내게 닥쳐올까 걱정하며 살기엔 오늘의 하늘이 너무 맑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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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털다

1. 현재진행중

추억이 쌓이고, 경험이 점점 많아질수록 자꾸만 과거를 뒤돌아보게 된다. 앞날이 더 많은데. 과거를 돌아보지 말자. 과거는 힘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정확히 말하면 추억이라고 하지만) 이미 지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는 법. 최대한 과거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에 더 집중해야지. 과거는 과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과거가 그리워져도,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뿐더러, 그림의 떡마냥 당장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냥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지. 지금도 언젠간 과거가 될 테니까.


2.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회사에 비슷한 또래의 동료가 있다. 나보다 두어달 늦게 입사한 그 동료는 시간이 지날수록

입 밖으로 소리만 냈다하면 90%정도를 투덜댔다. 물론 여기저기 치이고, 바쁘고,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이 일을 해도 투덜대고, 그렇다고 저 일을 해도 투덜대고,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투덜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 내가 봤던 그는 굉장히 씩씩하고, 밝고 웃음이 많았는데,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하게 했을까. 5일 내내 찡그리고, 투덜대면 주말에 예쁜 여자친구를 만날 때도 습관적으로 투덜대진 않을까. 라는 괜한 상상을 해보았다. 

갈수록 주변에 밝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다들 찌푸리고, 찡그리고, 짜증나있고, 무서울정도로 정색을 하고 있다.

우리는 다들 고되고 힘든건 마찬가지일텐데. 

누구하나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도 없을텐데.


3.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너무 의지가 넘친다고 했다.

그래서 의지조차 없으면, 어떤 움직임도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4. 어느 저녁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도림천을 신나게 지나고 있는데,

앞에 어떤 아저씨가 어떤 음악를 들으며 자전거를 타고 갔다.

내가 속도를 내어 점점 그 아저씨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것은 그 아저씨의 노래소리였다.

너무 빠르지 않은 적당한 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그 아저씨는,

불어인지, 스페인어인지, 잘 가늠은 되지 않지만 샹송비스무리 한 것을 큰 소리로 부르며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마치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실제로 마주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의 장면 중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없었지만) 내가 오늘 이 시간에 자전거를 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그 아저씨는 마치 천국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아무 걱정없이 사는 도인과도 같았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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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1. 2017년 9월의 나의 이상형
누군가 내게 물었다.
이상형? 비스무리한 것을.
고민끝에 난 그냥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것을 느껴서 더 소중한 것 같다.

그리고 나조차도 내가 바라는 사람이 맞는지 사실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

마음에 든 멍은 사라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물론 치유시간이 무릎 등에 든 멍보다는 꽤나 오랜 시간이지만)
서서히 사라지긴 하더라.
때에 따라 그 자리에 새로운 멍이 들기도 하겠지만,
겁내지 않고 그냥 난 오늘을 건강하게 살아보련다.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아보려고 할거다.


2. 신 좀 그만 나
무릎에 또 멍이 생겼네.
맨날 어디에 부딪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신나면 신나는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분명히 어딘가 무릎이 부딪쳤기에 생기는 멍인데,

난 또 그 순간 신이나서 (또는 다른 데에 집중해서)

아픈 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겠지 뭐.

운동할 때 빼곤 치마만 입고 다니는 내 취향 덕분에

오늘도 내 무릎은 남아나질 않는다.


3. 그래도

자꾸 바라는게 생길까봐 걱정이야.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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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1. 어느 날의 일기.
회사에서 클라우드로 제공되는 시스템을 기획하면서 느낀 점들.

 -전문가인 척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심으로 시스템이 구현되길 원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예컨대 그냥 하라고 해서 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태도는 확연하게 갈린다. 눈빛부터.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귀찮아하는 사람들과 최선을 다해 알려주려고 하는 사람들(...)

 -겉모습으로만 가볍다고 판단했던 사람이였건만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자신만의 깊이가 있는 사람들.

 -겉모습으로만 보았을 때 대단할 것만 같았던 사람이였건만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별 깊이가 없는 사람들.

 -ERD에 대해서 흥미를 가졌다. 더 구체적으로 배우고 싶어졌다.

 -화면기획보다 어쩌면 데이터모델링이 나에게 더 재밌을 지도 모르겠다.

 -욕심은 끝이 없고, 욕심을 내는 것에 비례하여 자괴감이 든다.

 -사람을 보고 어떤 학문에 뛰어 들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해관계를 생각해서 딱 잘라서(정말 너무 잘 드는 칼 처럼) 말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것도 기술이라면 대단한 기술이지)

 -나는 아직도 멀었다.


2. 귀여운 구름들 아래에서.

여름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여름은 하루 자고 일어나도 다음날 그대로 여름인 날이 많아. 그런데 가을의 경우는 하루 자고 일어나면 더 추워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서 하루하루 일어날 때 마다 얼마나 추워졌을까 조마조마해. 겨울은 그냥 맨날 추우니, 추운걸 싫어하는 내겐 말할 것도 없고. 


3. 마치 창고에서 해묵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처럼. 

8년 전에 타임라인이라는 것이 유행했었을 때가 있었다. 상단에는 쭈욱 시간의 흐름대로 타임라인이 늘어져 있었고, 사용자는 자기가 적고 싶은 말을, 기분대로 5가지 표정을 선택하여 입력하는 창이 있었다. 생각을 입력하면 구름모양의 말풍선이 떠오르고, 선택한 표정에 따라 구름의 표정과 색이 자동으로 선택되었다. 그것은 여러가지 서비스들에 밀려 결국 더이상 진행되진 않았지만, 아직 내 구글 드라이브에는 화면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 때 이 화면들 앞에서 어떤 미래를 그렸을까. 


4. 숨통

속 시끄러운 날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물론 속이 시끄러울 법도 하지만, 시끄럽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

조금만 더 놓자. 조금만 더 멀리 생각해보자.

떠가는 구름처럼 그냥 유유히 흘러가보자. 그래도 되잖아.

하나하나 다 내 마음대로 붙잡고 가기엔 벅찬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

손에서 조금씩 놓아버리면, 떠나보내버리면 마음이 편하잖아.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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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면


언제부턴가 정자세로 누워야 잘 잔 것 같다. 종종 불을 끄지 않은 채로 잠이 들거나, 옆으로 누워서 아이폰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든 적도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면 뭔가 몸이 찌뿌둥하고 잘 잔 것 같지 않다. 어제가 그랬다. 일어나보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것도 매일 자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누운 채로. 뭔가 꿈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진 않았지만 꿈 속에 내가 어떤 상황때문에 당황하는 꿈이였던 것만 떠올랐다. 에잇. 불도 제대로 안끄고, 똑바로 누워서 안잤기 때문일꺼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잠자는 것은 곧 내 몸 어딘가에 달려있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어디에선가 상처를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운동을 하거나 등등 몸이 피곤하고 힘들 때면 마치 내 몸의 배터리가 10%도 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이 너무 우울할 때도. 그럴 땐 잠이 최고지. 그것고 정자세로 누워서 곤히 잘 자는 그런 잠 말이다. 오늘도! 나는 불을 제대로 끄고, 정자세로 누워서 잘 것이다. 꼭 그래보자!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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