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릭 그래 어쩌면 너같이 변하지 않는 물건들에게 빠져버린다면 오히려 덜 상처 받겠다. 물론 생명이 아닌 것들과는 비교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여전히 생각은 들지만. 난 사실 물건에게 그다지 미련이 없어. 뭐, 받은 편지, 선물, 의미있는 책 등은 물론 내게 소중하지만 말야. 언제부터 미련이 없어졌나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때, 그것도 대학교 첫 수시를 보러가는 아주 중요한 날 아침에,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누가 교실에 들어와서 내 가방 안에서 지갑을 훔쳐갔던 것 같아. 내가 학교에 오려고 버스에서 내렸던 그 사이까지만해도 지갑이 있었으니 말이야. 내가 교문에서 교실로 걸어오는 중간에 떨어트렸을 가능성은 엄청 낮은 것 같고. 더구나 그 지갑은 내가 처음으로 가졌던 명품지갑이였다? 엄마가 해외여행 다녀..
*찰떡 1. 생각보다 행동이 느린 요즘. 하나도 나와 찰떡인게 없을 정도로 무심하고 공허하고 외로운 나날들.2. 한 때는 내가 바라는 이상과 매우 흡사해버려서 놀랐지만, 알고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였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3. 그래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친구들이 아직 있다는 것에 감사.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http://doranproject.tum..
*고속도로 1. 꼭 A라는 직업을 가져서 성공을 하고, 꼭 B라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앞으로의 일생을 함께하고, 꼭 C만큼의 돈을 가질 수 있고, 꼭 D라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라고 했다. 이 세상에 A가 무엇인지, B가 누구인지, C가 얼마인지, D가 어떤 방향인지는 아무도 정답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것이 그 날의 위로였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듯 모든 것들이 순탄하게만 흘러간다면 나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도, 내가 누구인지 알 기회도, 과연 내가 온전한 나로서 지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2. 나보고 산청까지 운전을 하란다. 단 한 번도 고속도로를 탄 적이 없는 내게. 처음부터 끝까지 운전을 하라..
*아침 1. 종종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나갈 준비하기 바쁜 와중에, 고등학교때 엄마가 아침 거르지 말라며, 김에 밥을 동그랗게 돌돌 말아서 조그마한 접시에 담아주던 때가 생각난다. 아침에 엄마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 엄마도 나갈 준비하기 바쁘면서. 바보. 아침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을 때가 진짜 행복에 겨운 때였다. 2. 내가 기억하는 어느 아침은, 잠결에 내가 이불을 발로 차서 걷어냈는데, 네가 언제부터 깼는지 모르겠지만, 조용히 다시 이불을 내 위로 덮어주던 아침. 3. 내게 아침이란 아쉬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시간. 4. 그 말을 들은 후, 나 또한 왜인지 모를 안정감이 조금은 들었다. -Hee -----------------------------------------------------------..
*방어 1. 너는 널 위한 최선의 방어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미워도 나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이제 어떤 길을 나아가야 할까. 언젠가 나도 담담하게 너를 기억하는 날이 오겠지. 지난 날들 동안 정말 고생많았어. 우리 모두. 2. 조금은 천천히 가을을 즐기자. 당장에 달려가고 싶어도, 조금은 느리게 걷자. 그래도 괜찮겠지. 3. 웃기 싫어도 웃고, 말하기 싫어도 말하고,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그런 치졸한 방어.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팥빙수 1. 통조림팥을 뜯어 빙수를 만든 적이 있는데, 너무 상업적인 곳에서 그 통조림팥을 처음 만나서 그런지 몰라도, 통조림팥만 보면 마냥 상업적, 자본주의, 이런 생각밖에 안난다. 2. 팥빙수가 싫어 과일빙수가 맛있는 곳을 찾던 도중에 망고빙수가 맛있다는 곳을 찾았고, 너에게 거길 가자고 말했다. 여름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카페 안에는 에어컨이 너무 세서 무릎이 시려웠다. 더구나 입안에서 녹아야 하는 망고들은 너무 얼어서 이가 시려울 정도였는데, 그래도 너랑 얘기하는 게 재밌어서 추운 티도 내지 못한 채 너의 이야기를 들었고, 깔깔대며 웃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너는, -Hee -----------------------------------------------------------------------..
*키 1. 언젠가부터 자라나는 키가 멈췄다. 키가 더이상 크지 않는 대신에 그 에너지가 넓은 아량이 되거나, 포용할 줄 아는 너그러움이 되거나, 용서할 수 있는 마음 따위 등등은 되지 못한 것 같다. 키가 더이상 크지 않는 대신에 우리는 무언가의 탓을 하기 시작했고, 누군가에 대한 불평을 하기 시작했고, 부족함에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숫자에 민감해졌고, 시간에 쫓기고, 체제에 버티고, 지나가는 날에 지쳐간다. 더이상 감정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단조로워진 몇몇 주제에만 구운지 오래된 오징어를 씹는 것처럼 되새김질 하고 있다. 단조로워진 주제에 숨이 막히고 매우 지루해진다. 너무 재미없다. 2. 될 수 있는 한 꾸준하게 들으려고 노력하는 이근철의 팟캐스트에서 이근철이 말했다. 삶에 다양한 색을 입히는 것..
*긴장 1. 막상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 보다, 무대 위에 올라가기 바로 직전인 무대 뒤가 더 긴장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잘할 꺼면서. 2. 예전보다 넌 너의 세계가 많이 편안해진 듯 보였다. 대화 속에 자신감이 새어 나왔고, 부분부분 여유가 묻어 나왔고, 조금 더 대담해졌다. 너의 달콤한 말들 속에서, 긴장하지 않으면 아무 생각없이 마냥 너의 말대로 널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내게 따뜻함과 희망만을 심어주는 너에게 난 무엇을 줄 수 있을까. 3. 아닌척 하면서도, 그러지 않아 보였어도, 사실은 종종 흘러가는 시간에 긴장하고, 새삼 옳지 않은 선택은 아닐까 긴장하고, 대답을 준비하지 못한 질문에 긴장하고. 얄궂은 너의 눈빛에 긴장하고, 시기와 타이밍의 존재를 의심하며 긴장하고, 마음이 들킬..
*착각 1. 착각 너를 좋아하기보다는 어쩌면 날 좋아하는 너의 모습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네가 내(모습이든, 행동이든, 말 한 마디든)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화를 낼 때에, 나도 네가 정말 미웠다. 내가 정말 불합리하다고 할지언정 너는 내게 화를 꼭 내야만 했을까. 나는 너를 어디까지 믿어야 했던 것일까. 2. 착각 나 또한 그 굴레에서 벗어났을 거라고 여러번 생각했다. 여러 해의 생일에서도, 조그마한 아이폰 화면에서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이제 너는 내게 없는 사람인줄로만 알았던 적이 여러번. 3. 착각 왜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넌 나를 예전의 나로 그대로 보고 있지 않았다. 지금의 나를 그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난, 네가 예전의 나로서만 나를 기억하고, 그 당시의 나를 좋아하고 있는 줄로..
*상사 1. 불행(한건가)하게도 난 아직 인생상사를 만난 적이 없다. 첫 번째 상사는 내가 너무 철부지여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진가를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상사는 이성보단 감정적인 사람이여서 결국 떠났으며, 세 번째 상사는 일처리가 꽤나 이상적이고,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여 그녀스스로도 터치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덩달아 나마저도 편했다. 네 번째 상사는 팀원들에게 모든 것을 통찰한 것처럼 말을 하지만 결국 그 윗상사의 불합리한 업무를 생각보다 쉽게 굴복하고 가져와 팀원들을 결국 힘들게 했다. 나는 앞으로 몇 명의 상사들을 더 거치게 될까. 진심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 과거에 내가 멘토라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러가지 스스로의 경험들과 지혜들을 내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