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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341.구겨지다

puresmile 2020. 7. 19. 16:41

*구겨지다

1.
다림질을 못하겠다.
어떤 블라우스를 세탁기에 빨면 
매우 쉽게 구겨지는 원단을 가졌던데.
다림질 그게 뭐 어렵냐 하겠지만
내겐 어려워.. 
그래서 구겨진 블라우스 3-4개를
집 앞 세탁소에 맡겼다.
세탁도 필요 없고 그냥 다려달라고만 했는데
다행히 다려준다고 했다.
세탁소 직원이 나보고 옷걸이가 필요하냐고 묻길래
집에 옷걸이 많으니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게 큰 실수였다.
약속한 날 블라우스들을 찾으러 가보니
곱게 다려진 블라우스들이
큰 세탁 봉투 안에 접혀져서 (^^) 밀봉이 되어있었다.
집에 와서 밀봉된 봉투를 뜯어 블라우스를 꺼내었더니
역시.. 몸통 부분은 접혀진 모양대로,
팔 부분들은 또 다른 모양대로 구겨져있었다.
헤헤.
난 왜 세탁소에 다림질을 맡긴 걸까.
쉽게 구겨지는 원단을 가진 블라우스들은
다시 옷장 속에 고스란히 걸려있다.
스팀다리미 작은 건 예전에 써봤는데 그건 그거대로 어렵던데..
음.
모르겠다.

2.
사실 그때 답장을 하지 못한 건,
내가 네게 또 빠질까 봐.
근데 넌 그 이후로 다시 연락하지 않더라.
단 하나의 메시지도 없더라.
넌 너대로 마음이 구겨졌을지도 모르지.
난 나대로 마음이 구겨졌고.

3.
천장만 보고 누워있던 적이 있었지.
너무 어이없고 허무하고 슬프고 원망스럽고 
바깥 날씨는 이렇게 좋고 반짝이는데
나만 이렇게 있어야 하는 게
너무 화가 났었지.
이렇게 사람들이 마음속에 화가 많이 나서
사람이 화병이 나는구나 싶기도 하고.
그깟 감정 상한 게 뭐 대수라고
누구 하나 굽히지 않고 뻣뻣하게 곧추세우며
서로를 마구 물어뜯으며
그렇게 어느 여름날을 보낸 적이 있었지.
여름날이 오면 하고 싶었던 모든 계획들은
다 물거품이 되었고,
시간이 아까워서 속이 타들어갔었지.
그땐 고민이 많았다. 
그때만 그런 것인지,
또는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

4.
그렇게 들으라고 
신나게 드럼을 두드리고 
베이스를 튕기지만
애써 외면한다.
외면해버린다.
완벽하게 구겨진 내 모습이
그 음악에 투영되어 보일까 봐.
그 모습이 거울처럼 내 앞에서 서성거릴까 봐
그냥 외면해 버리고 만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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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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