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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1.
처음 가계부를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앱스토어에서 몇 개의 가계부 앱을 다운받고 사용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떤 가계부 앱은 로딩 자체가 오래 걸렸고, 어떤 가계부 앱은 (내겐) 불필요한 UI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가계부 앱은 그냥 못생겼었다. 그렇게 여러 가계부 앱을 거치고 나서 겨우 한 가계부 앱에 정착을 했다. 아이콘과 테마를 소소하게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귀여운 앱. 또 그런 자그만 기능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몇 년째 늘 그 가계부 앱만 사용 중이다. 나의 가계부 사용 목적은 다음 달에 빠져나갈 카드값이 얼마나 되는지, 여러 계좌에 현재 얼마의 잔금이 남아있는지, 어떤 계좌에 얼마를 더 이동시켜야 하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위함이다. 어떤 글에서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은 다신 쳐다보지 않을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던데, '오답노트'란 표현은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쳐다보지 않을'이란 표현은 공감됐다. 나 역시 이미 소비한 지출 목록은 쳐다보지 않는다. 내겐 '만약 후회하거나 자제했어야 하는 지출 목록이었다면 애초에 아예 지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가 늘 깔려있기 때문이다. 아이콘만 봐도 무거워 보이는 각종 금융 앱에 접속하는 시간, 수많은 인증들을 거쳐야 하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이 귀여운 가계부 앱은 충분히 내게 의미 있다.
2.
하나의 계좌에 서로 돈을 모으고, 같이 하는 모든 소비들을 그 하나의 계좌에서 관리하자는 결정을 내렸을 땐 내가 정말 그 사람과 가까워졌다는 착각을 했다. 그 뒤에 어떤 속을 숨기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지도 못한 채, 그냥 그 하나의 계좌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관계가 영원할 것이란 큰 착각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 계좌는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했고, 비용은 내 신용카드에서만 꾸준히 빠져나갔다. 굳이 그러지 않았어도 됐다. 그래도 다시 돌이켜보면 내 돈을 쓴 것에 대해 후회는 없고, 마음이 후련하긴 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면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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