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속도 이상하게 혼자 러닝을 하면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에 띄게 늘어나지도 않는다. 항상 그냥 어느 일정한 평균선을 유지했고, 속도를 더 줄인다는 생각보단 여기서 더 늦춰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마라톤 대회만 나가면 내 첫 1km 속도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단축됐다. 나이키런클럽 앱에선 1km 간격으로 현재 속도를 알려주는데, 대회 날 첫 1km 속도는 내가 혼자 뛰는 속도보다 확연하게 빨랐다. 심지어 올해는 4분대의 믿기지 않는 속도를 듣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회를 위해 딱히 일상에서 뭘 더하진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먹고, 뛰고 그게 전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에너지의 근원은 '신남'이 아닐까 싶다. 그냥 혼자 뛰는 러닝은 행위에서 느끼는 재미도 재..
*기억력 1. 망각은 축복이라는 말이 있지만 축복받고 싶지 않은 순간들도 있는걸.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소가 되새김질하듯 재차 떠올려보며 잘근잘근 씹고 있지만 언젠가 입안에서 사라질 이물감처럼 갈수록 아득해진다. 베갯잇이 잔뜩 젖도록 눈물 콧물 흘리며 울던 날들,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 멀어지는 뒷모습, 입에 담기 부끄러울 정도의 일들 따위의 잊고 싶은 기억들은 생생하게 떠오르고, 추운 겨울에 따뜻한 손을 잡고 걸었던 거리, 사방이 트여있는 카페에서 낮에 맥주를 마셨던 기억, 다정함과 달콤함이 한데 버무려져 설렘으로 다가오던 고백,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편지들 등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겨 넣으려고 애쓰지만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멀어져 간다. ..
가만히 앉아 정신없이 글 속에 빠져들었다. 글을 읽다 느꼈다. 이런 집중은 오랜만이라는 것을! 갑자기 하고 싶은게 생겼다. !
*재난 그 사람의 요청을 승낙할 때부터 이미 재난의 시작이었다. 내 입장에서 합리적이지 않고, 빤히 눈앞에서 벌어진, 절대 스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과정들을 흐린 눈으로 보지 않고 단번에 알아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거진 10개월 동안 내게 일어난 사건들과 만남들은 나 자신을 야금야금 갉아먹었고, 관계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게 했다. 내 인생의 비상사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 시간들. 더 늦지 않게 유해한 환경에서 빠져나온 결정을 한 나를 다시금 돌이켜보면 올해 최고의 결정이었고, 그동안 어떻게 버텼나 싶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
*송년회 사계절 없이 그저 마냥 덥고 따뜻한 나라에 살다 보니 연말 분위기가 별로 나지 않는다. 두 달 전부터 모든 쇼핑몰과 콘도, 그리고 거리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 반짝이는 전구, 산타 모자들이 가득하고, 여기저기서 캐롤이 울려 퍼지는데 난 아직 추운 크리스마스가 더 익숙하다. 해마다 꼭 구매하는 다이어리는 11월 발리에서 한국에서 온 친구한테 부탁해서 미리 받았는데, 서랍 속 다이어리가 하나 더 생긴 것 말곤 확실히 계절의 변화가 없으니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해 감이 잘 안 온다. 그래도 2023년이라는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송년회 기분 내면서 아주 맛있는 케익과 와인을 사서 올해와 작별을 해야지. -Hee ----------------------------------------------..
*부동산 1. 장기하가 밀양강 주변을 러닝 하는 모습을 보니 사방이 탁 트이고 산의 푸르름을 느끼며 달릴 수 있다는 곳임이 확 느껴져서 언젠가 나도 저 길을 뛰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다. 지금까지 내게 밀양이란 곳은 한 톨의 인연도 없던 곳이었는데 장기하의 러닝으로 인해 갑작스러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구글맵을 켜서 밀양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저 러닝 코스는 실제로 어디인지 찾아보았고, 해외여행 가기 전 구글맵을 켜면 늘 하던 대로 러닝 코스 주변에 어떤 카페들이 있는지, 어떤 음식점들이 있는지, 또 다른 내가 좋아할 만한 곳이 있는지 뭔가에 홀린 듯 열심히 핀을 꽂았다. 그렇게 밀양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면서 밀양에서 한 번은 살아봐도 되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