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1. 분명 친했던 것 같았다. 같이 모여서 웃고 떠드는 날이 많았고, 우리들은 그를 더 생각하고, 더 챙겼다. 그의 마음이 우리에게 조금 열린 것 같다고 우리는 생각했고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가 해외로 유학을 다녀온 뒤에도 우린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안부를 건넸다. 다시 봐서 반가운 마음을 온몸으로 전했다. 시간이 흘러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고, 우리는 그때처럼 기뻐하고 놀라워하며 축하해 줬다. 근데 딱 거기까지였나 봐. 아마 우리들도 마음속 어렴풋이 그의 집들이 초대를 받기는커녕 다시 볼 수 있는 날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 톨의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속상하진 않은 그냥 그런 사이였으니까. 2. ..
*마라탕 3년 전 회사 근처에 마라탕 집이 새로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봄이었던가. 편한 회사친구랑 같이 나와서 둘이 마라탕 집에 갔다. 뷔페처럼 가운데에 완성된 음식들이 놓여있는 게 아닌 각종 채소들, 사리들 등등 음식재료들만 잔뜩 놓여 있었고, 직원은 커다란 양푼 같은 그릇에 원하는 재료들을 골라 담는 거라고 했다.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신중하게 내가 먹고 싶은 재료들을 담았고, 매운맛은 중간 정도로 주문했다. 같이 간 친구는 매운 걸 먹으면 땀이 폭발하는 친구라 순한 맛으로. 자리에 앉아서 주문한 마라탕이 나오길 기다렸고, 드디어 마라탕이 나왔다! 마라탕 국물을 한 술 뜨면서 느낀 처음 생각은, '와 진짜 몸에 안 좋을 것 같다' 였다. 원래 간이 싱거운 나는 이렇게 진한 국물을 대하기가 어색했던..
*아무 말도 하지 마요 1. 나도 그 정도쯤은 할 수 있는데 자신의 방법과 내 방법이 다르다고 마치 내 방법이 틀린 것처럼 말하는 어조는 정말 옳지 않아 서로 간 역효과만 낼 뿐이야 만약 정말로 틀린 부분이 있다면 더욱 상냥하게 말해봐 2. 각자의 소신을 가지고 가는 길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2020년. 그래도 옆에서 누군가가 (굳이 그 사람에겐 그럴 필요도 없는데) 계속 말과 생각을 더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말과 생각 뒤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정도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네 글을 읽었을 때 참 뿌듯했어. 그래도 이유없는 반항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항상 그렇게 있어줘. 네 시간들도 많이 반짝이고 있구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3. 이 이야기는 지금 안 해줄 거야. 시시..
*면접 네가 그때 지원해보라고 했었던 그 자리 말이야. 사실 서류부터 떨어질까봐 두려웠어. 그 자리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야. 그 자리가 내 자리라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말하던 네 모습을 보면 볼수록 면접은 커녕 서류 광탈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커져만 갔어. 결국 마치 내가 그 자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지. 단 10초도 너랑 같은 회사에 다닐 것 같다는 헛된 꿈을 꾸고 싶진 않았어. 네게 희망을 주고 싶지도 않아서 관심이 많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어. 그야말로 헛된 꿈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었으니까. -Hee --------------------------------------------------------------------------------------- 도란도란 프로..
*연애상담 예전에 어떤 오빠는 내게 '여자친구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오빠 여자친구는 해외에 잠깐 어학연수갔던 상태였었지. 난 '조금만 기다리면 곧 올거야'라고 대답하면서 당시 듣던 노래를 추천해줬다. 좋으니 들어보라고. 같은과 오빠였는데 비슷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와 듣는 노래가 비슷했고, 성격도 생각보다 잘 맞아서 친해졌었다. 종종 1호선 안에서 마주치기도 했었다. 뭔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서로는 절대 이성 간으로 생각되지 않았고(뭔가 그러면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남매까진 아니지만 그 비슷하게 친해졌었다. 서로 매일 연락은 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집에 가던 길에 만나기라도 하면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가감없이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놓던 사이. 서로 만나고 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치킨 어떤 생일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뭐라도 하고 싶어서 오기로 치킨을 시킨 적이 있었다. 특히 그날은 일요일 저녁이여서 다음날 출근해야 했는데 완벽한 월요일 아침은 마치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코앞에 모니터로 만든 텔레비전을 앞에 두고 10시가 넘어서 도착한 치킨을 뜯은 적이 있었다. 왜 이제서야 넌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듯 따지고 싶었지만 그 말은 치킨과 함께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머릿속엔 최악의 생일이라는 단어는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뻔하게도 그 해엔 최악의 날들이 많았다. 내 생일조차 그런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옆에 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축하받지 못했고, 속만 상했었으니까. 아마 같은 해였던 것 같다. 오전부터 싸우고 실컷 울고 밤까지 제대로 된 밥 한 번 먹지 ..
*아 속 시원해 1. 이번에 MCO만 풀리면 머리 짧게 자르고 매직해야지! MCO 때문에 헤어샵을 갈 수가 없으니 비자발적으로 머리를 길렀다. 이러다간 거지존도 넘어설 기세. 물론 테니스랑 러닝, 홈트 등 운동을 할 때는 머리를 바짝 묶는게 편하긴 한데.. 그것 빼곤 머리 숱 많고 굵은 모발을 가진 나는 머리 감을 때도 피곤할 때가 종종 있다. 삼십 몇 년을 살면서 머리를 확 자르고 난 후 특히 머리 감을 때 가벼워짐과 속 시원함을 수차례 느낀 나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속 시원함을 느껴볼 예정이다. MCO만 끝나면! 2. 영어에 대해선 언제쯤 속이 시원해질까. 언어는 평생이라고 하던데. -Hee ------------------------------------------------------------..
*개코 내가 사는 콘도 G층에는 코인세탁방이 있다. 2층 주차장에 갈 때마다 아래 코인세탁방에서 올라오는 향이 너무 좋다. 건조되서 뽀송뽀송한 느낌의 향이라고나 할까. 세제 향인지, 섬유유연제 향인지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그 향만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자주 가는 테니스장 3번 코트 앞을 지나가면 순간 그 곳을 지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진한 꽃향기에 매료되는 것처럼. 이상하게 코인세탁방 바로 앞을 지나갈 때보다 2층 주차장에서 맡는 세탁방 향기가 더 좋다. 기분 탓일까. 생각해보면 세탁방 향이 약간 베이비파우더 향 같기도 한데, 내겐 그 향이 맞지 않은 향이기 때문에 더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베이비파우더 향 향수를 선물받았는데 내 몸에 뿌려보니 그 뽀송한 베이비파우더 향이 오묘하..
*동심 1. 할아버지, 할머니랑 삼촌들이랑 부모님이랑 다 같이 살았던 어릴 땐 30대였던 삼촌들만 봐도 되게 어른같이 보였는데 (같은 30대였던 부모님은 뭐 말도 못 하게 어른이었고) 사실 어른같이 보인다는 게 뭐든 스스로 옳은 결정을 할 수 있고, 뭐든 다 잘 해낼 수 있고, 조카들 피자 사줄 정도로 돈도 많이 벌고, 정말 누구보다도 의젓하고, 올바른 일들만 할 줄 알았는데. 삼촌들이 (부모님을 제외하고) 내가 어렸을 때 가장 가까이했었던 유일한 30대들이었다. 특히 둘째 삼촌은 약간 유오성(얼굴형과 까무잡잡함이 닮았다)의 매우 매우 순한 버전처럼 생겼는데, 항상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먼저 하고, 일도 궂은일을 많이 했었고, 아무리 피곤해도 조카앞에서는 항상 묵묵하게 웃는 얼굴을 많이 보여줬던 기억이 ..
*공허 1. 뭐라도 채워야 흡족해지는 마음. 아주 가끔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도 해야 놓이는 마음도 있다. 2. 자꾸 돌이켜보다가도 창창한 앞날들이 모두 돌이켜보는데 쓰여버려서 정작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마음에 다시 책상을 정리해보고. 다이어리를 끄적여보고. 모아둔 스티커를 잔뜩 붙여도보고. 3. 그동안, 그만큼 공허했으면 됐지! 다시 채워나가면 되지 뭐! 4. 아주 작은 상처일지라도 어딘가 아프고 나면 간절히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 결국 돌이켜보면 대부분 엄살이였던 것일수도 있겠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