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중 평일내내 말레이시아 시간으로 6시마다 아웃스탠딩에서 메일이 온다. 나름 양질의 콘텐츠를 읽기엔 꽤 괜찮은 서비스다. 하지만 1년 정도 구독해보니 글을 쓰는 사람들이 정해져있긴 하다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그들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서비스라 꾸준하게 구독하고 있다. 최근에는 김민준 작가의 '계절일기'를 구독했었다. 우연히 3~4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작가였는데 그 작가는 안양천을 자주 달렸다. 당시 내가 가산에 살았을 때 나도 안양천을 즐겨 간지라 신기했었고, 그의 글들이 괜찮아서 팔로잉했다. 그리고 '시간의 모서리'가 나왔을 때 책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너무 글이 마음에 들어서 그 뒤 신작들도 몇 번 구매했었다. (내가 처음 구매한 시간의 모서리는 진한 파랑색이였는데 요즘 시간의..
*입대 1. 10년도 더 전에 입대한 네 덕분에 일말상초라는 말도 알았고, 그리움도 느꼈고, 덩달아 자유도 느꼈어. 네가 입대하지만 않았어도 아마 나는 너에게 더 오래 귀속되었겠지. 그게 행복이라고 느끼면서. 그게 안정적이라고 느끼면서 말이야. 네가 입대한 덕분에 나는 자유로움을 되찾았고 너의 연애 방식, 그리고 나의 연애 방식이 꽤나 잘 못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그 뒤 너의 부모님이 너보다 더 많이 생각났지만 네가 아니였으면 아예 만날 수 없을 분이라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담담하게 마음을 내려놓았었던 것 같아. 너에겐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그게 내겐 수많은 터닝포인트 중 하나였어. 2. 먼 길을 내려와 내 손에 들려준 무지개색 봉투에 담긴 무지개색 편지들이 종종 생각나. 안에 그려져있던 ..
*호캉스 1. 아직까진 좋은 호텔에서 쉬는 것보다는 해가 떠있을때부터 해가 질때까지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다니고, 밤이 되면 아무렇게나 계단에 걸터앉아 맥주마시며 깔깔대는 것이 더 힐링인걸. 2. 과거에 친구들과 함께 호텔에서 놀다가 다음날 조식먹을 때 그랬다. 그냥 아침에 일찍 만나서 조식만 먹고 싶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나가든, 산책을 가든, 맛있는 음식을 먹든, 등산을 가든 뭐든 하는 건 좋으니까. 3. 두툼하고 매우 폭신한 호텔 침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두툼한 이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4. 생각을 정리하거나, 리프레쉬가 필요할 때, 그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을 땐 실컷 땀흘리며 운동하거나 파란 하늘 아래에서 나무들을 마음껏 보는 것이 내겐 최고의 방법이다...
*편지(2) 1. 사실 지난 내 생일에는 황당한 편지를 받았다. 친한 회사 동료이자 나의 첫 말레이시아 친구 Y가 나한테 선물과 편지를 줬는데, 편지를 열어보니 구구절절 좋은 말들이 가득 했었지. 물론 영어였지만 'brave', 'genuine', 'adventure', 'dear'등 빼곡하게 깨알같이 꾹꾹 눌러 쓴 느낌의 편지를 보고 감동했었는데... 읽어보니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지 뭐람. 주어가 Y and I 로 되어있는 거야. 응? Y가 쓴건데 왜 자꾸 Y랑 I라고 되어있지? 싶었는데, 알고보니 Y의 남자친구가 내게 쓴 편지였다. 물론 Y의 남자친구도 전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 Y의 남자친구 시점에서 쓰여 있는 편지였다. 그래서 Y에게 그대로 말했다. '이거 주어가 이상해! 난..
*거스르다 1. 대체로 마음속으로 결정을 해 버리면 옆에서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잘 먹히지 않는다. 아무리 대세라는 것이 그렇다 하더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지. 나를 가장 적극적으로 말렸던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그 친구는 솔직하고 소신 있게 내게 '나쁘다'라고 말했다. 보통은 내 생각이 얼마나 확고한지 들어보곤 그냥 어차피 말해도 안 들을 거 아니까 속으론 그렇지 않더라도 겉으론 그냥 내 뜻에 그렇게 해보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는 달랐다. 하지만 난 그 친구의 말대로 '나쁜' 사람을 선택했었다. 결과도 물론 좋을 리 없었지만. 2.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에게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에 대해 말을 꺼냈지만 사실 그 사람은 좋은 걸 알면서도(뻔한 이야기지만 정말 모를 수도 있고...
*크리스마스 1. 더운 여름만 가득한 날들 사이에서 괜시리 따뜻해보이기만 하는 반짝이는 조명들과 빨간색과 초록색, 그리고 하얀색 솜뭉치와 털들로 가득한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트리는 사지 않기로 마음 먹었지만 산타에게 선물 받은 것처럼 거실에 트리를 두니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구나 싶었다. 언젠가 천장이 높은 집에 내 키보다 높은 트리를 꾸미고 싶다. 2. 어렴풋이 떠오르는 19살 크리스마스는 파인애플을 안주삼아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키고 친구 자취방에서 밤새 토한 기억 뿐인데. 10년도 더 지난 올해 말레이시아의 크리스마스는 막걸리, 소주, 라거, IPA, 백세주 등 온갖 술을 다 마시고 목청이 터져라 깔깔대고 웃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 지난 몇달간 파티(?)같은 약속했다가 ..
*블랙프라이데이 1. 말레이시아는 세일을 너무 자주하다보니까 전혀 세일답지 않다. 매달 4월 4일, 7월 7일 같은 월과 일의 숫자가 동일한 날에는 물론이고 힌두교, 이슬람교, 차이니즈 홀리데이를 기념하고 크리스마스도 빼놓을 수 없고, New Year은 더더욱 빼놓을 수 없고. 이렇게 잦은 세일들이 많다보니 막상 세일이라고 해서 들여다보면 딱히 큰 세일이라고 할 만한게 많이 없다. 물론 아주 가끔 파격적인 세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너무 드문 일이고 그냥 자잘한 10~20링깃 세일이 기본.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세일이?'라고 놀라며 세일 품목을 찾아봤지만 이제는 상술도 많고, 딱히 따지고보면 몇 푼 아끼는 것 같지도 않아서 무덤덤하다. 2. 억지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것 만큼 지옥이 있을까. ..
*양파 자기만의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끌렸다. 자기만의 세계도 좋고, 자기만의 철학도 좋고, 쉽게 말하면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그런 사람. 너무 빤한 사람은 재미가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재미없었다. 그러려면 내가 아무것도 없으면 안될 것 같아서 닥치는 대로 흡수한 적도 있었다. 날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첫 페이지가 아니라도 좋았다. 그것이 중간 페이지라면 중간 페이지부터 읽었고, 마지막 챕터였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생각의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을 때쯤 만났던 사람들은 상상외로 정말 흥미로웠다. 평소 내 주변에선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분위기와 공기들. 그들 사이에선 내가 외계인이였다. 내가 새로운 세계에서 어느날 그들의 세계로 뚝 떨어진 그런 느낌. 그..
*전투태세 1. 유일하게 높은 하이힐과 빨간 립스틱이 없어도 머리 질끈 묶고 앞머리 한 올도 내려오지 않게 바짝 올리고, 맞은편 코트에서 날아오는 공이 어디로 튀어 오를 지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노려보는 눈까지 장착하면 전투태세 완료인 곳은 바로 테니스 코트 위! 2. 프레젠테이션 하루 전 날 10번 이상 프레젠테이션을 연습한 적이 있었다. 중간중간 호흡이 들어가는 포인트, 손을 가리키는 포인트, 이야기하면서 다음 슬라이드로 자연스럽게 넘기는 포인트까지 단 1초라도 방심하지 않도록 실전처럼 연습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날 내가 연습한 모든 것을 쏟아냈고 결과도 대만족. 연습도 연습이지만, 연습으로 인해 조금씩 쌓여가는 자신감이 전쟁터에선 큰 무기가 된다. 3. 다음날 깜짝 생일파티를 해준다는..
*망고 1. 언젠가 마트에서 생망고를 처음 먹고 인상썼던 그 사람들은 처음엔 망고에 뼈대가 그렇게 굵은 지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선뜻 적지 않은 돈을 주고 해외에서 왔다는 망고를 선물한다. 2. 정말 어렸을 적에 친구들이랑 술을 먹은 후 친구네 집 2층 침대에 누워있다가 큰 숙취로 인해 새벽에 깬 적이 있다. 그 때 친구네 집엔 망고주스가 있었는데, 자기 직전에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입이 텁텁할 즈음 그 망고주스가 얼마나 맛있던지. 꿀꺽꿀꺽 다 마셔버렸지 뭐람. 그 날 이후 술 먹은 다음 날 아직 술 기운이 느껴질 땐 망고주스를 찾았다. 몸 안에 있는 술들을 몽땅 다 색도 맛도 진한 망고주스가 덮어버리는 느낌이랄까. 3. 망고가 단 줄도 몰랐던 그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은 망고를 가질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