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이 신경쓰인 적이 있었다. 새벽에 깨어있는 것도 신경쓰였고, 심지어 새벽에 자고있는 것도 신경쓰였다. 어떨 때는 새벽이 부담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고, 또 어떨 때는 새벽이 슬펐다. 하지만 이젠 새벽이 편안하다. 2. 새벽 3시 반에 집에서 나가려고 일찍 알람을 맞추고 잔 적이 있다. 10시즈음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5시간 반 정도 밖에 잘 수 없는 시간이였는데, 원채 일찍자는 습관이 없어 쉽사리 잠이 오진 않았다. 쏟아지는 카톡이 궁금해서 11시가 되었고, 내일이 기대되 12시가 되었다. 그렇게 잠을 자는둥 마는둥 새벽 3시 10분에 일어나서 양치와 세수를 대충하고, 로션을 바르고, 헬맷을 쓰고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그랬던 나의 새벽. 3. 새벽이 아쉬워 한껏 만든 샌드위치 한 봉다리와 어..
*지금 1. 발 아래로 개미들이 바삐 움직이는 나의 지금. 멍하게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는 나의 지금. 커다란 상추쌈을 입에 가득 우적우적 씹으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진미채를 집어먹는 나의 지금. 늦은 밤, 밥솥에 남은 밥을 그릇에 따로 덜어두려도 주걱으로 펐는데, 그 밥이 너무 맛있게 보여서 그냥 그대로 계란간장밥을 만들어먹는 나의 지금. 2. 난 지금이 소중한지 몰랐지. 시간만 지나길 바라고 있었지. 그때가 반짝이는 줄도 몰랐고, 그 시간이 예쁜 지도 몰랐지. 미련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바뀔 줄 알았지. 지금을 간과하게 되면 변화도 없지. 3. 나와 한 친구의 카톡방 공지사항에는 (심지어 서로 1년 넘게 없애지도 않았다) '오늘이 우리의 생 중 가장 젊은날~'이라고 되어 있다. -He..
내가 신입사원때 말이야. 나 말고, 동기가 2명이 있었어. 둘 중에 1명이 되게 붙임성도 좋고, 말 걸기 편한 그런 애라서, 덕분에 같이 우스갯소리도 하며 잘 지냈지.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신입사원 입사회식을 하겠다고 하는거야. 다들 술을 엄청 먹일거라며 으름장을 놓길래, 속으로는 걱정이 되면서도 겉으로는 그냥 웃었지. 그리고 그 회식날이 되었어. 술을 많이 마실 걸 알기에, 나는 근처에 친구네 집에가서 자려고 내일 입을 옷들을 미리 챙겨왔었어. 근데 그 동기 한 명이 나보고 이 옷은 뭐냐고 물어보는거야. 정확히는 쇼핑백을 보고. 그래서, 내가 오늘 늦게 끝날 줄 알고, 근처 친구네서 자려고 한다. 라고 말했지. 근데 있잖아. 얘가 그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회식자리에서, 나를 가르키며, '얘는 오늘 ..
*현금 1. 카드를 꺼내려고 지갑을 열었는데 지갑에 3만원이 있었다. 누군가가 날 위해 넣어둔 3만원이였다. 그때 그 3만원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3만원이라는 가치보다 그것을 넣어둔 마음이 그땐 뭔가 어른스러워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행동은 아무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2.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현금을 더더욱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친구 아무개는 타코야끼를 사먹기 위해 만원씩 가지고 다닌다고 했지만. 요즘 구두방도 갈 일이 없고, 카카오톡으로 돈도 주고 받는 마당에. 하지만 얼마전 주말에 구디역을 경유해서 집에 왔는데, 그 앞에 옥수수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2개에 2천원을 주고 샀는데, 냄새부터 향긋하게 코 끝을 찌르는 바람에 집에 다 가기 ..
1. 그래도 가족이라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있다고, 서운하긴 하구나. 웃기다, 나도. 어찌보면 그렇게 연락도 안하고 지냈는데도 서운함을 느끼다니. 연락 한 번 더 했다면, 꾸준하게 연락하고 지냈다면 달라졌을까. 2. 난 항상 내가 아는 좋은 사람들이 다같이 만나서 더 좋은 시너지를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물론 부작용이 있긴 하다. 욕심일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게 좋은걸. 3. 세상에 억지로 연결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설사 억지로 연결되었다 하더라도 금새 삐걱거리고 어긋나기 마련이다. 어떤 이와는 결이 맞지 않아 더 다가갈 수 없었고, 어떤 이와는 리듬이 맞지 않아 금새 바람빠진 풍선처럼 흥을 잃었다. 어떤 이와는 서로 다가가려고 노..
1. 여러 계절이 지나고 또 지났다. 이제 네가 사라졌고, 기억을 애써 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지만 어떻게 보면 마음 편한 망각의 동물이다. 2. 가을에 네가 있었는데, 봄에도 네가 있다. 겨울에는 꽤나 친절한 너였는데, 여름에는 성난 네가 있다. 가을에는 날 외면하는 네가 있었는데, 봄에는 자꾸만 나를 부르는 네가 있다. 겨울에는 따뜻한 네가 있었는데, 여름에는 무심한 네가 있다. 3. 겨울이 지날 무렵, 집에 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비교적)뚜렷한 나라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옷이 그나마 나뉘어져 있어서 항상 계절마다 옷 정리 하기 바쁘고, 때로는 (특히 겨울철에) 옷의 부피가 옷장의 크기보다 더 커져서 넘칠 때도 많은데...
1.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 적지 않은 순간들이 하나씩 기억났다. 같이 퇴근하고, 길을 걸으며 내가 어떤 아이템을 만들었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신나게 이야기했던 순간.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들리게 (지루하지 않게) 말하면서 힐긋 그녀의 표정을 살폈던 순간.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내한강의를 같이 가자며 그녀가 모두를 설득했던 순간. 그 내한 강의에서 그녀가 맨 마지막으로 질문했던 순간. 매번 만날때마다 내가 이야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그녀의 알 수 없는 표정을 보았던 순간. 혹여라도 내가 부족한 건 아닌가, 내가 그렇게 별로인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나, 조바심을 냈던 순간. 어쩌면 이기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던 순간. 그랬던 순간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났다. ..
1. 그런 기분 알려나, 주말 후 다음 월요일에 회사를 가면 자잘한 업무부터 중요한 업무까지 나에게 모두 쏠릴 것이라는 걸 아는 기분.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지만 도무지 막을 수 없어 결국 내가 다 해야 하는 그런 기분. 그럴 땐 주말에 늦잠을 잘 수도 없고, (잠이 안오기 때문이지) 이렇게 머릿 속이 복잡하면 대게 주말 오전에 선잠을 자는데, 머릿 속에서 예상하고,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선잠을 든 나의 꿈에 개꿈으로 나타난다. 자고 일어나도 잔 것 같지 않고, 기분만 괴상한거지. 이게 지난 주 바로 내 모습이다. 이럴 땐 주말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크다. 누군가 들으면 소중한 주말을? 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나 답답한 주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1. 나의 눈이 사랑하는 초록의 계절이 온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초록빛의 나뭇잎들과 새파란 하늘이 만나는 장면을 좋아한다. 햇살을 받아 살짝 투명해진 나뭇잎과 그렇지 않은 진한색 나뭇잎들이 어우러져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을 좋아한다. 괜시리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쨍한 색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고 싶은 초록의 계절. 2. 봄을 맞이해서(는 사실 핑계고) 안하던 것을 해보고 싶어서, 굳이 가까이하지 않았던 샛노란색 아이폰케이스를 사서 끼웠다. 이런 쨍한 노란색케이스는 처음이라 2주일이 지난 지금도 낯설다. 3. 초록색하면 떠오르는게 또 있다. 작년에 유튜브에서 처음 보았던,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행복하게 노래부르던 백예린. 4. 생화보다 예쁜 조화는 없다. 주말에 모던하우스에 가서 조화 ..
*케첩 1. 핫도그 먹을때 절대 그냥 못먹겠다. 사실 그렇다고 많은 양의 케첩이 필요한 건 아니다. 난 케첩 한 줄이면 끝인데, 어느 누구는 진짜 핫도그 위에 케첩을 있는대로 세 줄이고, 네 줄이고, 케첩이 흘러 넘치 정도로 마구마구 뿌려먹더라. 하루는 어느 누구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케첩을 많이 뿌려먹냐고. 그랬더니 어느 누구는, "내가 먹는건 밥 한 숟갈 가득 먹는 느낌이고, 네가 먹는건 쌀 세 톨만 먹는 느낌이야. 그럴 정도로 맛이 안나."라고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입이 짧고 작긴 하지만, 그 정도인가? 그래서 나도 하루는 그 어느 누구를 따라서 케첩을 있는대로 잔뜩 뿌려서 핫도그를 먹어보았다. 윽. 케첩 맛이 너무 강해서 혀가 아릴 정도였다. 빵 맛은 전혀 안나고, 시큼시큼한 케첩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