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1. 친구들을 만날 때나, 예쁜 구두를 봤을 때의 3만원, 5만원, 10만원과, 부모님께 드리는 3만원, 5만원, 10만원은 왜 이렇게 무게가 다른가. 2.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개발이나 공부를 한다거나, 읽고 싶다고 하는 책이 있다면 아낌없이 꼭, 사줄꺼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독서시간을 꼭 마련해서 나란히 앉아서 책 읽는 습관을 들여줘야지. (마음처럼 될까) 3. 러닝시계를 강력하게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알쏭달쏭하네. 4. 이런 기분을 느낀지는 꽤 오래 전부터인데, 예쁜 블라우스나, 비싼 자켓이나, 사고싶었던 가방보다 나이키에서 운동복을 사는 내 모습이 너무 어른같아서 이상하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코트보다 비싼 것도 아니고, 블라우스보다 화려한 것도 아닌데. 뭔가 어색해...
*결 1. 이제까지 잘 다듬어왔다고 생각했다. 계속 이대로만 더 다듬어가면 더할 나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대로 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의 정도, 사람의 마음, 믿었던 관계, 심지어 나의 마음까지도. 곱게 다듬었다고 생각한 것들은 너무나도 무심하게 거칠어졌다. 거칠어졌다고 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이미 고르고 골라서 다듬었던 건데. 내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뭐겠어. 또 다듬는 수 밖에. 2. 산송장같이 거실바닥에 오랜시간 누워 생각을 해봤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무니, 거의 시간여행 수준이 되어버렸다. 13살때의 나도 나오고, 15살때의 나도 나오고, 19살때의 나도 나오고, 21살때의 나도 나오고, 24살때의 나도 나오고, 26살때의 나도 나오고, 2015년의 나도 나오고..
*무미건조 1. 무미건조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해 아주 조금은 익숙해졌다. 사실 내 성격은 중간이 없고, 좋으면 한 없이 좋아하고, 싫으면 그냥 싫어하는데, 이제는 나와 전혀 다른 방향인 사람들과는 그냥 무덤덤하게 지내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려웠다. 2. 너와는 절대 무미건조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너무 따뜻하고, 마음이 일렁인다는 것을 알기에. 너는 내게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사람이다. 혹시나 이건 네가 봤을까, 혹시나 네가 나를 잊을까, 혹시나 네게 나는 없을까, 매일 혹시나하며 의심해본다. 이게 너의 이야기라는 것을 상상도 못하겠지. 네가 가끔 매우 보고싶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어쩌다 너의 나이대인 사람을 보면, 네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3. 내 인생..
*핫초코 1. 4년전인가. 5년전인가. 그때 홍대에 있는 카카오봄이라는 카페에 다녀온 이후, 다른 카페에서 핫초코를 잘 시키지 않게 되었다. 거기서 먹었던 핫초코가 정말 너무 진하고 맛있어서 그 기억을 간직하고, 다른 카페에서 핫초코를 시키면 너무 밍밍하고, 맹맹하고, 싱겁기만 했다. 카카오봄을 갔던 기억도 이제 가물가물하다. 다행히 누구와 갔는지 이 글을 쓰면서 기억은 났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였다는 것도 기억이 났다. 그래, 그거면 됐지. 이미 겨울이 다 갔네. 한 겨울에 마시는 핫초코가 정말 최곤데. 꽃샘추위가 만약 온다면 그곳에 가리. 2. '네가 먹고싶은거 두 개 시켜.' 좋은 카페에 가면 항상 듣는 말. 내게 커피메뉴 선택권을 모두 넘겨주는 그 사람이 귀엽다. 그 말을 들으면 뭔가 다 가진 느..
*늦잠 1. 명절때 괜히 일찍자기 아까워서 이것저것 보고 듣다가 새벽에 자서 아침에 깨고, 낮잠도 자고, 밤에도 자고, 또 새벽에 깨어있다가, 낮잠도 자고, 그렇게 몇일을 보내다가 몸이 찌뿌둥하고 이제 일 좀 열심히 해볼까, 라는 생각으로 잠든 일요일 새벽 2시 30분. 그리고 평소 워킹데이보다 1시간 반은 늦게 일어난 월요일 아침. 그야말로 대 늦잠! 2. (사랑의) 저주 문득 생각난건데, (저주아닌 저주이지만,) 나는 네가 늦잠자고 일어나서 화들짝 놀라는 그 마음처럼, 날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화들짝 놀라게 깨달아버려서 내게 더 잘해줄 걸 후회와 미련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플러스로 앞으로 그러면 더 잘해주지 않을까? 맨날 매순간 다정다감하게!) 3. 주말에 늦잠자는 날이 점점 사라지는 계절이 오고있..
*꿈자리 1. 친구랑 놀았다. 그 친구의 친구도 같이 놀았다.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친구랑 내일 오전에 영어학원을 가기로 약속하고, 내가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술에 취한 나머지 씻지도 못하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잤다. 다음날이 되었다. 친구한테 잘 들어왔냐고, 학원에서 보자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집은 상가건물 내에 있어서 (가게를 했다) 상가 건물 화장실에 샤워실이 함께 있었다. 어쨌든 열심히 샤워를 했다. 샤워를 다 하고 다시 방에와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당연히 와있을 줄 알았던 친구의 답장이 없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순간 두려웠다. 어제 친구가 놀다가 어디서 사고를 당한건 아닐까, 누구에게 납치를 당하진 않았을까, 무슨일이 생겨서 아직까..
*과자 1. 어릴 적에 부모님이 슈퍼에서 까까하나 사오라고 하면서 만원을 쥐어주면, 나는 정말 까까하나만 사오고, 거스름돈을 몽땅 남겨왔다. 반면에 동생은 까까뿐만 아니라, 남은 돈을 더 채워서 다른 까까들과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등을 만원 꽉 채워 사왔다. 매번 그랬다. 나는 딱 부모님이 말한 것만 사오고, 남은 거스름돈을 그대로 들고와서 부모님 손에 쥐어드렸다. 손이 딱히 크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면, 뭔가 부모님이 말한 것 외에 것들을 예고없이 부모님 돈으로 사오기가 괜히 미안해서 그랬다. 이건 다 우리 엄마의 경제관념 때문이다. 엄마는 무조건 아꼈다. 특히 돈에 관해서는 진짜 용돈도 박했고, (예컨대 초등학교때 친구들이랑 수영장간다고 오천원만 달라고 해도, 돈이 없다고 안주셔..
*단감 하루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수가 얼마 안되는 작은 아파트단지 앞을 지나가는데 아파트 정문 관리사무소 건물 바로 뒤로 감나무가 엄청나게 큰 것이 심어져 있었다. 마침 때가 가을이라 주홍빛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는데, 진한 초록잎과 쨍한 주홍빛 감과 새파란 하늘이 너무 조화로워서 집에 가지못하고 계속 그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서성서성 거린 적이 있었다. 그것들의 조화가 진짜 너무 마음 벅차게 예뻐서 보는 내내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상당히 안정적인 색들이면서도 가슴뛰는 조화였다. 하루는 제주도에 가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데, 귤인지 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귤이 유력하다. 제주도였고 나무도 약간 낮았다) 어떤 농장에 초록나무에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이 왜 이렇게..
*낭비 1. 좋은 것들은 바로바로 소비해야 한다. 먹는 것, 보는 것, 쓰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따위 모두. 예전엔 꽤나 아꼈다. 좋은 것들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있어, 함부로 낭비하지 말아야지, 쉽게 사용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었다. 엄마가 정성들여 해준 더덕무침을 냉장고에 넣고 아끼다가 모두 상한 일. 자주 만나면 혹시나 질리진 않을까, 혹시 너무 쉽게 생각하진 않을까 등등 잡념에 사로잡혀 비싸게 굴다가 인연을 놓친 일. 비싼 명품 화장품이 어느날 내 화장대에 들어왔고, 아까워서 서랍 안 쪽에 넣어두고 그만 잊어버린 후 유통기한이 지난 뒤에 발견한 일. 그 때의 감정을 불러오기 싫어서 좋은 노래들을 아끼고 아끼다가 결국 내 자신이 바뀌고 말아, 더이상 ..
*잔상 1. 어떤 잔상 -아빠가 나 초등학교때 내 방 책상에 앉아서 리아의 눈물을 혼자 들으며 감상에 젖어있던 모습 -동생이 고등학교 1학년때 잠깐 밥 먹으러 집에 들어왔는데, 식탁에서 오리털잠바도 벗지 못한 채로 고추참치 캔 하나 따서 밥을 열심히 먹고 있던 모습(심지어 그때 나도 집에 있었는데, 그 모습이 우스워서 사진을 찍으니까 나를 흘려보면서 찍지말라며 짜증냈던 일까지) -엄마가 음성인식 기능이 있는 TV셋탑박스로 음악을 틀 줄 알게 되면서, 기타클래스를 다니면서 배운 노래를 틀게하고, 부르면서 설거지를 하던 모습2. 너의 잔상이 이제 희미해져. 처음엔 장소고, 음악이고, 너무 잔상이 남아서 어지러웠는데, 이제는 너의 잔상이 희미해지고 옅어졌어. 너와 비교하는 것도 완벽하게 사라졌고, 널 추억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