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일주일에 보통 5번 이상. 술을 많이 마시는 주엔 3번 정도. 출근시간보다 두 시간은 일찍 일어나서 우리는 커피를 마신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생두를 사다가 직접 집에서 로스팅을 한 다음, 아침마다 그라인더로 갈아서 1년 반 넘게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를 마셔왔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드립백도 종종 애용한다. 신혼여행 때 우리가 볶은 커피를 코사무이에서 아침에 마시고 싶어서 가기 전, 드립백 키트를 산 뒤 집에서 열심히 드립백에 커피를 넣고 고데기로 실링했다. 그렇게 실링된 드립백 열 한 개(원래 열 두 개를 만들었는데 정우가 그새를 못참고 하나를 바로 마셔서 홀수다)를 가져가서 2개 빼고 다 마셨다. 드립백을 산 적은 있어도 직접 만든 적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훌륭했다. 집에 아직 드..
*청량함요즘 나무에 초록 잎들이 무성하고, 여기저기 새빨간 장미들이 담벼락에서 빼꼼 고개를 들고 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눈이 즐겁고, 길을 걸을 때마다 시야에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들어와서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매년 생각하는 것이지만, 또다시 새삼스럽게 '겨울보다는 여름이 최고지', '역시 여름이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습도가 낮아 청량하고, 하늘은 파랗고, 햇살에 나뭇잎이 반짝이는 날씨는 사랑이다. 겨울에는 진한 레드와인에 손이 갔는데, 여름에는 레드보다는 화이트를 찾게 되고, 이번에 코사무이에서 리즐링 와인에 눈을 뜨는 바람에 리즐링 와인에도 눈이 가고, 손이 간다. 오늘은 오랜만에 와인 쇼핑을 했는데, 날씨 영향으로 샴페인까지 사게 됐다. 상자 가득 와인들을 담아오니 올여름 대비는..
*풍경좋아하는 풍경들이 늘어날 때 마치 곳간에 곡식이 가득해진 것처럼 마음이 풍족해진다. 이번 여행에서도 잊지 못할 풍경들을 마주했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랑 멋진 풍경이라며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보다 감상을 더 잘하는 그는 분명 내가 모르는 풍경들을 더 담았을 것이다. 나보다 아침에 더 먼저 일어나서 혼자 산책하는 중 나무에서 떨어져 물에 둥둥 떠있는 릴라와디 사진을 보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다가오는 무더운 여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풍경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며 잘근잘근 안주 삼을 수 있는 날들이 올 것이다.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비키니1.하루 종일도 아닌 길어봤자 반나절 정도일까 싶은 결혼식 날이 가까워질수록 모든 신경이 그 날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 뒤 3주라는 시간 동안의 여행보다 고 몇 시간의 중요성이 더 컸던 것이지. 사실 분하기도 했다. 고작 그 하루가, 그 몇 시간이 나를 이렇게 여러모로 복잡하고 다양하게 신경 쓰게 하는 것이. 심지어 내가 주인공이었던 날이기에 모든 것을 내 계획대로 해야 직성에 풀려서 1부터 100까지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디데이 전 날 자기 직전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내일 눈 뜨자마자 모든 것이 실전이고, 이제 내 손안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즐기자'라고. 그렇게 새벽부터 일어나서 하루 종일 웃고 울고 떠들며 최대치로 즐긴 나는 밤 10시가 되어도 배고픈 지 몰랐다. 10..
*예감"그렇게 우리 좋게 만나고 헤어졌잖아. 그리고 난 다음날 연락이 바로 올 줄 알았지. 근데 안 오는거야. 그래서 '음, 그렇구나'라고 (혼자 머쓱해하며) 그렇게 넘어갔는데 그다음 날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 그래서 난 좋았어.""근데 나도 바로 다음날 연락이 올 줄 알았어. 근데 안 오더라고. 그래서 그다음 날 바로 연락해 봤지.""아, 그랬어?""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서 걷고, 먹고, 그랬을 때도 뭔가 나는 더 물어보고 싶었는데 계속 뭐가 있다면서 먼저 간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아, 이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 생각했지.""아, 그때 나 친구랑 스터디해야 하는 시간이라 (그 시간을 미룰 수 없어서) 제일 먼저 만나자마자 말했지. 맞아, 맞아. 아 그게 관심 없는 것처럼 보였어? 그랬구나..
*도시락가산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 한동안 열심히 도시락 메뉴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원래는 회사 지하 식당에서 밥을 사 먹거나, 아니면 밖에 있는 식당에서 따로 사 먹거나 늘 둘 중 하난데 몇 년을 다니니 밥은 밥대로 다 질려서 친한 회사 동료들끼리 도시락을 싸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우리들은 더운 여름날 열심히 밥을 싸오고, 전날 집에서 반찬을 해오고, 도시락 메뉴 중 넘버원인 도시락 김까지 챙겨서 각자의 도시락 가방에 챙겨왔다. 11시 반, 점심시간이 되면 다 같이 회사 복도 끝 테라스로 쪼르르 몰려가서 스탠딩 파티를 벌였다. 테라스에는 의자가 몇 개 없어서 그냥 서서 먹기도 했고, 의자에 살짝 걸터 앉아 먹기도 했다. 우리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재밌었던지 깔깔대며 웃기 바빴고, 밥..
*오렌지왜 사사로운 것에도 불만을 내비치는지. 물론 입장은 다르지만 내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었다.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뭐라도 말하면서 풀고 싶었다. "오렌지 먹을래?"-Hee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다른 글들도 만나보세요.🔸도란도란 프로젝트 Tumblr 바로가기🔸도란도란 프로젝트 브런치 바로가기🔹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스북페이지 바로가기🔹도란도란 프로젝트 트위터 바로가기
*식탁1.벌써 20년도 더 됐을까. 시험기간이 되면 동생이랑 나랑 한 식탁에 앉아서 각자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늦은 밤 홀로 공부하는 것보다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공부하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니 더 공부가 잘되고 집중이 잘 됐다. 마치 혼자 책상 위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모두가 공부하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면 더 잘 외워지고, 이해가 잘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몇 년 뒤 그렇게 시험공부를 하던 식탁이 어느 순간 각자 다이어리를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던 테이블로 용도가 바뀌었다. 나는 영어를 공부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고, 동생은 잔뜩 사 온 스티커를 다이어리에 붙이며 미뤄둔 다이어리를 쓰곤 했다. 각자의 방에 책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식탁을 활용했다. 2.한때 하얀 원형 테이블을..
*일기예보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토요일. 괜히 내일 일기예보를 들여다본다. 일기예보를 보면 뭐하나. 비가 와도 뛰러 갈 것이고, 비가 오지 않지만 추워도 뛰러 갈 것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뛸 것인데. 그 사실은 변함없는데. 이렇게 으슬으슬 봄바람 불고 흐린 날씨를 싫어하는(사실 그냥 추운 걸 싫어한다) 나는 취소하지 못할 내일의 마라톤을 접수한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은근하게 원망을 해본다. 요즘 너무 바쁜 나머지 제대로 마라톤 연습을 하지 못해서 자신이 없었고, 그냥 완주를 목표로만 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난 나를 잘 아는걸. 내일 신나게 뛸 것이라는걸. 아니나 다를까 마라톤 당일, 평일에 출근하는 날보다도 훨씬 일찍 일어나서 미리 꺼내둔 운동복으로 갈아입자마자 신이 나기 시작했다. ..
*상대적1.A를 바라보는 눈이 정말 다르다.B는 A를 매사에 불만이 많고 불평만 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욕심쟁이. C는 A를 그래도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B에게 A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듣지 않았다면 나를 아껴주는 천사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 '그래도'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B의 시각에서 보는 A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래도'를 붙였고, '그래도' 뒤 '나에겐'은 생략했다. D는 A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C에게 A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이다. 잘해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사실 C는 그런 사실들만 기억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사실만 D에게 전달한 것일지도.E는 A를 눈에 비유하자면 흘겨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