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1.
발 아래로 개미들이 바삐 움직이는 나의 지금.
멍하게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는 나의 지금.
커다란 상추쌈을 입에 가득 우적우적 씹으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진미채를 집어먹는 나의 지금.
늦은 밤, 밥솥에 남은 밥을 그릇에 따로 덜어두려도 주걱으로 펐는데, 
그 밥이 너무 맛있게 보여서 그냥 그대로 계란간장밥을 만들어먹는 나의 지금.

2.
난 지금이 소중한지 몰랐지.
시간만 지나길 바라고 있었지.
그때가 반짝이는 줄도 몰랐고,
그 시간이 예쁜 지도 몰랐지.
미련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바뀔 줄 알았지.
지금을 간과하게 되면 변화도 없지.

3.
나와 한 친구의 카톡방 공지사항에는 (심지어 서로 1년 넘게 없애지도 않았다)
'오늘이 우리의 생 중 가장 젊은날~'이라고 되어 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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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입사원때 말이야.
나 말고, 동기가 2명이 있었어.
둘 중에 1명이 되게 붙임성도 좋고, 말 걸기 편한 그런 애라서,
덕분에 같이 우스갯소리도 하며 잘 지냈지.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신입사원 입사회식을 하겠다고 하는거야.
다들 술을 엄청 먹일거라며 으름장을 놓길래, 
속으로는 걱정이 되면서도 겉으로는 그냥 웃었지.
그리고 그 회식날이 되었어.
술을 많이 마실 걸 알기에, 나는 근처에 친구네 집에가서 자려고
내일 입을 옷들을 미리 챙겨왔었어.
근데 그 동기 한 명이 나보고 이 옷은 뭐냐고 물어보는거야.
정확히는 쇼핑백을 보고.
그래서, 내가 오늘 늦게 끝날 줄 알고, 근처 친구네서 자려고 한다. 라고 말했지.
근데 있잖아.
얘가 그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회식자리에서,
나를 가르키며, 
'얘는 오늘 술 많이 마시려고, 내일 옷도 싸들고왔다'라고 해버린거야.
그때 처음 느꼈어.
아, 이런 애가 세상에 있구나.
남을 이용해서, 자기가 어떻게든 분위기 띄우려고 주변에 누가 있든 말든 그냥 말을 나오는대로 하는구나.
어떻게 내가 바로 앞에 있는 데서 저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지.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였나. 물론 내일 입을 옷을 들고 온 게 별건 아닌데,
그따위로 말하는 걜 보니 그냥 짜증이 확 났어.
그 자리에서 난 걔한테 질려버렸어.
그 뒤에도 크고 작은 일이 있었고.
그리고 지금은?
걔도 나도, 아직 그 회사를 다니는데, 서로 아는 체도 안해.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지.
걘 회사에서 빅마우스라고 불려. 걔한테 무슨 이야기가 들어가면 전체 회사사람들이 다 알게되서.
그래도 걘 아직도 그냥 그러고 다니더라.
별로 개의치 않나봐.
그냥 입으로 망했으면 좋겠어. 걔는.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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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1.
카드를 꺼내려고 지갑을 열었는데 지갑에 3만원이 있었다.
누군가가 날 위해 넣어둔 3만원이였다.
그때 그 3만원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3만원이라는 가치보다 그것을 넣어둔 마음이 그땐 뭔가 어른스러워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행동은 아무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2.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현금을 더더욱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친구 아무개는 타코야끼를 사먹기 위해 만원씩 가지고 다닌다고 했지만.
요즘 구두방도 갈 일이 없고, 카카오톡으로 돈도 주고 받는 마당에.
하지만 얼마전 주말에 구디역을 경유해서 집에 왔는데, 그 앞에 옥수수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2개에 2천원을 주고 샀는데, 냄새부터 향긋하게 코 끝을 찌르는 바람에
집에 다 가기 전부터 걸어가는 길에 옥수수 하나를 우적우적 뜯어먹었다.
마침 허기가 져서 그런지, 진짜 맛있었다. 이제 다시 현금을 가지고 다닐 이유가 생겼다!

3.
SNS에서 어버이날 이벤트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휴지 1장에다가 그 밑에 줄줄이 사탕으로 천원짜리, 만원짜리를 잔뜩 붙여놓고,
크리넥스 휴지곽에 돌돌 잘 넣어준 뒤에,
아버지한테 휴지 좀 하나 뽑아달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는 딸.
아버지는 아무 생각없이 본인 앞에 있는 휴지 1장을 슉 뽑았는데,
그 밑에 현금이 줄줄이 나와서 뽑기 바쁜 영상.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나도 나중에 저 이벤트를 꼭 해봐야겠다.
지금까지 본 현금이벤트 중에 가장 웃기고 재밌더라.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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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쟁이

1.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지만,
겉으론 깍쟁이같이 보여도,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가까워질수록
딱히 그렇지 않구나, 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뭐. 깍쟁이 이미지 덕분에 편한 것도 있지만.
누군 나보고 그런다. 
가까워지지 않았을 때는 너무 깍쟁이같아서 별로였는데,
막상 친해지고 나면 아예 생각했던 것이랑은 반대라고.
약간 빈틈도 많고, 어떨때보면 야무지지도 못하고, 
물렁물렁한 면이 많아서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뭐 더 가까이 지내보면 나쁘다는 말보단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주변에 친한 사람들 중에 엄청난 깍쟁이는 없는 것 같다.
다들 겉으로는 연약해보이지 않지만 마음은 반대로 여린 사람들이 많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역시 아니다.
친구는, 주변 사람은, 내 거울이라고 했으니.

2.
평생 잊혀지지 않을 몇몇의 이야기들.
바보들의 이야기들.
바보들.
너도 나도 우리는 모두 바보들.
바보. 보고싶은 바보들.
우리 중에 깍쟁이는 없었어.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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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도 가족이라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있다고,
서운하긴 하구나. 웃기다, 나도.
어찌보면 그렇게 연락도 안하고 지냈는데도
서운함을 느끼다니. 
연락 한 번 더 했다면, 꾸준하게 연락하고 지냈다면
달라졌을까.

2.
난 항상 내가 아는 좋은 사람들이 다같이 만나서 더 좋은 시너지를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물론 부작용이 있긴 하다. 
욕심일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게 좋은걸.

3.
세상에 억지로 연결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설사 억지로 연결되었다 하더라도 금새 삐걱거리고 어긋나기 마련이다.
어떤 이와는 결이 맞지 않아 더 다가갈 수 없었고,
어떤 이와는 리듬이 맞지 않아 금새 바람빠진 풍선처럼 흥을 잃었다.
어떤 이와는 서로 다가가려고 노력해도 어찌 손 쓸 도리도 없이 서로 멀어져버렸고,
어떤 이와는 소중함의 경중을 따지다가 멀어져버렸다.
수만가지 기준들 속에서 너와 내가 함께라는 것은 기적이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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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계절이 지나고 또 지났다.
이제 네가 사라졌고, 기억을 애써 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지만 어떻게 보면 마음 편한 망각의 동물이다.

2.
가을에 네가 있었는데, 봄에도 네가 있다.
겨울에는 꽤나 친절한 너였는데, 여름에는 성난 네가 있다.
가을에는 날 외면하는 네가 있었는데, 봄에는 자꾸만 나를 부르는 네가 있다.
겨울에는 따뜻한 네가 있었는데, 여름에는 무심한 네가 있다.

3.
겨울이 지날 무렵, 집에 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비교적)뚜렷한 나라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옷이 그나마 나뉘어져 있어서 항상 계절마다 옷 정리 하기 바쁘고, 때로는 (특히 겨울철에) 옷의 부피가 옷장의 크기보다 더 커져서 넘칠 때도 많은데. 사계절이 없는 나라에서는 사계절이 있는 나라보다 옷의 개수가 적을까? 아니면 그 나라의 계절의 시간도 우리나라의 사계절의 시간이랑 같이 때문에 시간에 비례해서 옷의 개수가 많을까? 여름나라는 옷이 얇아서 옷 정리하기 편할까? 반대로 겨울나라는 옷장이 지금보다 두세배는 더 커야겠지?'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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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선잠  (0) 201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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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 적지 않은 순간들이 하나씩 기억났다.
같이 퇴근하고, 길을 걸으며 내가 어떤 아이템을 만들었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신나게 이야기했던 순간.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들리게 (지루하지 않게) 말하면서 힐긋 그녀의 표정을 살폈던 순간.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내한강의를 같이 가자며 그녀가 모두를 설득했던 순간.
그 내한 강의에서 그녀가 맨 마지막으로 질문했던 순간.
매번 만날때마다 내가 이야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그녀의 알 수 없는 표정을 보았던 순간.
혹여라도 내가 부족한 건 아닌가, 내가 그렇게 별로인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나, 조바심을 냈던 순간.
어쩌면 이기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던 순간.
그랬던 순간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나의 하나의 실패라고 생각했던 그녀를.

2.
며칠 사이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점점 감기기운이 있는 것 같더니만, (이럴 땐 은근 많아서 씩씩하게 시간을 보내면 금방 지나갔다)
이번엔 하루하루 심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루는 오른쪽 코에서 콧물이 나고, 오른쪽 코만 코가 막히더니,
다음날은 왼쪽 코에서도 콧물이 나고, 왼쪽 코도 막히다 말다를 반복했다.
또 다음날은 아침에 화장을 하는데, 머리가 핑 돌아서 잠깐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바로 병원에 갔다.
친한 회사 동료는 내가 콧물이 나고, 아파서 병원에 간다는 것을 매우 낯설어하고, 신기해했다. 
약을 처방받고, 점심 먹은 이후 바로 약을 먹었다. 약기운이 빨리 퍼지길 기다렸고, 빨리 감기바이러스를 잡아먹길 기다렸다.
하지만 약기운은 머리가 아픈 증세를 가져왔고, 덕분에 더 감기가 심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결국 일하는 도중에 집에 돌아왔고, 그날부터 주말내내 끙끙 앓았다.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아서 몸에 기운은 있었지만, 컨디션이 너무 엉망이였다.
너무 괴롭고, 빨리 나아지고 싶은 생각에, 약을 꼬박꼬박 다 챙겨먹고 싶었다.
안먹던 누룽지를 끓였고, 코가 막혀 아무 맛이 나지 않는 꿀물을 타 먹었다.
내일은 괜찮겠지, 하고 다음날 일어났지만, 목까지 감기기운이 침투해서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말하기도 힘들어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감기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었고, 입맛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약을 먹었다.
내일은 더 회복되길.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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