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1.
어릴 적에 부모님이 슈퍼에서 까까하나 사오라고 하면서 만원을 쥐어주면,
나는 정말 까까하나만 사오고, 거스름돈을 몽땅 남겨왔다. 반면에 동생은 까까뿐만 아니라, 남은 돈을 더 채워서 다른 까까들과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등을 만원 꽉 채워 사왔다. 매번 그랬다. 나는 딱 부모님이 말한 것만 사오고, 남은 거스름돈을 그대로 들고와서 부모님 손에 쥐어드렸다. 손이 딱히 크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면, 뭔가 부모님이 말한 것 외에 것들을 예고없이 부모님 돈으로 사오기가 괜히 미안해서 그랬다. 이건 다 우리 엄마의 경제관념 때문이다. 엄마는 무조건 아꼈다. 특히 돈에 관해서는 진짜 용돈도 박했고, (예컨대 초등학교때 친구들이랑 수영장간다고 오천원만 달라고 해도, 돈이 없다고 안주셔서 서러워서 운 기억이 아직도 난다) 굳이 아끼지 않아도 될 것인데도 아꼈다. 그래서 나는 어린 마음에, 딱히 우리집이 엄청나게 부자는 아니다, 라는 생각이 머릿 속에 박혀있어서 남은 몇 천원들을 다 쓰기가 괜히 겁이 났다. 내가 만약에 남은 돈을 다 써버렸다고 하면, 부모님이 당황하시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며 덩달아 나조차 무안해질 것 같다는 마음에 쓰지도 못하고 작은 손에 고이 접어서 들고 왔던 기억이 난다. 내 돈을 스스로 벌 수 있는 시기가 오자, 마트에서 과자나, 맥주, 과일 등을 마음껏 집어들어 계산하는 날 보면 뭔가 나도 어른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래도 물가가 오르는 것을 보면 왜 엄마가 아끼라고 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2.
왜 가루가 많이 떨어지는 과자가 더 맛있을까.
(특히 집 쇼파에서 먹기 어려운 과자들 있잖아)
후렌치파이(딸기), 쌀로별(오리지널), 콘칩, 새우깡, 콘초코, 포테토칩(오리지널) 같은거.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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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

하루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수가 얼마 안되는 작은 아파트단지 앞을 지나가는데 
아파트 정문 관리사무소 건물 바로 뒤로 감나무가 엄청나게 큰 것이 심어져 있었다.
마침 때가 가을이라 주홍빛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는데, 
진한 초록잎과 쨍한 주홍빛 감과 새파란 하늘이 너무 조화로워서
집에 가지못하고 계속 그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서성서성 거린 적이 있었다.
그것들의 조화가 진짜 너무 마음 벅차게 예뻐서 보는 내내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상당히 안정적인 색들이면서도 가슴뛰는 조화였다.
하루는 제주도에 가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데, 귤인지 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귤이 유력하다. 제주도였고 나무도 약간 낮았다) 어떤 농장에 초록나무에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엽고 예쁜지. 계속 예쁘다, 귀엽다를 연발하며 그 곳을 지나갔다.
나무에 동그란 열매가 매달린 모습이 나는 정말 좋다.
누군 나보고 열매성애자라고 한다. 껄껄.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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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

1.
좋은 것들은 바로바로 소비해야 한다.
먹는 것, 보는 것, 쓰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따위 모두.
예전엔 꽤나 아꼈다.
좋은 것들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있어, 함부로 낭비하지 말아야지, 쉽게 사용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었다.
엄마가 정성들여 해준 더덕무침을 냉장고에 넣고 아끼다가 모두 상한 일.
자주 만나면 혹시나 질리진 않을까, 혹시 너무 쉽게 생각하진 않을까 등등 잡념에 사로잡혀 비싸게 굴다가 인연을 놓친 일.
비싼 명품 화장품이 어느날 내 화장대에 들어왔고, 아까워서 서랍 안 쪽에 넣어두고 그만 잊어버린 후 유통기한이 지난 뒤에 발견한 일.
그 때의 감정을 불러오기 싫어서 좋은 노래들을 아끼고 아끼다가 결국 내 자신이 바뀌고 말아, 더이상 그 노래가 좋지 않은 일.
표현하기 쑥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못하고 결국 헤어진 일.
별의별 일들을 겪은 후 가치가 바뀌었다.
아끼면 똥된다는 말이 사실이였다. 
나는 앞으로 좋은 것들은 마음껏 낭비할 것이다!

2.
'아, 진짜 이 시간들도 내게 낭비일까. 이렇게 내 마음을 뒤집어놓는 이 시간들 모두 낭비인 것일까. 이제 그만 끝내야 할까.' 
작년 여름,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었다. 끙끙 앓고 있었고, 주변은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들 투성이였으며, 무엇보다 신뢰가 무지막지하게 깨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힘들 때, 과거를 되돌아봤다. 과거에도 분명히 이런 힘든 시점이 있었고, 혼자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던 것들이, '모두 다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어찌어찌 지나가서 지금까지 왔다. 결국 그런 고민과 스트레스로 힘들었던 시간들은, 되돌아보면 다 아무 의미 없었던 것들도 많았다. 다시 말해 감정낭비. 감정소모. 아픈 것들은 모두 훗날 의미가 있지 않았고, 사실 대부분 도움이 되지도 않았으니까. 버텨진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수백번 끝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했던 때에, 결국 우리는 다시 만났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아팠던 시간들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않게 우리는 그 시간들에 대해 되짚어보았고, 되뇌였고, 양분이 되도록 곱씹었다. 아직도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 사람이 완전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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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


1. 어떤 잔상
-아빠가 나 초등학교때 내 방 책상에 앉아서 리아의 눈물을 혼자 들으며 감상에 젖어있던 모습
-동생이 고등학교 1학년때 잠깐 밥 먹으러 집에 들어왔는데, 식탁에서 오리털잠바도 벗지 못한 채로 고추참치 캔 하나 따서 밥을 열심히 먹고 있던 모습(심지어 그때 나도 집에 있었는데, 그 모습이 우스워서 사진을 찍으니까 나를 흘려보면서 찍지말라며 짜증냈던 일까지)
-엄마가 음성인식 기능이 있는 TV셋탑박스로 음악을 틀 줄 알게 되면서, 기타클래스를 다니면서 배운 노래를 틀게하고, 부르면서 설거지를 하던 모습

2.
너의 잔상이 이제 희미해져.
처음엔 장소고, 음악이고, 너무 잔상이 남아서 어지러웠는데,
이제는 너의 잔상이 희미해지고 옅어졌어.
너와 비교하는 것도 완벽하게 사라졌고, 널 추억하는 순간들 또한 이제 내 하루 어디에도 없게 되었어.
나에게 이런 시간도 오다니. 다행이야. 모두에게.

3.
사실 아직 다운힐이 겁이 조금은 난다.
예전 낙차하기 직전 이제 넘어질 것을 알던 그 마음이 아직까지 생생해서
상상할 때마다 심장이 마구 뛴다.
작년에 그나마 다운힐에서 큰 사고없이 잘 다녔는데,
올해도 무사하길 바라며. 겁내지 말고 해야하는 대로 차근차근 해보자.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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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처음처럼

1.
모든 마음이 처음과 같게 유지되긴 어렵다.
하지만 처음보다 더 진하고 끈끈하게 유지될 순 있다.

2.
작년부터 우리 아빠의 카톡상태메세지는 '언제나 처음처럼'.

3.
회사에서 도무지 처음과 같이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 나는 현재 이 회사에서 해보지 않은 팀의 일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데, 제일 최악의 팀장을 만난 것 같아서 마음이 언짢다. 처음에는 몰랐다. 어쩜 사람이 순수하게 바른 말만 하는지. 그 말을 의심할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센터장의 직함을 가진 그 사람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이름만 센터장이였지,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팀원들을 지켜주지도 못하고, 자신마저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있으니. 그래,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센터장이 아직 나이가 많지도 않을 뿐더러, 더 윗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당할 재간이 어디있겠나. 하지만, 더 최악인건, 사소한 것까지 팀원의 탓으로 돌려버린 다는 것과, 자신이 제일 쿵짝이 잘 맞는 팀원과 나와 사이가 틀어지자, 팀장 역시 제대로 상황파악도 하지 않고 그 팀원의 말을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나를 포함하여 다른 팀원까지 지금의 팀을 만드려고 그 팀장이 엄청나게 노력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자신도 퇴사를 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다. 실망 그 자체다. 처음에는 그 팀장의 해맑음이 좋았는데, 이제는 너무 터무니없고, 답답하다. 이렇게 책임감도, 리더쉽도 없고, 융통성도 없고, 이성적이지 않은 팀장은 처음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정말 별로인 사람 넘버3 안에 들어간다. 조만간 회사에서 또 연봉협상과 함께 조직이동이 있을 예정인데, 아마 우리팀은 사라질 것 같이 보인다. 사실 처음 이 말을 듣고 안심했다. 더이상 나는 지금의 팀장과 소통하기가 싫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소통이란 것도 없었지만. 하지만 다시 흐름을 보니, 팀이 살아남을 것 같아 괜히 또 언짢다. 처음처럼 일하려고 계속 마인드컨트롤은 하고 있지만, 팀장을 보면 너무 속에서 불이 난다.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버티자. 언젠가 다 지나갈 일이겠지. 여러 상황들을 보며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이렇게 했어야 할 것들을 구분하여 흡수해버리자.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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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크리스마스 이브

1.
케익도 없고, 찬란한 조명도 없고, 어떠한 술도 없고, 왁자지껄함도 없었지만, 
어느때보다도 더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하고, 안정된 날이였던 2018년 크리스마스 이브.

2.
막상 크리스마스 당일날이 되면 시간 가는게 괜히 아쉽고 아까워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더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3.
작년 크리스마스땐 붉은색 터틀넥 니트를 입었고, 올해 크리스마스땐 붉은색 꽈배기라운드 니트를 입었다.
작년에는 크리스마스 컨셉으로 나온 접시 4개 세트와 머그컵 4개 세트를 사서 올 겨울에 꺼내놓았다.
올해는 이케아에 가서 산타할아버지가 등불을 들고 있는 귀여운 장식품을 사왔고, 티비 옆에 두었다. 그리고 모던하우스에 가서 산타할아버지 티스푼과 눈사람 티스푼, 그리고 산타할아버지 수저받침을 샀다. 
내년에는 집에 자그마한 트리를 살 예정이다.
커다란 양말을 문에 달고 싶었는데, 원하는 모양을 찾지 못해서 결국 달지 못했다. 아쉬워.

4.
커가면서 크리스마스가 사실 별 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또 하나의 쉬는 날일뿐.
그래도 사라져가는 감정들을 붙잡아가며 빈자리를 대신할 크리스마스 용품들을 사모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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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

1.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내가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었다. 초등학교때는 남녀구분없이 같이 모여 놀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그 남자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지금보다 훨씬 부끄러움이 많았고, 새침했다. 그래서 고백은 커녕, 그냥 같이 놀던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그러다 마침 뉴스에서 며칠 뒤 몇 십년에 한 번이랬나, 유성우가 비오듯 쏟아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유성우를 그 남자애와 보고싶어서, 그 뒤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얘들아 유성우가 떨어진대! 라며 운을 띄웠다. 사실 난 그 남자애하고만 보고싶었는데, 내가 만약 그 남자애한테 같이 보자고 했다가, '그럼 애들이랑 다같이 보자', 또는 '난 졸리니 안볼래' 따위의 대답을 들을까봐 괜히 두려웠다. 그렇게 거절을 당하면 내가 너무 챙피해서 다신 그 남자애를 더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버릴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새벽에, 그 남자애를 포함한 친구들이 다같이 운동장에 모여서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 차라리 그게 행복했고 내 감정을 지키는 안전한 방법이였다.

2.
톤다운된 립스틱들이 옹기종기 각을 맞추어 각기의 색들을 뽐내는 것을 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진다. 새빨간 립스틱, 샛분홍 립스틱도 아니고, 베이지, 진한 베이지, 연한 브라운, 연한 당근색 등 이런 어울리지도 않는 색들에 항상 시선을 빼앗긴다. 하지만 막상 바르고보면 딱히 어울리지 않아 보여 항상 실망한다.

3.
어떤 이는 내게 밥이든, 술이든, 커피든 뭐라도 좋으니 일단 만나자고 했었다. 그 순간 나는, 도대체 이 사람은 나의 어딜 보고 저렇게 말하는 걸까, 의아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했던 적이 단 한 번이였고, 단 둘이 이야기 해 본 시간은 더더욱 짧았기 때문이다. 

4.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생얼에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무거우면서도 달콤한 향수를 칙칙 뿌린 여자는 짧은 치마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아주 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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