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생각보다 별로 의미를 두지 않거나 아끼지 않았던 것들이 의외로 내 곁에 오래 남아있다. 4년 전에 가산에서 산 러닝화가 그중 하나다. 디자인 면에선 전혀 생각하지 않고 가볍고 발이 편하고, 말 그대로 러닝에만 초점을 두고 샀다. 심지어 나이키 아울렛이라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5만 원도 안 했던 것 같아. 모든 신발이 그렇듯 막상 처음 살 때 샵에서 사이즈가 잘 마나 신어보는 것과 직접 신고 걷고 뛸 때와는 확연히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제발 잘 맞길 바라는 마음으로 처음 러닝 하러 나왔었다. 특히 나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10cm 이상 되는 하이힐을 신어서 늘 발톱이 성하지 않을 때가 많아서 더 걱정이 됐다. 근데 이 운동화는 아무리 뛰어도 발톱이 아프지 않고, 발의 어떤 부분도 전혀 불편..
*바퀴 1. 바퀴가 닳진 않았는지, 연결고리가 느슨해지진 않았는지, 수명이 다하진 않았는지 등 바퀴의 상태는 살펴보지도 않고 그저 굴러가고 있어서 만족하는 사람 같다. 어떤 바퀴든 굴러가긴 하겠지. 동그랗게 생겼으니. 한 가닥, 한 가닥 섬세함의 차이가 수레의 미래를 결정한다. 2. 모든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는 법이니까. 잠시나마 놓았던 마음을 다시 채비해본다. 잊고 있었다. 절대 채워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걸.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시골 1.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가족은 아빠 회사일로 인해 도시에서 생전 처음 들어본 도시로 이사를 왔다. 흔히 시골로 불리던 이곳은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1호선이 들어올 정도로 막 개발이 시작된 곳이었고, 지하철이 들어오면서 뉴스에서 이름만 들어본 프랜차이즈들이 하나둘씩 생기기만 하면 주변 친구들은 학교에서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매년 명절 때만 되면 뉴스에선 시골을 방문하는 귀경길 인파로 인해 장시간 정체를 이루고 있다고 하루종일 떠들어댔지만 오히려 우리 가족은 역 귀성길이 되어버려서 아빠는 꽉 막혀서 움직일 줄 모르는 고속도로의 반대 차선을 보며 흐뭇해했다. 고작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등학교에 전학을 온 나는 초등학교 4회 졸업생이 되었고, 동네에 대해 ..
*조립 첫 자취방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한 친구는 나보고 상자 속에 들어있는 느낌이라고 했고, 한 친구는 옷장이 자기 키만하다고 했을 정도니까. 그래도 이사 오기 전 원래 방에 옵션으로 포함되어 있는 옷장과 책상 중에 책상을 빼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긴 작았다. 작은 방이어서 청소도 하루 만에 끝났다. 작은 옷장에 옷도 꾸역꾸역 다 채워넣었다. 짐은 최소한으로 가져왔지만 화장품이랑 잡다한 소품들을 넣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2단 수납장과 문이 달린 공간박스 1개를 주문했다. 며칠 뒤 조립엔 자신이 없어서 이미 조립이 된 것들을 골랐더니 나름 커다란 택배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문 앞에서 포장을 뜯고 안에 들어있는 수납장을 방 안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그것조차 무거웠다. 고작 2단 주제에. 낑..
*생각해 봤는데 1. 예전에는 절대 생각하기 싫은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2. 하루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같은 마음이다가도 하루는 바늘구멍보다도 더 작아져 버리는 속. 3.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답일 때가 있다. 특히 종종 찾아오는 변화무쌍함에겐 시간이 답이야. 누군가에겐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눈 비비는 것처럼 쉽겠지만 세상에서 가만히 있는 게 제일 답답한 사람에겐 가장 어려운 해답이기도 하다. 4. 30대가 된 아무개는 세상 다 산 것처럼 말한다. 이제는 기회를 잃었대. 예전엔 저랬는데, 이제는 이렇대. '지금도 젊다'라는 말 밖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Hee --------------------------------..
*버블티 1. 버블티는 배고플 때 먹기도 애매하고 배부를 때 먹기에도 애매한 존재지만 늘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2. 다니던 대학교 앞에 싼큐라고 버블티랑 지파이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지금도 있으려나. 생각해 보니 싼큐에선 버블티에 대한 기억보단 갓 튀긴 지파이를 사서 학교 잔디밭에서 맥주랑 먹었던 기억이 나네. 3. 작년에 말레이시아에 처음 갓 와서 마구잡이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쇼핑몰에 로비 의자에 지쳐서 앉아있는데 눈앞에 버블티 가게가 눈에 띄었다. 마침 목도 마르고 조금 출출하기도 하니 버블티를 마시면 딱 좋을 것 같아서 밀크버블티를 시키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픽업대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내가 주문한 버블티가 나왔는데! 앗! 안에 타피오카 펄이랑 이상한 누들 젤리같은 것이 ..
*원망 1. 어디선가 인생이 지루할 땐 적을 만들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루함보다 더 큰 고통이 찾아올 텐데 그걸 말이라고. 2. 바꿀 수 없는 남을 탓하기보단 내 운명을 탓하는 것이 정신승리의 지름길. 3. 그리 못돼 보이지 않는 애들도 뭉치면 파벌이 되고, 하나의 공동의 적을 만들어버리면 당할 재간이 없다. 그들만의 이상한 안정감에 사로잡혀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을지 알기나 할까. 아마 짐작하기도 싫었을걸.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핸드폰 1. 길지도 않은 답장엔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오매불망 기다린 티, 모바일 메신저 따위는 없던 시절 문자로 답장을 받고 들뜬 티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귀여운 시절들. 앞에서 교수님은 뚫어지게 쳐다보지만 핸드폰을 꼭 쥐고 언제 답장이 올까, 핸드폰 확인할 시간도 없이 바쁜 건가, 내 답장은 궁금하지도 않을까, 나만 기다리는 건가 등등 초당 스쳐가는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차서 아주 심심할 틈이 없었지. 2. 말레이시아에 오면서 무수히 많았던 연락처를 절반 이상 지워냈다. 같이 수업은 들었지만 졸업 후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친구, 동아리에서 같은 학번이라고 그렇게나 반가워했지만 그때뿐이었던 친구, 네트워킹 모임이나 행사, 컨퍼런스 등에서 만나 두어 번 정도 마주쳐서 공유했던 ..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1. 내 눈 앞에 펼쳐진 아경은 할 말을 잃게 했다. '와', '너무 예쁘다', '진짜 멋있다' 연신 감탄만 내뱉었다. 야경에 온 마음을 빼앗겨 아무리 불리한 제안이라도 다 수락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러면 안되는데'하면서도 1초라도 더 내 눈 앞의 광경들을 눈에 담고 싶어서 더 깊은 생각할 틈도 없이 알겠다고 해버릴 것만 같은 기분. 2. 요즘 자꾸 8년 전을 알려주는 페이스북 때문에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그땐 술을 안마시고 어떻게 노냐는 질문들을 종종 받았다. 그렇지만 술이 없어도 우린 우리대로 즐거웠다. 우리 앞엔 술보다 커피가 훨씬 많았고, 하루는 민트초코때문에 자연스럽게 중간에 탑이 쌓아진 아이스크림이, 하루는 거대한 녹차빙수가, 하루는 미키마우스 와플이, 때론..
*작은 변화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텐데. 자의적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순간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의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한계까지 다다르고 나서야 온다. 그래야, 그제서야 변화가 일어난다. 한계를 느끼지 못한다면 변화도 없다. 어떤 부분에선 너무 가혹한 진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 http://doranproject.t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