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까 말까 아, 그 브랜드. 친구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물건보다 더 비싸고 좋은 브랜드의 어떤 모델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찾아봤고, 내가 알고 있었던 브랜드였다. 그래서 쉽게 그 모델을 찾았다. 가격도 그 정도면 됐다. 부담이 없는 가격이었다. 이제 결제 버튼만 누르면 된다. 받는 사람의 주소도 이미 배송지 정보에 저장되어 있었다. 핀테크의 무궁무진한 발달로 이젠 비밀번호 4자리조차 필요 없이 아이폰에 얼굴만 들이밀면 결제가 완료된다. 1초면 끝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금액의 물건이었지만 친구는 취미에 그 돈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물건이 없어도 대체할 수 있는 더 저렴한 물건을 이미 친구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
*거절의 방법 1. 끝을 확실하게 맺어야 한다는 것, 아직 어렵다. 2. 누군가에겐 거절이 쉬웠다. 상상도 못했던 제안이었고, 마음이었기에 실현할 생각도 못 했다. 사실 실현해 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랬더니 뒤늦게 미련이 남았다. 누군가에겐 거절이 어려웠다. 그래서 끝까지 가본 적이 있었다. 한낱의 믿음을 핑계 삼아 꾸역꾸역 따라갔지만 결국 끝엔 누군가의 바닥 혹은 나의 바닥이었다. 누군가에겐 거절이 두려웠다. 그래서 항상 기회주의자처럼 타이밍만 보고 밀어붙였다. 어쩔 수 없이 거절하지 못할 상황을 만들었다. 이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얻은 것은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젓가락 같은 기쁨뿐이었다. -Hee -------------------..
*불가능 말레이시아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3천 명을 넘어 이제는 4천 명이 나오는 수준이 됐다. 어디에서 그렇게 많이 퍼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금 라마단 기간이라 저녁에 열리는 바자로 인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 라마단 기간이지. 작년에 말레이시아 온지 2~3개월 정도 지나니 라마단 기간이 되었고 당시 회사 모든 동료들이 무슬림 친구들이어서 그들은 모두 금식에 들어갔었다. 그래서 혼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동안 무슬림 친구들 때문에 못 갔던 회사 주변 Non-Halal 식당도 혼자 가보고, 평소 안 가봤던 식당도 혼자 찾아갔다가 그 식당 브랜드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올라가기도 했었다. 로컬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혼자 여길 찾아왔다는 사실에 그 식당 주인은 매우..
*노랑 20대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찾고 싶었고 찾아가기 바빴다. 유야무야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흐리멍덩한 건 싫었다. 남이 보는 나보다 스스로 나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싶었고, 알고 있고 싶었다. 주관이 뚜렷하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더 깊숙하게 학습하기도 했고, 일부러 만들기도 했다. 모든 것엔 의미가 있었고, 의미가 있어야 했고,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내 주관이 없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찾고자 노력하면서 20대를 살았다. 20대 후반이 되니 조금은 내가 생각하는 내가, 난 이런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내가 어느 정도는 만들어졌다. 그런데 30대가 되니 모든게 싫증이 났다. 내가 정했던 모든 ..
*집들이 1. 분명 친했던 것 같았다. 같이 모여서 웃고 떠드는 날이 많았고, 우리들은 그를 더 생각하고, 더 챙겼다. 그의 마음이 우리에게 조금 열린 것 같다고 우리는 생각했고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가 해외로 유학을 다녀온 뒤에도 우린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안부를 건넸다. 다시 봐서 반가운 마음을 온몸으로 전했다. 시간이 흘러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고, 우리는 그때처럼 기뻐하고 놀라워하며 축하해 줬다. 근데 딱 거기까지였나 봐. 아마 우리들도 마음속 어렴풋이 그의 집들이 초대를 받기는커녕 다시 볼 수 있는 날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 톨의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속상하진 않은 그냥 그런 사이였으니까. 2. ..
*마라탕 3년 전 회사 근처에 마라탕 집이 새로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봄이었던가. 편한 회사친구랑 같이 나와서 둘이 마라탕 집에 갔다. 뷔페처럼 가운데에 완성된 음식들이 놓여있는 게 아닌 각종 채소들, 사리들 등등 음식재료들만 잔뜩 놓여 있었고, 직원은 커다란 양푼 같은 그릇에 원하는 재료들을 골라 담는 거라고 했다.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신중하게 내가 먹고 싶은 재료들을 담았고, 매운맛은 중간 정도로 주문했다. 같이 간 친구는 매운 걸 먹으면 땀이 폭발하는 친구라 순한 맛으로. 자리에 앉아서 주문한 마라탕이 나오길 기다렸고, 드디어 마라탕이 나왔다! 마라탕 국물을 한 술 뜨면서 느낀 처음 생각은, '와 진짜 몸에 안 좋을 것 같다' 였다. 원래 간이 싱거운 나는 이렇게 진한 국물을 대하기가 어색했던..
*아무 말도 하지 마요 1. 나도 그 정도쯤은 할 수 있는데 자신의 방법과 내 방법이 다르다고 마치 내 방법이 틀린 것처럼 말하는 어조는 정말 옳지 않아 서로 간 역효과만 낼 뿐이야 만약 정말로 틀린 부분이 있다면 더욱 상냥하게 말해봐 2. 각자의 소신을 가지고 가는 길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2020년. 그래도 옆에서 누군가가 (굳이 그 사람에겐 그럴 필요도 없는데) 계속 말과 생각을 더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말과 생각 뒤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정도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네 글을 읽었을 때 참 뿌듯했어. 그래도 이유없는 반항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항상 그렇게 있어줘. 네 시간들도 많이 반짝이고 있구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3. 이 이야기는 지금 안 해줄 거야. 시시..
*면접 네가 그때 지원해보라고 했었던 그 자리 말이야. 사실 서류부터 떨어질까봐 두려웠어. 그 자리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야. 그 자리가 내 자리라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말하던 네 모습을 보면 볼수록 면접은 커녕 서류 광탈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커져만 갔어. 결국 마치 내가 그 자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지. 단 10초도 너랑 같은 회사에 다닐 것 같다는 헛된 꿈을 꾸고 싶진 않았어. 네게 희망을 주고 싶지도 않아서 관심이 많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어. 그야말로 헛된 꿈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었으니까. -Hee --------------------------------------------------------------------------------------- 도란도란 프로..
*연애상담 예전에 어떤 오빠는 내게 '여자친구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오빠 여자친구는 해외에 잠깐 어학연수갔던 상태였었지. 난 '조금만 기다리면 곧 올거야'라고 대답하면서 당시 듣던 노래를 추천해줬다. 좋으니 들어보라고. 같은과 오빠였는데 비슷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와 듣는 노래가 비슷했고, 성격도 생각보다 잘 맞아서 친해졌었다. 종종 1호선 안에서 마주치기도 했었다. 뭔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서로는 절대 이성 간으로 생각되지 않았고(뭔가 그러면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남매까진 아니지만 그 비슷하게 친해졌었다. 서로 매일 연락은 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집에 가던 길에 만나기라도 하면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가감없이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놓던 사이. 서로 만나고 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치킨 어떤 생일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뭐라도 하고 싶어서 오기로 치킨을 시킨 적이 있었다. 특히 그날은 일요일 저녁이여서 다음날 출근해야 했는데 완벽한 월요일 아침은 마치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코앞에 모니터로 만든 텔레비전을 앞에 두고 10시가 넘어서 도착한 치킨을 뜯은 적이 있었다. 왜 이제서야 넌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듯 따지고 싶었지만 그 말은 치킨과 함께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머릿속엔 최악의 생일이라는 단어는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뻔하게도 그 해엔 최악의 날들이 많았다. 내 생일조차 그런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옆에 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축하받지 못했고, 속만 상했었으니까. 아마 같은 해였던 것 같다. 오전부터 싸우고 실컷 울고 밤까지 제대로 된 밥 한 번 먹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