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1. 관악구 어느 옥상에서 파티가 열렸었다. 나름 캠핑의자를 야외 테이블 주변에 깔아놓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신나게 맥주를 들이켰고 고기를 구웠다. 그 파티에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술을 무지 좋아하는) 친구를 데려갔고, 역시나 우린 마치 우리의 생일파티라도 되는 듯 신나게 떠들었고, 실컷 웃었다. 지금은 절대 다시 모일 수 없는 조합이기도 하고, 한 명 한 명 떠올려보면 무슨 조합인가 싶지만 그냥 나다운 조합이었다. 여기저기서 끌어모으길 좋아하는 내가 만든 괴상한 조합들. 2. '와 여기서 밤에 라면 끓여먹으면 진짜 맛있겠다!' 이사 간 후 옥상에 처음 올라가서 바로 외쳤다. 그렇게 행복하고 소소한 상상을 했지만 그 외침이 공중으로 흩어지면서 그 옥상을 다시 올라가는 일도 사라졌다. 옥상은커녕, ..
*가족 난 늘 떠났고, 뒤를 돌아보지 않던 입장이었다. 남은 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나도 마음이 허하고 뭔가 허전한데, 그곳에 남아있어 실제 피부로 부재(不在)를 느낄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마음이 어려울까. 그 마음이 느껴져버리니 앞으로 예정되어 있지도 않은 부재(不在)들이 이내 두려워졌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
*휴게소 1. 그래도 그땐 이 정도까진 아니었었는데. 며칠의 지방 출장이 있어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의욕 넘치게 집을 나섰고, 중간에 휴게소에 잠시 들러 평소에 카페에서 절대 먹지 않던 메뉴를 주문한 후 마시며 다시 차에 오르기도 하고, 멍하니 하늘과 다른 차들을 바라보며 저 차들도 출장을 가는 길이겠지, 일하러 가는 길이겠지, 직장 상사의 차에 함께 타고 있어도 시시콜콜 그냥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곤 했었는데. 지금은 어딘가 잘못된 것임이 틀림없다. 2. 가족여행은 앞으로도 자주 가고 싶다. 돌이켜보면 가족끼리 매년 여행을 가긴 했었는데, 해외에 나와 있으니 쉽지 않다. 그땐 가득 찬 개인 스케줄을 조정하며 가족여행이 뭔가 의무 같았고, 솔직히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중간에 휴게소에서 ..
*막차 나는 운전면허가 소위 물면허라고 불리고 있던 시대에 면허를 땄다. 더 자세히 말하면 물면허 막차를 탔던 것. 내가 운전면허를 딴 뒤로 다시 어렵게 바뀌었다는 얘긴 들었다. (실제로 정말 바뀌었는지, 얼마나 어렵게 바뀌었는지는 확인을 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엄마가 '언젠가는 트럭을 몰아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라는 말에 솔깃해서 트럭을 타고 시험을 봤고, 네 번의 도전 끝에 결국 1종 면허를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정말 몇 번 안되는 (비록 한 번은 서울에서 산청까지 달렸지만) 운전 경력과, 일단 주위에서 들었던 대로 국제면허증까지 갖추어 말레이시아로 왔는데, 지금은 아침마다 그랩드라이버를 애타게 찾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책상 서랍에 있는 국제면허증은 이미 만료된 지 오래다...
*Bad Habits 정신건강을 위해 그만해야 할까, 또는 이걸 이겨내려고 노력해야 하나. 괴롭고 불편한 것을 피하려고 찾는 핑계일까, 누가 봐도 아닌 건 아닌 걸까. 싫은 건 피하려는 습관이 생기고 있는 걸까, 처한 상황을 바꾸는 것이 지혜로운 걸까.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 http://doranproject.tumblr.com
*글 안 쓰기 1. 문득 떠오른 기억들이 있는데, 그냥 잊도록 그 기억들을 놓아둘까 하다가 다이어리에 써놓지 않으면 도저히 억울할 것만 같아서 일단 남겨놓았다. 내 다이어리니까 시원한 욕도 함께. 마음이 약해질 수 있으므로 언제든 다시 꺼내서 볼 수 있도록 잘 보이게 적어두었다. 왜 그런 사람들은 망하지 않는 걸까. 2.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생각이나, 갑자기 든 생각들을 글로 적어두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아직도 좋아하는 것 같다. 글을 통해 괜히 그 사람을 알아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기억에 남는 건 글을 일부러 읽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과거에 쓴 글들을 통해 그 사람을 먼저 알아가기 싫다는 이유로. 함께 부딪히고 대화하며 직접 알아가고 싶다는 이유로. 신선했다. 나름. 3. 말과 생각은 순식간..
*레벨업 평소 얼굴에 표정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왜 저 사람은 표정이 저렇지, 왜 웃지도 않지 등등 여러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는데, 막상 곤경에 처하거나 황당하고 때론 화날 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도 그냥 평소 그 표정 그대로더라. 원체 그 표정. 본래 그 표정. 그러다 보니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였다. 제길. 난 얼굴에 표정이 많은 편이라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비춰지는 편인데. 얼굴에 감정이 많이 드러나게 되면 때론 포커페이스인 상대를 만날 때 불리한 경우가 있다. 아무리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표정을 최대한 없애려 노력해 봐도 내 표정을 100% 감출 수가 없어서 언제 나아지나 하는 고민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나도 최대한 이성적이(으로 보이)고 싶다고. 근데 있잖아. 내가 최근에 겪..
*접점 최근 그리 마음이 좋지만은 않은 시간들이 많았다. 내가 무슨 경험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고, 어떤 것들을 더 느껴야 하는 것일까. 아침에 문득 한국 책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읽고만 싶다는 생각에 추운 겨울에 독립서점에서 산 책을 꺼내서 카페에 가져갔다. 작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이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이번 시기에 굉장히 걸맞게 들리는 이야기라 심심치 않은 위로를 받았다. 그래 나도 어디론가 가고 있구나. 적어도 멈춰있지는 않(는 것 같)으니까. -Hee --------------------------------------------------------------------------------------- 도란도란 ..
*MBTI 그냥저냥 심리테스트 같던 MBTI가 세상에 회사 면접에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물론 사람들의 성향을 한눈에 파악하기 좋은 건 알겠는데.. 이게 절대적인(물론 그들은 절대적이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지표가 될 줄이야.. 생각보다 MBTI의 파워가 세고 강해서 놀랐다. 안 그래도 엊그제 회식을 갔었는데, 한국인들끼리의 회식이라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MBTI를 묻더라. 친한 동생이 MBTI를 워낙 좋아해서 나보고도 해보라고 하길래 진즉 해놔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대화에도 못 낄 뻔. 사실 아직까지 해당 알파벳들이 각각 무슨 의미를 띠는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맨 앞자리의 뜻만 대충 아는 수준...) 사실 내 MBTI도 외우지 않아서 주변에서 물어볼 때마다 아이폰 메모장을..
*고향 계단에서 넷북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 가로등을 스탠드 삼아서 와이파이를 겨우 찾아 컴퓨터를 했던 그곳도, 인디안밥을 품에 안고 덩그러니 이불만 놓인 방에 들어와 안정감을 느낀 그곳도, 내가 다니고 졸업한 학교는 아니지만 모교 동아리방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애정을 가졌던 그곳도, 짐을 막 풀고 잠시 아파트 앞에 나와서 누군가에게 이별을 고했던 그곳도 모두 다 내 고향이었다. 이젠 찾아갈 수 없는 곳이 더 많아졌지만, 언제나 마음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장소들. 앞으론 어떤 곳이 그리워질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곳에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 곳이 바로 내 다음 고향이 될지도 모르겠다. -H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