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1 "어, 형식아 나야. 뭐하냐? 아직도 가게하냐? 오- 그래도 오래하네. 잘 되나보네 바쁜게 좋지. 야 안그래도 나도 수원역에 가게 얻었다. 응 안양보다는 수원이 유동인구가 이십만명이래. 어, 안양보다는 괜찮은거 같아서 20평짜리 2억 2천만원에 계약했어. 회사? 회사는 사직서내야지. 아, 근데 돈이 조금 모자르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건 1억정돈데, 나머지를 구해야되. 너 돈 좀 남는거 있냐? 아, 그렇지, 먹고살기 힘들지. 은행에서 대출도 알아보고 해야지. 응, 응. 그래. 언제 가게 한번갈게. 맥주나 마시자. 아, 부모님도 잘 계시지. 뭐 잘 하라고 하셔. 그래그래. 응 다음에 또 연락할게"

-어느 초가을 밤, 22시경에 전철에서 들렸던 통화 중.


2. 보고싶었던 친구 A와 함께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말이라서 펍 밖에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동네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는 얼굴들도 많이 보였다. 같이 있었던 친구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했고, 회사도 다니고, 생활패턴이 바뀌면서 예전보다 담배를 많이 피우지 않아 사기엔 뭔가 아깝다고 했다. 그 와중에 멀어졌던 친구 B랑 연락이 되었다. 친구 A가 말하기를, 친구 B가 날 보고싶어했다고. 나와 친구 B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었기 때문에 안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고 우리가 모두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우리가 앉아있었던 펍으로 오라고 했다. 친구 B가 도착했다. '진짜 오랜만이다! 엄청 보고싶었어!' '어, 나도 궁금했었어. 정말 오랜만이다' 서로 어색어색한 인사를 나누었고, 현재 뭘 하고 있고, 어디에 살며, 부모님들은 잘 계신지, 그런저런 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친구 B를 보고있던 친구 A는 너네 무슨 소개팅하냐면서, 왜 이렇게 어색하냐며, 너네 옛날에 엄청 친하지 않았냐며, 깔깔대며 웃었고, 그 말에 나와 친구 B도 웃음을 터트렸다. '나 많이 변했지, 넌 그대로다'라며 친구 B가 말했다. '음, 화장이 조금 진해진 것 빼고는 너도 똑같은데?'라고 대답하며 싱긋 웃었다. 친구 A는 친구 B에게 담배피러 나가자고 했고, 친구 B는 내게 '나 이렇게 변했어. 흐흐.'라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잠시 나갔다. 모두가 사람이고, 시간이 시간인지라 서로 겉모습이나 지니고 있는 가치관 등이 변한건 분명한데,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B도 정말 10년만에 만났지만 말투나 모습이 달라졌어도 내가 그 친구에게 예전에 느꼈던 느낌이 그대로라는 사실에 뭔가 안심이 되었다. 사실 나도 궁금했다. 예전에 서로 맞지 않는 부분때문에 싸운것도 아니였고, 생각해보면 유치했지만 굉장히 어설프고 어이없게 멀어졌었기 때문에 종종 생각이 나긴 했다. 나이가 들면서 언젠간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가끔 했었지만 굳이 생각뿐이였다. 운 좋게도 이런 내게 먼저 연락을 해오고, 먼저 이야기를 건네오고, 먼저 안부를 물어주어 정말 고마웠다. 자리로 돌아온 친구 B는 약속이 었어서 가봐야 한다고 했고, 나중에 꼭 다시 보자며 인사를 하며 자리를 떠났다. 아쉽게도.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기에, 그 친구를 꼭 다시 보고싶다. 꼭 다시 볼 수 있겠지?


3. 내가 20대 초반이였을때, 2~3년사이로 지역과 장소를 초월하며 혼자 이사를 다녔던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쌀쌀했던 가을 밤, 두 번째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그 당시 나름대로 나만의 이삿짐 싸는 룰이 있었다. 그 룰은 바로, '내가 스스로 한 번에 들고 갈 수 있을 만큼만 이삿짐 싸기'. 성격이 급한 나는 내 이삿짐을 가지러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이 싫었고, 그냥 내가 한 번에 다 옮겨 이사를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짐을 가지고 다니진 못했다. 물론 가구 하나 내 것이 없었고, 내 이삿짐 중에 가장 컸던 건 선물받은 큰 전기장판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캐리어에 옷가지를 다 넣고, 이제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들을 정리할 차례. 짐을 싸다가 보니 책상에서 최근 한 달여 동안 쓰지 못했던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펼쳐서 보니 최근 한 달 빼곤 그 동안 소화했던 일정들과, 느꼈던 생각들,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잠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때 음료와 커피 맛있게 만드는 레시피 등이 적혀있었다. 음. 잠시 고민 끝에 그 다이어리는 쓰레기봉투 안으로 넣었다. 그땐 기록들이 모두 쓸모없다고 생각했었고, 내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다이어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 중에 가장 아쉬운 물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뭐, 비싼 다이어리는 아니였다. 그 다이어리에 기록되어진 해 말고, 바로 지난 해 겨울. '이거 스타벅스 스티커 다 모았다고 주더라. 나는 필요없으니 너 가지려면 가져.'라며 아는 분이 내게 스윽 내밀었던 하얀색 스타벅스 다이어리.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만약에 내가 그 다이어리를 버리지 않고 아직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의 나와 조금은 달라졌을까.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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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1.오후 8시 52분 기차를 타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에서 기차역까지는 2~30분정도지만, 여유있게 기차타기 한시간 전에 집에서 나왔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뚜벅뚜벅 걷고 있다가 '앗!'하고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무언가 돌뿌리에 구두가 걸리며 잠시 중심을 잃어 넘어질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넘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구두가 고장나버렸다. 구두 밑 가보시에 제대로 걸리면서 거의 가보시의 반 정도가 떨어져 나가있었다.

하...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구두를 바꿔신고 나오기에는 약간 시간이 애매하고.

이대로 계속 가기에는 이쯤에서 더 구두가 망가지면 맨발로 다녀야 하는 정말 안좋은 결과가 나올수 있기 때문에 순간 엄청 고민했다.

결론은 조금만 더 꾹 참고 걷기로 했다. 기차만 타면 된다는 생각에.

밑창이 덜컹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참고 걸을 수 있는 상태는 되어서 열심히 간 끝에 기차역에 도착했다.

휴.

다행이다. 이제 기차만 오면된다.

라는 생각으로 기차를 기다렸고, 기차 도착하기 5분 전에 미리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시계를 보며 내가 타려는 열차칸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

맙소사.

구두가 방심한 틈을 타서 내가 다리에 힘을 잘못 줬는지, 어떻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아깐 반쯤 떨어져 나간 가보시굽이 90%나 떨어져나간것이 아닌가....

?? ? ??????

진짜 어이가 없어서 계속 웃음만 났다.

아직 내가 타려는 열차칸도 못간채로 플랫폼에 우뚝 서있었다.

움직이면 그 고장난 구두에서 내 발이 떨어져 나올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구두를 최소 9cm이상되는 굽만 신기에, 이 높은 구두에서 추락할 것만 같은 굉장히 지금 상황이 불편했다.

그 순간 기차는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2.전의역이라는 곳을 간 적이 있다.

사실 목적지는 전의역이 아니였고, 거쳐서 가야하기에 전의역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기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굉장히 작은 역이였고, 조용했다.

그리고 주변엔 산과 들과 풀, 마을이 보였다.

아, 이런 곳이 있구나. 기차를 타고 그리 머지 않은 곳에 이런 풍경이 지닌 곳이 있구나. 라고 감탄했다.

그 주변을 찰칵찰칵 아이폰에 몇 장 담았고, 시간이 많지 않아서 급히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나중에는 최종 목적지를 전의역으로 잡고, 그 주변을 여행하고 싶어졌다.


-Hee



*인연


1. 굳이 잡으려 하지 않아도 깊게 맺어지는 것. 애써 지키려고 노력해도 스쳐지나가는 것. 시간이 지나도 연해지지 않는 것. 시간이 지나도 진해질 수 없는 것. 


2. 해묵은 인연은 존재할 수 없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인연은 끈질기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한 순간에 끊어질 수도 있는게 인연이다. 그 예전 진한 인연만을 생각하다간 마음이 다친다. 한 사람, 한 사람 각각 흐르는 시간은 같아도 생각의 단위와 범위, 그리고 환경이 천차만별이기에. 어느샌가 자기 자신도 모르게 기준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잣대가 변하고. 한 사람 안에 들어있는 우주가 달라졌기 때문에, 예전에 지녔던 자신의 우주와 타인과의 인연은 다시 성립될 수 없다.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섭리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수많은 번뇌를 거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 100% 인정할 수 없는 순간이였지만, 결국 인정하게 되는,그런 마음을 예상할 수 있다. 


3. 하지만 결국 아무 의미없는 인연은 없다. 서로 어떻게든 영향을 주고 받고 있으니 말이다. 


4.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밀란쿤데라)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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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1. 고등학교 2학년. '政治'라는 과목을 좋아했다. 좋아하는지라 잘하기도 했다. '政治'선생님은 단발머리에 깐깐한 이미지를 지닌 여자선생님이셨다. 아마 입술 위에 점이 포인트로 하나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政治'라는 과목을 그 선생님 덕분에 머릿 속에 쏙쏙 들어왔고, 시험도 만족스러운 성적이 나와주었다. 그런 '政治'선생님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잘됐구나, 하며 좋아하고 있는데, 국어선생님이 오시더니 내게 같이 축가를 부르자고 제안하셨다. 정확히 말하면 나와 우리반 여자아이 한명 더. 국어선생님이 성악을 예전에 잠깐 하셔서 성량이 크기 때문에 여자파트는 두명이 커버해주어야 한다고 했고, 어찌어찌하여 내 생애 첫 축가를 부르게 되었다. 그때 부른 축가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선곡된 노래 듣고 있는데, 김동규,조수미의 듀엣은 정말 아름답고 듣기 좋았다. 이 노래를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3주 전 쯤 학교 음악실에 모여서 첫 연습을 했다. 국어선생님은 긴장한 나와 우리반 여자아이에게 편하게 음악실기보는 것처럼 부르라고 말씀하셨는데, 음악실기 보는데도 누가 편하게 부르나요... 라고 대꾸하며 연습을 시작했다. 몇번 불러보니 어느정도 화음과 박자, 호흡이 맞기 시작했고, 그럭저럭 들을만한 축가가 되었다. 마침내 '政治'선생님의 결혼식 날. 우리 학년 뿐만 아니라 3학년 선배들도 결혼식에 많이 왔다. 그 외의 하객들도 많았고, 선생님들도 많았다. 약간 긴장이 되었다. 마침내 축가를 부르는 순서가 되었고, 교복을 입고 단상에 올라가 노래를 시작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政治'선생님과 신랑분이 앞에 서서 보고 계셨는데 어찌다 어색하고 민망하고 떨리던지. 어떻게 불렀는지도 모를 노래가 끝이 났고, 박수를 받으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내려왔다. 이게 내 생애 첫 축가였다. 

그 뒤로 어느새 시간이 흘렀고, 체감상으로는 아직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있는 만큼 주변에서 결혼식이 잦았다. 그러다 축가를 부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고, 곧 9월에도 축가를 부른다. 매번 축가를 부를때 곡이 달랐는데, 이번 축가 노래는 마음에 쏙 든다. 곡명은 이예준, 신용재의 '약속'. 부르면 부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좋다. 내가 축가를 부를 수 있도록 영광을 준, 부부들은 정말 큰 탈 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환절기라 밤엔 쌀쌀하기 때문에 목관리를 더욱더 잘 해야겠다. 



2. 여자들은 드레스에 대한 환상이 있다는데. 난 왜 그런 환상이 없을까. 솔직히 결혼식때 드레스도 입기 싫다. 물론 결혼식장에서 하기도 싫지만. 보통 드라마에서 보면 드레스룸에서 커튼이 열리고 여자가 드레스를 입으면 뒤에서 후광처리하면서 예비신부가 굉장히 신비롭게 비춰지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같다. 



3. 결혼, 결혼식을 엄청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사람과 사람이 만나다보면 계속 같이있고 싶어지고, 그러다가 정도 들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앞으로도 쭉 같이 살고 싶지 않을까. 간혹 어떤 이들을 보면 연애의 끝이, 최고 정점이 결혼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느낀다. 사실 결혼은 어찌 보면 연애를 다시 시작하는 포인트이지, 연애의 목표가 아닌데 말이다. 



4. 갤러리. 전시장. 심플한 하얀 벽이 있는 공간. 이게 아직까지 내가 원하는 결혼식장인데.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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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1. '소각하.'

판사가 드디어 입술을 떼어 이야기를 했다.

판사의 말을 기다리며 판사의 입만 쳐다보았던 나는 순간 저 판사의 입술이 되게 조그맣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판사여서 그런가. 진한 립스틱을 바르진 않았지만, 연한 핑크색의 틴트를 바른듯 입술에서 광이 났다.

결국엔 그 판사의 입에서 원하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다.


2. 이야기를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렵게 굳게 다운 입술을 떼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몇 분 뒤, 역시나 힘든걸까, 라는 생각이 들며 다시 입술을 닫았다.


3. 뽀뽀할 때에는 입술을 내밀어 '쪽'하는 소리가 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Hee




*우산


1.우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순간, 내 두 손엔 우산이 없었다.

 

예전에 내 생애 두번째 마라톤을 나가던 그 순간.

나이트레이스라서 오후 늦게 집에서 나왔다. 하늘이 심상치않다고 생각했는데,

마라톤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뛰는건 무리라고 생각해서 우비를 입었다. 아마 그때가 난생처음 우비를 입었었지 않았을까.

우비의 신비로움을 느끼며 탕! 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대공원 안은 컴컴했다. 딱 러닝하기에 필요한 조명만 켜놔서 좌우는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2km쯤 지났을까.

열심히 올랐던 언덕을 다시 내려오고 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났다.

끼약 끼약. 부시럭 부시럭. 원숭이들이 있는 우리를 지나고 있나보다,했다.

그리고 좀 지나자 동물들의 배설물 냄새가 났다.

동물원 가운데를 뛰고 있는 내 자신을 다시한번 실감하며 결승선을 향해 뛰고 또 뛰었다.

드디어 결승선이 눈 앞에 보이고, 있는 힘껏 전력질주를 해 당당하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완주하고 나서 맞는 비는 정말 시원했다.

 

첫사랑과 헤어졌던 그 순간.

시간은 저녁 9시가 막 지나고 있었고, 나는 내 방에서 전화로 이별통보를 받았다.

사실, 그 전에도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나이도 지금보다 훨씬 어렸었고, 서로의 감정에 대해 서툴렀고,

여러가지 오해들로 인해 쌓였던 것들이 폭발하면서 그 아이는 내게, 이제 그만 만나자고 이야기를 했다.

분위기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전화로 이별을 고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나는 당황하며 횡설수설하였고, 결국 전화는 끊겼다.

정말 얄밉게도 헤어지는 그 순간엔, 그동안의 나빴던 기억들보다는 행복했던 기억들만 생각이 났고,

그 때문에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으며, 조금 전에 들었던 이별의 말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슬픔에 복받쳐 울고 있는 그 때, 엄마가 왜그러냐며 내 방문을 열었다.

그 아이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는게 괜히 부끄러웠고, 그 이유로 울고 있는 내 자신을 왠지모르게 엄마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집 밖에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처량맞게 비를 맞고, 내 얼굴 위엔 콧물과 눈물 그리고 빗물이 섞여 물난리가 났다.

그렇게 한 두 시간쯤 빗속을 울면서 돌아다녔다. 그리고나서 공중전화로 뛰어가 친구에게 전화로 하소연을 했다.

그 아이와 내가 결국 헤어졌다고.

그 아이와 나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내 마음 속에 첫사랑으로 남았다.

 

저번주에 합정에서 미팅이 있었다.

그런데 합정역에서 내리고 보니, 정확한 미팅장소는 상수역 쪽이였다.

에잇, 그냥 나온김에 걸어가자고 생각해 걷고 있는데 비가 내렸다.

맥북을 들고 있었지만 다행히 가방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맥에 중요한 자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태라 비가 여기서 조금만 더 오면 우산을 사야지! 라고 마음을 먹고,

가져온 가디건을 머리에 히잡처럼 뒤집어 쓰고 걸었다

평일 오전에 합정 골목은 한가했다.

어떤 골목에 진입했는데,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좌우에 사람이 사는 주택인지, 아니면 회사인지 헷갈리는 건물이 있었고, 시원한 비바람이 살짝살짝 불었다.

괜히 기분이 좋았고, 설레였다. '아, 이런 기분을 앞으로도 계속 느끼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아 근데 이 기분의 원인이 뭐지?' 라고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괜히 나를 설레게 한 그 원인은 바로 평일 오전에만 느낄 수 있는 거리의 한가로움이였다.

정답을 찾아 즐거움이 한층 더 업되어 결국 미팅장소까지 우산을 사지 않고 비를 맞으며 신나게 걸었다.

 

 

2.여전히 나는 작은 3단우산을 예쁘게 정리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장우산을 들고 다닌다.

 

3.몇 년 전, 나랑 같이 살았던 밍(일명)은 우산이 없을때, 아이패드를 머리 위로 들어, 그렇게 얼굴에 물이 닿지 않게 다녔다. 그 당시 아이패드가 맨 처음 출시되었을 때여서 나는 경악을 금치못했었다. 요즘 밍이 보고싶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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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내 사랑하는 소중한 친구가 먼 나라로 떠난다.

평생 떠나는건 아니지만, 같은 한국에 없다니 굉장히 허전할 것만 같다.

항상 만나면 즐겁고, 별일이 없어도 재미있고, 소소한 담소를 나누며 행복을 논하고, 때론 서로 잔소리도 해주며, 그렇게 한 해, 한 해 지내왔는데.

곧 있으면 찬 바람이 슝 부는 온전한 가을이 100% 첨가된 밤을 느껴, 바로 카톡으로 지금 가을이 100%라고 이야기 하면 동감해 줄 수 없겠지.

첫 눈이 어설프게 오면 왜 눈이 이렇게 어설프게 오냐며, 또는 왜 지금 이 상황에 첫눈이 내리냐며, 불평불만을 이야기해도 바로바로 대답해주지 않겠지.

때론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선물을 받아, 나 지금 이런 선물을 받았는데, 이런 뜻이 담겨져 있어서 엄청 지금 좋은 내 기분을 설명해 주고 싶은 그 순간, 바로 전화를 걸 수 없겠지.

생일이 나흘밖에 차이나지 않아 우리 생일파티는 언제할까, 어디서 뭘 할까, 무엇을 먹을까, 하며 함께 고민할 수 없겠지.

폭설이 와서 설질이 좋다며 스키장을 가자고 잔뜩 흥이 난 목소리와 표정으로 이야기 할 수 없겠지.

겨울이지나 봄이되어 봄바람에 내 마음이 울렁거리고 설레여 함께 소풍가자고 할 수 없겠지.

아쉽고 또 아쉽다.

하지만 서로 대화가 부족해져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에.

타국에 가서 마음 편하게, 여유롭게 지내는 순간이 많지 않겠지만, 그 곳에서의 시간을 통해 분명히 성숙해질 것이라고,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도 그 순간만큼은 괜찮다고,

항상 즐겁지 않고, 기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 끼 한 끼 굳이 배부르게 먹지 않아도 좋다고,

그때만큼은 눈물 흘려도 된다고,

그때만큼은 외로워도 된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동안 나역시 많은 일들과 사람들을 겪으며 느낀 생각들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잊지 않으려 일기도 열심히 쓰고,

정말 지금은 꼭 이것을 이야기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당장 메일도 쓰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허전한 건 사실이다. 

아무튼 난 항상 든든하게 앞에서, 뒤에서 지켜보며 응원해줘야지!

내 사랑하는 소중한 친구를 위해!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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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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