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1.언제나 엄마의 지갑은 항상 굳게 닫혀있었다.엄마는 어릴 적 부터 쉽사리 내게 지갑을 열지 않았다.초등학교 4학년때였나. 친구들이랑 수영장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용돈을 다 써버리고 없었다.그래서 엄마한테 수영장가야한다고 용돈을 달라고 하니, 절대 정말 절대로 주지 않으셨다.친구들이 하도 내가 나오지 않아서 우리집까지 찾아왔으나, 엄마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셨고,그래서 친구들은 돌아갔고, 덕분에 나는 골이 나서 방에 들어가서 문닫고 괜히 서러워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그 후에도 엄마의 지갑을 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학교 준비물 등등 필요한 돈이 있어도 엄마에게 말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단 한번도 엄마가 쿨하게 '아 그래? 잠시만' 하면서 지갑을 쉽게 연 적은 없었다.준비물 같은 경우에..
*동생 1.땡볕아래 어느날 운동장에서 한 여자아이가 쓰러졌다. 그 여자아이는 선생님 등에 업혀가 급한대로 숙직실에 몸을 뉘였다. 여자아이는 의식이 없었다. 그로부터 몇십 분 뒤, 여자아이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숙직실에 도착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양호선생님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 나서야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그 여자아이도 의식을 되찾아 눈을 떴다. 선생님이 여자아이의 어머니한테 직접 전화해서 알렸기 때문에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학교에 오신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선생님이 여자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하기도 전에 여자아이의 동생이 어머니한테 뛰어가서 우리 언니가 죽는다며, 쓰러졌다며, 울고불고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고 한다. 그 당시 그 여자아이와 동생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둘다 어렸기 때문에 매일 ..
*여행 1-1. 전의역에 갔었다. 물론 목적지는 다른 곳이였지만, 전의역을 경유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우와! 우와!! 생각지도 못한 정말 평화롭고 잔잔한 풍경들이 언제나 든든한 어깨넓은 남자친구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산은 푸르고. 전의역 건물은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역처럼 아담 그 자체였다. 누군가가 마을에 벽화사업을 진행했었나보다. 귀여운 벽화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고, 벽화들과 아담한 건물들이 제법 어울리지 않는 듯하며 어울렸다. 1-2.전의역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역 주변에 정말 사람 손길이 물씬 느껴지는 화단들. 선반에도 화분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었고, 땅에도 예쁜 모종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런 손길들이 담긴 식물들을 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
*만약 내가 그였다면,추운 겨울 밤, 함께 택시를 타고 가자고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가까이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되었던 날을챙길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누가 들어도 시덥지 않은 소리를 하고있는 상대방을집중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미처 생각하지 못한 차이를 맞닥뜨렸을 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상대방이 떡볶이를 먹다가 실수로 입 안에서 떡볶이의 잔재가 수직으로 식탁 위에 떨어졌을때 정색하지 않고, 또는 모른 척 하지 않고, 그냥 낄낄대며 웃을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정말 그냥 자신만을 생각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가고 싶었을 때가지 않고 한번 더, 다시 한번 더 볼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 다른일로 짜증내는 상대..
다시 겨울이 되었고, 스타벅스에서도 시즌메뉴가 재등장했다.시즌메뉴 중 가장 좋아하는 토피넛라떼-완전 달달! 맨 위에 휘핑크림 많이많이 올려서 마시면 천국이 따로없다. 선불카드로 결제를 하고 픽업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탐구여니 고객님, 토피넛라떼 두 잔 나왔습니다~~!" 라는 파트너언니의 한 마디. ????????????탐구여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단 빵 터진 웃음을 참고 어찌 된 일인가, 도대체 왜 저 파트너분은 나를 어떻게 알고 탐구여니라고 하는가.라고 토피넛 라떼를 마시며 영수증을 봤는데, 영수증 아래쪽에 내 닉네임이 써있었다.아 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언제 내가 저렇게 해놨지................... ㅋㅋㅋ 아무튼 진짜 엄청 엄청 웃겼다.뜻밖에 탐구여니..
*30분 시간이 되었다.입고있던 편한 반팔과 반바지를 벗고,위엔 예전 에너자이저 나이트마라톤대회에 나가 사은품으로 받은 티셔츠를 입는다. 아래엔 그냥 엄청 부드럽고 가벼운 편한 검정색 트레이닝복을 입는다.앉아서 양말을 꺼내 쓱쓱 양 발에 신는다.일어나서 살짝 옷장 앞에서 고민한다. 얇디 얇은 바람막이를 입을 것인가.아니면 그냥 바람막이 생략하고 두꺼운 패딩을 입을 것인가.살짝 어제를 떠올려본다.어제는 반팔 위에 바람막이를 입고, 두꺼운 패딩을 입었다.그런데 막상 바람막이는 나중에 돌아올때 왼손에 들고 왔다.안되겠다. 그냥 바람막이는 생략하자.패딩을 단단히 입고, 아이폰과 이어폰을 왼쪽 주머니에, 현관 카드키를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거실로 나왔다. 타이어 두개를 쌓고, 그 위에 천을 깔고, 유리를 얹어 만..
*콩 1.예전에는 완두콩을 제외하고 콩밥은 무조건 싫어했다. 특히 우리집 밥상에 까만 검정콩이 들어있는 콩밥과 강낭콩이 콩밥이 많이 올라왔었다. 일단 색감 자체부터 내 식욕을 떨어뜨렸다. 밥을 다 먹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나와 달리 아직 내 밥그릇에는 남긴 콩들만 수북해서 엄마가 숟가락으로 푸욱 떠 가셨다. 그냥 제대로 콩을 먹어보지도 않고, 콩이 들어있으면 안 먹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보고 '친할머니가 콩밥을 안드시는데, 너가 그대로 닮았나보다'라고 하셨고, 나는 그런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 나는 콩을 못 먹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다지 콩밥을 먹을 일이 많이 없어서 그냥저냥 넘어갔다. 물론 식당을 가거나, 집 밥상에 콩밥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