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이유 모를 변덕과 불안함이 가득한 날이 있었다. 다음날은 뉴욕 여행을 가는 날이었는데, 비 오기 전 날씨라 하늘은 회색빛이고 가을이라 일교차는 커서 밤만 되면 으실으실 추웠다. 일 년 전부터 계획된 여행인지라 일주일 전부터 꾸역꾸역 여행 짐을 싸긴 쌌는데 영 기분이 안 났다. 나와 일 년 내내 신나게 뉴욕 여행 계획을 짜던 친구도 역시 나와 동일한 마음인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때가 되자 누군가에게 등 떠밀리듯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자 조금씩 여행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보딩 시간도 잊은 채 떠들고 놀다가 방송에 이름이 불렸고 머쓱하게 탑승구로 뛰어갔다. 인생에 길이길이 기억 남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뉴욕도 한국과 비슷한 가을이었다. 다만 아침과 저녁에 한국보다 조금 더 추웠을까. 낮에 열심히 돌아다니다 마지막 일정으로 해가 막 질 즈음 노이에 갤러리에 도착했다. 이미 갤러리 입구부터 두어블럭 정도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고 있었다. 우리도 얼른 그 줄에 합류했고 점점 어두워질수록 니트 하나만 달랑 입은 내 몸이 덜덜 떨렸고 그런 나를 발견한 친구는 나를 껴안아 주었다. 그렇게 오들오들 떨다가 20~30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입장을 했고 클림트 작품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클림트였기에 다른 작품들은 적당히 훑어보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낮에 센트럴파크에서 신나게 자전거를 탄 것에서 모자라 추위에 떨며 이미 지친 우리들은 어두운 센트럴파크를 가로질러 호텔로 향했다. 센트럴파크의 지리를 잘 몰라서 그냥 정처 없이 걷다가 어떤 젊은 커플 뒤를 우연히 좇게 되었는데 그들은 단지 어두운 곳을 찾으러 갔을 뿐이었고, 그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다시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다 옆을 봤는데 너구리들이 두 눈을 밝히며 우리를 견제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너구리들과 눈이 마주친 우리는 혹시 너구리들이 공격하지 않을까 싶어서 팔짱을 꼭 끼고 걸음을 재촉했고 드디어 사람들 무리에 합류해서 무사히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을만 되면 우습고 무모했고 겁 없이 돌아다니던 뉴욕이 떠오른다. 늘 뉴욕을 같이 갔던 친구에게 뉴욕에 가고 싶다고 안부를 전한다. 그렇게 몇 해가 흐르고 어느새 브루클린 하이츠에 다시 가서 야경을 함께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일 사람은 이미 정해졌다. 이제 뉴욕을 언제 갈 지만 정하면 될 것 같은데.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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