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동 골목골목 사람사는 그곳,흙길 하나 없는 시멘트길 틈사이에 식물들이 뿌리를 내렸다.한 번 뿌리내리면 죽을때까지 자력으로 터를 옮기지 못하는 식물들의 모습이 인간의 삶과 다를게 없어보였다.변화가 두렵고 귀찮아서 이사를 가지 못하고 평생 한 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행궁동도 불편하고 좁고 낙후 되었어도 어르신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자리에 있고 싶어한다.낯선이들이 때론 불편하기도 하고, 때론 반갑기도 한 그 이면의 모습속에서 어쩌면 사람이 그리운지 모르겠다.한집 두집 철거되고, 삶의 터전이 파괴되어도 쉽게 그 자리를 잊지 못한다.그들의 마음을 이해해 줄 것 같은 들풀에게서 나는 위로를 얻는다.그리고 햇빛을 비추듯, 그들에게도 희망이 보인다. -최은아 작가, [착가노트]- 이 글을 ..
치과배드에 몸을 뉘였다.짧은 치마를 입은 내 다리엔 담요가 덮어지고,치과 조명기 바로 아래에 있는 내 얼굴엔 입 쪽에만 동그랗게 구멍이 나 있는청색 도포가 씌워졌다.조금 뒤에 간호사가 내 입을 벌리더니 이에 붙은 브릿지들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순간 내 귓가에 결혼행진곡이 들렸다.치과에서 결혼행진곡을 틀어주더라.참으로 묘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그 하필 많은 노래 중에, 정말 수만가지 노래 중에 결혼행진곡이라니. 점점 생각에 꼬리를 물고 꼬리에 꼬리를 또 문다.내가 결혼하는 날이 올까,그 때 내 옆에서 멋진 턱시도를 입고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고는 있을까.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이랑 평생을 살면 행복할까.아이는 내 욕심대로 낳을 수 있을까.내가 꿈꾸던 ..
근래에 고민이 많은 친구를 만났다.그 친구는 항상 고민을 한다.내가 이렇게 하면 이건 저렇게 되고, 저건 저렇게 될 것이며,또 이런건 저렇게 되겠지.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되고, 나는 이렇게 되면 저건 저렇게 되겠지?어떻게 해야할까? 라기에,음.그냥 나라면 나는 이렇게 할 것 같아, 라고 그냥 내 생각을 이야기 해주었다.그랬더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리냐면서, 결단력이 부럽다고 했다. 모르겠다. 내가 결단력이 있는지는.사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물론 진짜 각양각색의 고민을 하고 있겠지)는 잘 모르겠지만내가 살면서 했던 고민들은 솔직히 답이 나와있는 고민들이 대부분이였다.요즘엔 답정녀? 이런 말도 있던데. 왠만한 것들의 고민들은 다 그런것들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그래..
creep을 듣는다.익숙한 드럼소리가 들린다.원래, creep은 비오는 날 들어야 최곤데.근데 지금 갑자기 듣고 싶어져서무한반복으로 듣고 있다. 근데, 갑자기 발이 시렵다.살짝 수면양말을 신고 있어야지.거 참, 체온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엄청나게 변덕이 심해서아무리 더워도 샤워한번 하면 다시 체온이 내려가고, 춥다고하고.내가 생각해도 참 피곤하네.모든게 다 심장탓으로 돌려버려야지. 시간이 지나가고 나이가 한두살씩 먹어가고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하나둘씩 알게되어 가고 있는데마음을 여는 법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무엇때문인지는 정확히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언젠가부터 계속 마음을 꽁꽁 여매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뭐래; 춥냐 ㅋㅋ왜 꽁꽁 매고 있지.따뜻함이 필요한건가. 수면양말을 마음에 씌워버리자.ㅋㅋ ㅋㅋ..
밤 11시가 훌쩍 넘었던 시간,난생 처음 밟아본 그 곳에서 방향치, 길치였던 내가 애써 그 동네와 빨리 익숙해지려고 두리번 두리번 고개를 돌리며 주변에 문 닫은 가게들을 둘러보았고,지금은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지만,처음 발을 내딛었을때 빨리 내 공간으로 만드려고, 낯설지 않으려고, 주변의 모든 사물과 가구에게 눈길을 주었고,잠이 오지 않았지만, 빨리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어두운 방, 침대에 누워 마음 한켠에 설레임을 갖고 잠을 청했던 그 때가 생각이 났다.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힘들때였지만, 마냥 웃을 수 만은 없었던 그 때 였지만,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참 좋았다. 내 자신에 대해서 주위 아무 영향 없이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때였고,내 감정이 가장 소중했던 때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