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분위기 1. 입김이 호호 나오는 날에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짧은 치마에 기모도 아닌 얇디얇은 스타킹 하나 겨우 신고 그래도 배는 시렵다고 끈나시 덧대입고 그 위엔 (치마 속에 넣어 입기 위해 절대 두껍지 않은) 목티를 입고 울 몇 프로가 섞였는지도 잘 모르겠는 자켓 입고 이제는 하도 신어서 아픈 줄도 모르는 높은 힐을 신고 깔깔거리면서 누굴 만나는 지도 모르는 채 밤거리를 돌아다니던 겨울이 있었다. 2. 밤 9시 정도였으려나. 홍대역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왔는데 눈과 비가 섞여서 내리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우산을 폈고 약속장소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내 우산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놀라서 옆을 보니 어떤 남자애였다. 죄송하다며 능청스럽게 우산이 없다고 떠들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1. 몇 번이고 헤어짐을 고한 사람이 있었다. 근데 그 사람은 나랑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잡은 적이 없었어. 내가 헤어지자고 한 마당에 나랑 헤어지기 싫다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건 그거대로 짜증이 났어. 이별을 고하는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거대로 서운했어. 근데 되돌아보면 내가 너무 완고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다시 붙잡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테니까. 2. 나름 더 나은 선택인 줄 알고 어렵사리 꺼낸 이별이었고, 꼴에 상대방의 안녕을 빈 적이 있었어. 나 같은 사람 만나지 말라고. 근데 그건 너무 내가 거만했더라. 내가 너무 가식을 떨어버렸지 뭐야. 결국 나 같은 사람 잊지 말라는 말이었던 것 같아. 3. 헤어지자고 하니, 내 앞에서 ..
*월요병 1. 월요병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은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시리얼이나 과일을 먹고, 샤워하기 전 아이폰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한 후 엄청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는 것. 샤워뿐만 아니라 머리 말릴 때, 화장할 때, 옷입을 때 등 출근하려고 현관을 열기 직전 에어팟을 귀에 꽂기 전까지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는다. 사실 아침 음악들은 러닝할 때 플레이리스트랑 거의 겹치는 부분. 2. 아침에 출근하기 직전까지 마음가짐을 잘 갖춰놓으면 회사에선 월요병이고 뭐고 문제없다. 특히 월요일은 생각보다 더 시간이 빨리 흐른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
*주말 1. 지난여름엔 주말에 자전거 타러 나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테니스 치러 나가기 바쁘다. 이제 테니스 시작한 지 2달 정도 되었는데, 치면 칠수록 어렵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생각보다 단순한 스포츠가 절대 아니었다!!! 내 몸뚱아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어떤 사람들은 테니스 3년은 쳐야 폼이 겨우 나온다고들 하는데.. 그 말을 듣고 위로 삼기에는 내 인내심이 부족하다. 너무 3년이면 멀잖아.. 아무튼 매주 토요일마다 레슨을 받는데, 나아질랑 말랑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턴 화요일 밤에도 레슨을 받게 되었다. 레슨 외엔 그냥 사람들끼리 모여서 주 중에 한 번 연습을 한다. 처음 테니스 시작하고 나선 레슨일인 주말만 기다려졌는데, 이젠 일주일 7일 중 띄엄띄엄 2~3일은 테니스를..
*소파 1. 사실 난 아예 소파를 들일 생각이 없었다. 보통 떠올리는 집의 구조를 깨버리고 싶었기 때문에 소파 자리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티비자리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있고 싶은(편안하게 반쯤은 누워앉을 수 있는 그) 숨은 니즈가 사람을 침대로 향하게 했고, 외로운 테이블은 주인 없이 홀로 어둠 속에 놓여져 있을 때가 많았다. 소파가 없으니 사람이 침대로 가는구나. 테이블도 테이블 나름의 쓰임새가 있었지만 소파를 대신할 수는 없구나. 그 뒤 레이스 문양이 있었던 남색 소파가 들어왔고, 어느 순간 하얀 무광 책상이 생기면서 자리가 무색한 테이블은 시골 어딘가로 보내졌다. 난 남색 소파에 모서리 자리에 몸을 반쯤 뉘여 책을 읽었고, 남색 소파 끝 손잡이 부분을 베개삼아 티비를 ..
*화 1. 아무리 누구 탓이라고 돌려봐도 결국 내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파트너가 일을 못하는 것도, 결국 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불어 의사소통 또한 문제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들어서 스스로 답답했다. 내가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했다면 이것보다 잘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만약 저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더 결과물이 나아졌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그 생각 끝엔 내가 결국 원인을 다른 것으로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그냥 내가 다 잘하면 될 일이였잖아. 누구 탓할 필요 없잖아. 그렇게 결론을 내 버리니 흥이 떨어졌다. 재미가 없었다. 흥미롭지 않았다. 주변은 모두 그대로인데, 마음을 엇나가게 먹어버리니 모든 게..
*거울 1. 립스틱을 자주 덧바르는 내게 거울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소지품이다. 주로 가지고 다니는 가방 두세 개에 거울을 각각 미리 넣어두니 가방을 옮길 때마다 거울까지 모조리 옮기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다. 예전에 친구가 자기는 가방마다 립스틱 하나씩 넣고 다닌다는 소리에 나도 응용해봤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 2. 내가 좋아하는 류의 캐릭터들이 있다.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나와 꽤 오래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어떤 캐릭터가 나오면(특히 스티커나 이모티콘) '저건 딱 네 스타일'이라고 딱 말할 수 있을 만큼 취향이 확고하다. 하지만 내 취향이 아닌 스티커를 동생이 줬다. 동생은 나름 큰마음 먹고 준건데, (나와 동생은 언제부턴가-아마 20대 후반? 스티커를 애정한다) 사실 내 타입의 캐..
*사이즈 1. 요즘 거의 매주 나이키에 얼굴도장을 찍는다. 나이키(를 내가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에서 테니스화를 사려고 보니 내가 가는 매장마다 전부 테니스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테니스에 관련한 나이키 의류, 신발은 다 온라인으로만 구매할 수 있다는 맥 빠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처음엔 테니스화와 일반 운동화 차이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어서 검색도 해보고 코치님한테도 물어봤었다. 결론은 (사실 옷보다) 더 테니스화가 필요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데 찾는 것도 쉽지 않고, 실제로 보는 것도 쉽지 않고, 신어보는 것은 더더욱 하늘의 별따기다. 마지막 보루는 서울 낙원상가처럼 말레이시아에도 테니스 낙원상가 느낌의 쇼핑센터가 있다고 해서 나중에 시간되면 그 곳에 가볼 예정이다...
*병아리 1. 나의 병아리(1) 어언 12년 전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이것저것 관심있어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모든 것들을 흥미로워 하는 내게, 하루는 친구Y가 하나의 사진을 보내줬다. 바로 병아리 뒷모습. 그냥 뒷모습도 아니다. 병아리가 열심히 뛰어다니는 뒷모습이다. 마치 나라고. 그냥 그 병아리를 보면 나같다고 했다. 작은데 걸음은 꽤 빠르고 여기저기 잘 쏘다니는게 꼭 나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쫑쫑거리며 돌아다니는 그 에너지를 요즘은 그 친구에게 주고싶다.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그 에너지가 양분이 되어 친구가 활짝 필 수 있도록 말이다. 여전히 어여쁘게. 앞으로도 어여쁘게. 2. 나의 병아리(2) 내 가방 속에는 항상 병아리가 들어있다. ..
*자격 1. 그놈의 자격. 내게 뭐라고 할 자격이 있다면 곧이 곧대로 듣지 않을 자격도 있다. 2. 마음대로 연락할 자격이 있다면 마음대로 대답하지 않을 자격도 있다. 3. 그 신발은 싫다고 몇번을 말해도 눈치를 못채고 있는 건지, 눈치가 없는 척을 하는 건지. 말하다보면 말하면서 기분이 나쁜 내가 싫어서 이내 입을 다문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 htt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