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사실 계곡이라는 곳은 내게 그리 달갑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발이 닿는 곳에서만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나의 수영 실력이었고, 그다음은 맨발로 물속의 보이지 않는 바닥을 밟아야 하는 불안감이었다. (물론 아쿠아 슈즈라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도 밑창이 얇은 건 맨발과 동일한 불안함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계곡은 굳이 내가 먼저 가자고 말을 꺼낸 적도 없었고, 누군가 가자고 해도 시큰둥한 반응이 가장 먼저 나왔었다.
정우를 만난 이후엔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됐다. 힘든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서 찝찝한 등산화를 벗고, 발을 담그는 것, 더 나아가 물살이 세지 않고 얕게 흐르는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바지가 젖는 것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정도까지 왔다. 원래의 나라면 당연히 수건이 있어야 했고, 바지가 젖으면 갈아입을 옷이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런 강박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수건과 새 옷 따위가 없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별일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계곡에서의 별일이 아닌 일처럼 평소에도 내가 아무 일도 아닌 것에 별일처럼 느끼는 것들이 많았다. 정우를 만난 이후 그는 옆에서 늘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덕분에 나도 예전보다 조금은 더 마음 편하게 살아가게 되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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