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1.
스케치북 카페에 갈 일이 있는데,
아직까지 가지 못하고 있다.

스탬프 꽉 찬 카페 명함을 선물로 받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은은하게 기분 좋은 일이다.

따뜻해지면 가서 향 좋은 커피를 마셔야지.



2.

평소에 내맘대로 했던 윗몸일으키기 자세를 

어찌어찌하다 바꿨는데, 

참된 자세같다. 배가 무지하게 땡기지만

이제야 제대로 된 자세로 운동하는 것 같아 기분은 좋다.



3.

올해에 음악 페스티벌을 가보려 한다.

내 성격엔 어떤 뮤지션의 콘서트에 가려면,

그 뮤지션 노래를 꼭 다 숙지하고 가야, 직접 들을때 감동이 더해진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앨범단위로 노래를 듣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어려운 일이였다.

그렇지만 그런 편견을 깨고 올해는 여러 뮤지션들이 나오는 페스티벌에 가보려 한다.


나는 또 어떤 편견을 얼마나 더 깰 수 있을까.



4.

"산다는 건 살아 춤추며 가는 것. 어둠 속에서도 눈물 속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며 싸워가는 것." (박노해)



5.

낯선 길을 걸으며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하얀 실구름 떠다니고 새파란 하늘일 때.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만 같다.

조용함과 아늑함이 가미되면 더할 나위 없다.



6.

사람과 사람이 만날땐 서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인데,

헤어질땐 단촐한 말 한 마디.

꾸준한 노력의 시간을 뒤돌아 서는건 순식간이다.

무엇이 그 소중한 시간들을 그렇게도 외면하게 하는 것일까.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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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발

도란도란 프로젝트 2015. 2. 7. 14:00

*발


1.

어느정도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 그렇게 마지막 아닌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널 만나러 갔었다.

짧은 청치마를 입고, 빠른 걸음을 내딛으며 혹여나 치마가 올라가진 않을까. 혹시 모기가 내 다리를 물어 흉해지진 않을까.

입술 위에 바른 립스틱이 지워지진 않았을까. 속눈썹이 빠져 볼에 묻어있진 않았을까.

몇 번이고 치마를 정돈하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몇 번이나 고친 후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눈이 마주치면 그냥 웃을까. 아니야, 마음이 약해질꺼야. 그냥 무표정으로 인사를 할까.

먼저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먼저 인사를 하지 말까. 반가움으로 인해 붕 뜬 마음 가라앉히고 표정관리 잘하자.

수많은 고민을 하면서 계단을 올랐고, 또 내려왔다.

저 앞에 네가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먼저 아는 척을 하지 않았고, 아이폰으로 어디있냐고 메세지를 보냈다.

뒤에서 낯익게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제서야 나는 아까 수많은 고민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잊어버리고 뒤를 돌아 환하게 웃으며, 야 완전 오랜만이지. 라고 인사했다.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뜨문하게 옆에 나란히 서서 길을 걸었다.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서로의 말에 큰 호프집으로 향했고, 메뉴판에서 가장 크게 치킨이 써 있기에 쏜살같이 정해 주문했다.

친근하면서도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는 너에게 결국 냉정하고 모진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굳히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약해지려고 하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애꿏은 무거운 맥주잔만 만지막거리며 맥주를 연신 들이켰다.

모질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도 자꾸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이제 정말 나를 모질다고 생각하겠지, 이제 내겐 등돌리며 돌아서겠지, 이제 다시 보지 않고, 볼 수도 없겠지.

그러면서도 이미 결심한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며 차마 제대로 눈을 보지는 못하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냥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내 옆에 있어 달라고 할까. 내가 무슨 모진 말을 해도 넌 안가면 안되겠냐고 물을까.

아니야. 내 현실이 지금 너무 초라해. 누군가를 따뜻하게 대할 여유도 없고, 괜한 자존심에 생채기만 나서 더욱 얼음같이 대하겠지. 

아니야, 그래도 떠나지 말아달라고 할까. 내가 밀어내도 꿋꿋하게 밀려나지 말아달라고 할까. 조금만 참아달라고 할까. 너무 내가 지금 힘드니 아무것도 묻지말고 옆에만 있어달라고 할까.

아니야, 결국 나는 너에게 상처만 줄거야. 행복할 수 없을꺼야.

차가운 말들을 내뱉으면서도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결국 너는 바라던 말을 내 입에서 들을 수 없었고, 나 역시 바라던 말을 너의 입으로 들을 수 없었다.


2.

요즘에도 하루에 수십번, 아니 수백번씩 감정이 오르내리고, 생각이 변한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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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1.

내가 사진 어플리케이션은 많아도 영상 어플리케이션은 잘 안쓰는 편인데, 지금까지 딱 영상 어플리케이션 중에 두 개를 나름 열심히 써봤다.

몇 번 찍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업로드를 했었고, 덕분에 꽤 많은 영상들이 쌓였었다.

그 중에 하나는 지금 내 아이폰에서 삭제된 상태고, 하나는 계속 남아있다.

삭제된 어플리케이션의 내 첫 동영상이 생각난다.

그땐 몇 년 전 겨울이였고, 엄청 추웠고,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려 많이 쌓인 상태였다.

나는 그 당시 아마 홍대를 가려고 길을 나섰고, 집과 전철역 중간쯤에 있는 골목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며칠 전 받은 어플리케이션이 생각났다.

그 당시 아직은 베타버전이였지만, 그 어플리케이션을 만든 사람들을 나름 좋아했기에, 테스트 많이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

그렇게 내가 찍은 첫 영상은 눈이 잔뜩 쌓여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내가 신은 털부츠로 뽀득뽀드득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내용이였다.

필터는 아마 옛날 오래된 영상처럼 노이즈가 섞인 필터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어플리케이션은 내 아이폰에서 삭제되었다.

더불어 그 어플리케이션을 만든 사람들과의 가는 실과 같은 인연도 사라지는 듯 했다.

그리고 수십 개월 뒤.

또 다시 나는 새로운 영상 어플리케이션을 아이폰에 설치했다. 비슷한 다른 영상 찍는 걸 만들었는데, 한번 테스트 해달라는 부탁에서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군말없이 바로 앱스토어에 접속해 어플리케이션을 받고, 열심히 사용했다. 그 역시 베타 버전이였을때였다.

첫번째 영상 어플리케이션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찍었다. 버그체크와 피드백도 왕창왕창 보냈다.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그렇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알게해준다고 했던가.

그 모든 애정이 모두 헛이라고 하긴 내가 너무나 아쉽고 아쉽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되뇌어 생각해보고 뒤돌아봐도 계기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나의 진심을 많이 표현하려고 했었고, 말을 많이 안해도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했었다.

지나온 시간들과 대화들과 발송했던 카드들이 애정어린 관심과 애정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였던 것 같다.

눈 위에 열심히 신나게, 혹시 앵글이나 촛점이 빗나가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찍었던 내 발자국 영상은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2.

자꾸 차 윗부분에 고양이들이 발자국을 낸다며 투덜대는 사람이 있다.

그 모습이 꽤 귀엽다.

예전에는 고양이들이 밤새 파티를 했는지, 발자국이 오밀조밀 투닥투닥 나 있는 모습을 내게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그러면서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만약에 그럴 확률은 적지만, 그 사람이 고양이를 키운다면 같이 있는 모습이 정말 꽤 귀여울 것 같다.

나는 그 모습을 자꾸 보고 싶겠지.

그렇지만 고양이든 강아지든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자체는 대단한 일이므로, 조금 더 심사숙고하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결국 돌아오는 대답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고양이를 키울까'다.



3.

내가 좋아하는 감성과 감정들. 애정어린 관심과 따뜻함.

그 모든 것이 그리운 요즘이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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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던 식사 혹은 술자리에 대한 기억


'여보세요'

'나 지금 학교 앞에서 내렸는데, 저녁 먹었어? 주먹밥 사갈까?'

'아 아직 안먹었어. 그래 그거랑 컵라면이랑 먹자'

'알겠어!'

그땐 이런 대화가 굉장히 일상적인 대화인줄만 알았다. 언제나 항상 할 수 있는 대화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때의 그 대화는 굉장히 소중했고, 아주 어쩌면 다신 그런 대화를 못 나눌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고, 시기는 겨울방학때였다. 

막상 겨울방학이 되고나니 아는 친구들은 전부 집에 내려가고, 나만 기숙사로 올라간 꼴이 되었는데,

거기서 평소에 수업을 같이 듣던 친구를 만났다. 처음에는 아 저 친구도 기숙사에 계속 남아있구나, 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었다.

어쩌다보니 밖에서 여러가지 것들을 하고, 저녁에 기숙사에 들어오면 그 친구와 휴게실에서 수다떠는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냥 얼굴 한번 보고 이야기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루, 이틀, 일주일동안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도대체 언제 들어와? 빨리 와~ 할말 엄청 많다구!'

항상 이런 말로 우리는 연락을 했고, 밤에 기숙사 휴게실에서 모이면 그 날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들, 왜 이 사람은 저런 행동을 헀을까, 라는 생각들,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그 사람한테 했을까, 라는 회고들 등등.

그 때마다 거의 빠질 수 없던 것들이 군것질, 배달음식, 분식들이였다.

둘다 기숙사 식당을 좋아하지 않아서 기숙사에 사는 동안 식당에는 가본 적도 없었고, 항상 저녁에 치킨, 과자, 빵, 과일 등등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정말 별거 없어 보이고, 지금은 많이 찾지도 않는 자극적인 음식에다 인스턴트 뿐이였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그 음식들이 그렇게 맛있었다.

아마 그 친구와 함께여서 맛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와 나는 마치 16살 사춘기인 아이가 종종 듣는 새똥이 굴러가도 웃는다는 그 말이 딱 어울렸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십 몇 년이 넘도록 서로 다른 방식,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니 나랑 친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겨울 내내 그 기숙사 휴게실의 넓다란 테이블과 쇼파를 하나씩 차지하고 깔깔대며 이야기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가족, 친구, 연애사, 가치관, 그 날의 하루, 성격, 꿈, 미래, 수업, 공부, 어떤 것들에 대한 의미, 사람의 심리,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 서로에 대한 생각, 행복의 의미,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들, 운동, 다이어트, 영어, 글, 영화, 드라마, 기숙사 룸메이트에 대한 단상 등등. 

정말 수백 가지, 수천 가지의 주제들이 때로는 매운, 때로는 달콤한, 때로는 담백한, 때로는 고소한 음식들 위를 떠돌아 다녔고, 결국엔 지금까지 서로 제일 잘 아는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내가 밖에 있다가 요플레가 있길래, 같이 먹으려고 가방에 넣고, 새벽 즈음에 기숙사에 들어왔다.

그 친구에게 '나한테 요플레 있다!' 하면서 자랑스럽게 가방을 딱 열었는데, 그 순간..요플레는 가방 안에서 무참히 터져있었다.

'으악!' 비명과 함께 바로 그 친구와 나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가방 안에 있던 소지품들을 모두 살리고 싶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나씩 건져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어폰 하나만 살리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소지품을 정리하고, 가방 속에 있는 요플레를 걷어내려고 화장실을 갔는데, 그 새벽에 화장실에서 엄청난 둘이 웃음이 터졌다.

진짜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였다.

'꺄하하하하크하꺄아아아흐흐흑아흑끄하하흡으하하하와하하하꺄아아!'

정말 그렇게 한번에 빵 터진 웃음을 지속한 것은 처음이였다. 진짜 다른 말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요플레 묻은 가방을 손가락질 하며 둘이서 눈만 마주치며 웃었다. 정말 웃겨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 시간은 자정을 넘긴 새벽이였고, 화장실이 크고 넓어서 웃음소리가 많이 울렸나보다.

'저기요! 너무 시끄럽거든요?' 라는 소리가 복도에서 들렸고,

그 친구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멈췄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 다시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큭큭푸흡큭큭큭훕풉풉풉크하하하큽큭큭풉합푸하크하하하크하큭큭훕'

소리를 크게 낼 수는 없지만 정말 완전 웃겨서 터진 많고 많은 웃음들. 화장실에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으며 가방을 살리고, 휴게실로 와서 또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그 친구와 함께 무엇을 먹어도 정말 맛있었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즐거웠다.

공허함을 많이 느끼는 요즘, 그때가 그립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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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그럼 우리 나가서 세 번째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여덟 번째 정류장에서 무조건 내리는거다' / '그래!'

대학로 파스쿠찌 2층에서 현재 앉아있는 이 파스쿠찌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바라는 어플리케이션의 이상과 머릿속 한 구석에 숨어있던 만들고 싶은 것에 대한 어떤 것에 대해 가지치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이미 아침일찍 안국역에서 시작해, 북촌한옥마을을 한바퀴 빙 돈 후, 성균관대학교를 지나 혜화동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뭐 그리 신나는지, 어딜 그리 그렇게 가고 싶었는지, 아니면 이미 산책아닌 산책을 엄청나게 하고 난 뒤 그 뒤에 찾아오는 어쩔 수 없는 생체리듬의 루즈함을 이겨내고 싶어서였는지, 새로운 곳에 대한 갈망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페 2층에서 내려와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겨울치곤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햇빛 쨍쨍한 날도 아니였다. 날씨가 흐리고, 하늘은 포토샵 웹컬러 파렛트에서 두번째 옅은 회색과 비슷한 색이였다. 그런 하늘 아래에서 버스 한 대를 보내고. 또 한 대를 보내고. 그 다음 버스가 곧바로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올랐고, 버스에서 내렸다. 안그래도 사람이 많았는데, 다들 두툼한 패딩, 외투 등등을 입고 있어서 더 분주하게 느껴지는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안그래도 중심을 못잡는 나였지만, 가만히 서 있는게 어색하고 또 어색해서, 괜히 버스 위에 붙어있는 정류장지도를 보았다. '여기서부터 정류장 여덟개를 지나면.. 아, 여기서 내리면 되겠다'라며 내릴 곳을 확인 한 후 창 밖을 보았다. 이미 창 밖은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풍경들이 보였다. 웬만한 서울 곳곳은 다 다녀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곳들이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리기도 하고, 내가 내릴 곳은 어떤 풍경들이 펼쳐질까 설레어 하며 있을 동안 어느덧 내릴 곳에 다다랐다. 잉차- 버스에서 폴짝 뛰어내리니, 6차선 도로쯤 되는 큰 길을 사이에 두고 주변에 가구점과 아웃도어점이 군데군데 있는 곳이였다. 어라. 이렇게 되면 어디로 가야하지. 무작정 느낌이 가는 쪽으로 걸어갔다. 성큼성큼 걷다보니 골목이 나왔고, 오르막길인 골목을 올라갈까 말까, 하다가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이때 내 발이 힐을 신어서 굉장히 편하지 않았는데, 힐을 신고 오르막길을 걸으면 상대적으로 편했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만으로 내린 결정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는 몰랐다. 골목으로 들어가보니, 양쪽이 빌라인 그런 골목이 펼쳐졌다. 오른쪽 골목을 보니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딱 그때 시간이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집집마다 저녁밥을 할 즈음이였는데, 집앞에서 동네오빠언니들이랑 놀고 있으면 엄마가 꼭 들어오라고 부를 그 시간. 줄넘기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곧 엄마가 밥먹으라고 부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지나쳐서 계속해서 골목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간판이 굉장히 오래된 세탁소를 중심으로 길이 두갈래로 나뉘어졌다. 한쪽 골목은 계속해서 오르막길, 올라가는 길이였고, 다른쪽 골목은 내려가는 골목이였다. 고민 끝에 계속 올라가기로 결정. 계속해서 길을따라 올라가보니 어느덧 주택가는 끝이 났고, 다시 차들이 쌩쌩달리는 6차선 큰 길이 나왔다. 계속 올라가면 뭐가 나올까 궁금했다. 조금만 더 올라가보자, 라고 서로 이야기를 한 뒤에 계속 올라갔다. 그러니 이젠 눈 앞에 어느 귀엽장한 (귀엽게 꾸미려고 노력한) 육교와 구름다리 비스무리하게 생긴 것이 나타났다. 단지 큰 길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육교겠지, 저 육교를 올라가 큰 길을 건너서 다시 내려가자,라고 결정을 하고 계단을 올랐다. 육교 가운데쯤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차들이 쌩쌩 달려서 뭔가 을씨년스러웠다. 육교 끝에 다다르자, 갑자기 갈림길이 보였다. 다시 육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과, 뭔가 언덕 산책로 같은 조그만 산 속의 오솔길. 비록 구두였지만, 이미 구두를 신어서 어딜 못 걷겠다는 생각은 오래전에 잊어버렸기 때문에 오솔길로 들어갔다. 오솔길을 들어가자 나무들이 양쪽에 줄을 지어 뻗어있었고, 바닥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자박자박 소리를 냈다. 이 길은 어디까지 가는걸까, 이러다가 등산을 하게 되는건 아닐까, 라고 이야기하며 올라가자 정자같은 곳이 눈에 띄었다. 이미 해는 거의 졌고, 저기 정자에서 조금만 쉬었다가 내려가려고 정자까지 열심히 걸었다. 정자에 도착하자 알고보니 정자처럼 생긴 조그마한 전망대였다! 오. 뜻밖에 전망대를 발견했다. 망원경은 하나밖에 없었으며 아래 귀엽게 나무토막도 놓여있었다. 나는 그 것들을 보자마자 뛰어가서 나무토막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굴을 망원경에 밀착시켰다! 우와. 망원경으로 난생처음 도시를 보았다. 항상 등산가서 산만 봤는데, 이 곳에선 도시가 보였다. 이미 깜깜한 밤이 되서 차들이 라이트를 켜고 다녀서 예쁜 조명처럼 보였고, 교회 위에 십자가들도 LED전구 덕에 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파트에서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의외의 광경이라서 아이폰을 망원경 렌즈에 대고 사진을 찍었다. 만족할만한 사진이 찍혀 기뻤다. 그런데 진짜 아예 캄캄해져서 길이 조금이라도 보일때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내려왔다. 내려오니 아파트단지가 나왔고, 그 아파트단지를 가로질러 다시 차가 쌩쌩 다니는 큰 길목으로 내려왔다. 갑자기 엄청난 공복감이 밀려오며 현기증이 났다. 하지만 엄청나게 태연한 척을 하면서 밥을 먹자며 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땐 맛집이고 뭐고, 일단 밥을 먹어야지 쓰러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겉모습이 통나무로 꾸며진 가게였고, 지하로 내려가자 주막과 밥집을 같이 하는 곳이였다. 메뉴를 고르고 주인아주머니한테 주문을 했는데, 술을 안시키자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밥을 먹고 싶을 뿐이라구요, 아주머니...' 라는 간절한 눈으로 주문을 했고, 한정식 집에서 나올만한 그릇으로 반찬과 밥이 나왔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나서 뭐가 또 아쉬운지 백화점 지하로 들어가 한바퀴를 빙 돌았다. 그제서야 정말 힘들어져서 전철을 타러 가자고 이야기를 했고, 드디어 전철을 타서 집을 왔다. 아마 이 때가 내 생애 가장 많이 걸었던 날일 것이다. 추운 겨울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높은 힐을 신고,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거리를 걸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걷게 했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걸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종종 그 때가 생각난다. 정확히 말하면 그 곳, 전망대가 생각난다. 언제 그 곳에 다시 갈 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일부러 찾아갈 마음은 아직 없다. 최근에 되어서야 그 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았다. 그 위치를 정확히 안 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찼기에, 아직 다시 찾아갈 마음은 없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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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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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으면서도 다른

시선이 마주쳤다.


어떤 이의 시선1.


'종종 우체국에 와서 택배를 보내는 그녀다. 오늘 신고 온 부츠가 예쁘네. 가방도 내가 한번도 사본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네. 그녀가 묻는다. 저울에 택배 무게를 재봐도 되냐고. 항상 무언가를 뽁뽁이에 고이 싸서 들고오는데, 대충 화장품인것 같기도 하면서, 어떨때는 접시같기도 하고. 그렇게 뽁뽁이채로 들고와서 1호박스를 자연스럽게 꺼내어 물건을 담는다. 처음에는 상자를 패킹하는것도 서툴렀는데, 이제는 곧잘한다. 해외로 보내는 일이 잦아 무게에 민감한 그녀다. 인터넷에서 미리 조사를 해왔는지, 특정 국가로 보낼때 무게가 어느정도 나가야 어떤 요금이 부과되는지 잘 알고 있다. 아, 그런 적도 있었다. 지난 번에도 어김없이 무게를 재보는데, 무게가 살짝 넘어가서 그녀가 당황하며 다시 패킹을 풀어, 포장했던 뽁뽁이의 남는 부분을 거의 남김없이 잘라버렸다. 그리고 다시 패킹해서 가져왔는데, 아직도 무게가 오바되었다. 완전 당황한 그녀는 어떻게 해야되지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국장님이 상자 날개를 아예 잘라서 무게를 맞춰준 적도 있었었지. 원래 국장님이 그런 건 잘 안해주시는데 그날따라 직접 상자 패킹도 해주시고. 아, 맞다. 내일이 크리스마스구나. 그녀한테 뭐하냐고 물어봐야겠다. 어머, 남자친구를 만난다고 해맑게 이야기를 하네. 좋겠다. 나는 그냥 집에서 남편이랑 보내야 하는데. 괜히 데이트마저 부럽다. 나도 예전에 그랬을 때가 있었는데.'





어떤 이의 시선2.


'이번에 보낼 택배는 노르웨이다. 노르웨이는 북유럽이니 3국가에 해당되겠지. 그쪽 지역은 택배를 많이 보내봤으니, 뭐 오늘도 무게가 많이 넘지는 않을거야. 1호 박스를 꺼내서 포장을 하자. 아, 우체국에 있는 그, 명칭도 잘 모르겠는 박스테이프 도구. 박스테이프를 스카치테이프처럼 편하게 잘라 쓰라고 있는 도구인데, 나는 그게 참 어렵네. 스카치테이프처럼 얇지도 않아서 자르는데 애 먹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 톱니부분으로 자르려다가 박스테이프가 잘리진 않고 보기싫게 주욱 늘어나기만 하고. 쳇. 그냥 그 도구에 끼워져 있는 박스테이프를 죽 늘려서 가위로 자르자. 박스 포장은 다 했고, 이제 포스트잇에 적어온 주소를 잘 맞춰서 붙이고, 마지막으로 CN22도 잘 보이게 붙이면.. 완성! 빨리 접수하고 전철타러 가야겠다. 아, 대기자가 조금 있네. 기다려야지. 저 여자분은 항상 친절하다. 예전에도 거의 처음 우체국와서 택배보낼때,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는데. 언제든 올때마다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신다. 이제 얼굴도 어느정도 익혀서 아는척도 하시고. 아, 맞다. 예전 여름에 내 가방이랑 시계를 보고 예쁘다며 어디꺼냐고 물어보시고. 예쁘게 봐주셔서 기분이 좋았지. 나중에 올땐 비타오백이라도 하나 사서 갖다드려야겠다. 드디어 내 차례네. 오늘도 어김없이 항상 웃는 얼굴이라 기분이 좋다. 아, 크리스마스인데 뭐하냐고 물어보시네. 웃으면서 말씀드렸더니, 갑자기 울상인 표정으로 좋겠다며, 부럽다며, 자기는 남편이랑 집에 있는다고 하신다. 음. 남자친구든 남편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랑 있으면 좋지 않나? 결혼해서 명칭만 바뀌었을 뿐인데, 왜 저런 반응이신지.. 물론 결혼하면 연애랑은 다르다고 하지만, 난 저렇게 되긴 싫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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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지


새해 첫 날, 가족끼리 회에 술 한 잔씩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말했다.

'나는 엄마랑 뒤에 너랑 진희랑 온가족 다 태우고 어디 놀러가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아빠 차 뒤에 타고 어디 갔던 일이 은근히 많았는데,

점점 커가고, 하는 일이 생기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리저리 바빠지면서 아빠 차 뒤에 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매일 같이 늦게 집에 들어와서 잠만 자고 나가고, 어떨땐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빠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하루를 지나칠때도 많았다.

그래도 가족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며, 밤에 드라마를 볼 시간에 나도 거실에 나가 같이 앉아 있긴 하지만,

드라마가 정말 내겐 재미없고, 또 그 옆에서 핸드폰만 만지작만지작 거리는 일이 많아 같이 있어도 있는 게 아닌 적도 많았다.

마음속으로는 가족이랑 함께 대화를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그래야 된다는걸 알면서도 실제로는 그게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조금만 더 가족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주말에 시간을 더 많이 내어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러가고, 여행도 가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렇게 회를 다 먹고나서 동생이랑 아이스크림을 사러 옷을 한 네 겹씩 두둑하게 입고 나왔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면서 종종 레스토랑이든 어디든 맛있는 식당을 예약해서 엄마아빠 모시고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역시 동생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착.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포장해서 집에 오는 중에,

나는 가족들이랑 있을 때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 생각을 해보았다.

멋진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가족끼리 여행갈때? 생일때? 

모두 아니였다.

나는 저녁에 아빠가 나보다 늦게 퇴근하셔서 맥주 안주거리를 찾으실 때,

냉장실 맨 윗칸 신선실에 있는 비엔나소세지를 꺼내어,

가위로 톡톡톡 칼집을 낸 다음에,

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넣고 달달 달달 볶아 소세지의 칼집이 벌어질 때 쯔음,

예쁜 접시에다가 옮겨 담고,

옆에 귀여운 종지에 케챱을 쭉 짜서,

아빠를 부를때가 가장 행복한 때 였다.

물론 아빠와 엄마, 어쩔때는 진희까지 다 같이 먹을때가 가장 행복하다.

귀여운 소세지들은 종종 나를 행복하게 한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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