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요 근래 엄청 예민해졌었던 때가 많았다. 중요한 일도, 신경써야 할 일들도 많아서. 그리고 잘 하고 싶은 일들도 있어서 더욱더 예민해졌었던 것 같다. 예민할 때에 나는 정말 내가 봐도 차갑고, 냉정하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잠이 부족할 때가 가장 예민했었다. 시험기간에 새벽까지 공부하고 잠을 한두시간 자고 일어난 아침은 정말 살얼음판이였다. 지금 생각해도 되게 까칠했었는데. 그래도 이제 잠에 대한 예민함은 버린지 오래다. 아무리 밤을 새고, 잠을 몇시간 못자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피곤함이야 물론 있겠지만. 이제는 잘하고 싶은 일이 있을때 엄청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래도 그나마 주변사람들에겐 피해가지 않게 엄청난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나를 예민하게 만든 일들이 지나가면 그만큼의 허무함이 찾아오는데, 그 허무함에 잠식할 뻔 했다. 변한 건 없는데 괜히 허무해지고 마음이 허해진다. 아직 허무함에 대한 내 마음의 방어를 제대로 해놓지 못해 무방비 상태에서 허무함에 당했다. 이제 단단하게 방어태세를 취해 허무함에 당하지 않겠다.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게 누구든지간에. 특히 나는 누구에게 간섭받거나, 잔소리를 듣거나 하는 것들을 정말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않게, 아예 그런 잔소리가 나오지 않게 알아서 할일은 다 했던 것 같다. 이런 성격 덕분에 부지런함도 생겼다. 하지만 관계를 빙자해 거리를 인위적으로 좁히려고 하거나, 괜히 한 마디, 두 마디, 꼭 필요하지 않는 말을 더 하는 사람들이 있다. 챙겨준답시고. 또는 이제는 그런 관계니까 이래도 되겠지. 뭐 이런 등등의 말도 안되는 이유로 포장을 한다. 물론 모든 적당한 건 좋다. 하지만 사람마다 적당한 선이 다르기 때문에, ‘이건 좀 아닌데. 저 얘긴 하지말지.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인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게 선을 넘는 경우도 생긴다. 진심과 관계는 다르다. 그런데 관계를 빙자해, 또는 관계를 최우선으로 내세워, 이제 우린 이런사이니까 뭘 어떻게 하자 라든지. 이런건 정말 질색이다.


꽃을 참 좋아한다. 집에 엄마의 취향때문에 화초는 많지만 꽃만 단독으로 사온 기억이 없다. 보는건 좋아하는데, 아직 선뜻 길러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집에 마당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아무튼 예쁜 꽃은 보는 사람을, 또는 받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허브나 선인장은 싫어한다. 허브향도 싫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물은 허브화분만 받았다. (아마 꽃은 금방 시들고 버려지니까 그렇기야 하겠지만..) 좋아하진 않지만 다행히 집에 잘 모셔놓고는 있다. 솔직히 말해 내게 눈길을 받지는 못한다. 선인장은 굉장히 예민하게 생긴 식물이다.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도란도란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란도란 프로젝트 새 프로필 사진  (0) 2014.04.25
15.손가락  (0) 2014.04.21
14.선인장  (0) 2014.04.20
13.눈빛  (0) 2014.04.11
12.연필  (0) 2014.04.02
11.염색  (0) 2014.04.02

설정

트랙백

댓글

 

*눈빛


눈빛은 그 사람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 마디 대화 없이도 눈빛을 보면 ‘강하다’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서로 대화를 열심히 하지만 눈빛을 보면 현재 대화에 집중을 안하고 ‘아, 이 사람이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눈빛은 거짓말을 못한다. 나는 사람의 눈빛을 잘 읽는 편이다. 눈치가 빨라서 그런가. 눈빛만으로도 어느정도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물론 복잡한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단편적으로는 알 수 있다. 

물론 눈빛을 속일 수 있다. 눈빛을 속이려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자기 자신을, 속여야 한다. 나 역시 눈빛을 속인 적이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눈빛을 속이려면 그대로 내 심리상태가 눈빛에 반영되기 때문에, 마음까지 온통 다 속인 적이 있다. 완벽하게 눈빛을 속일때까지는 내 안에서 수많은 갈등과, 인지부조화가 일어난다. 눈빛을 속여 이야기하는 시간은 굉장히 짧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내 안에 있는 신념들이 흔들렸었다. 그 후로 두 번다시 눈빛을 속이려고 하지 않는다. 

아, 눈빛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모든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반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피부, 표정, 눈빛, 근육, 행동, 말투 등등 그 모든 것이. 마음이 맑아야 내 자체도 맑아진다. 아, 그 전에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건강!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병든다. 어떻게 보면 마음과 몸은 서로 순환되는 관계인가보다. 구체적과 추상적의 관계, 그리고 사이.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다. 이 세상에는 신기한 것들이 참 많다. 심심할 틈이 없다.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라는 말을 예전엔 믿지 않았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으므로.. 그런데 그런 사이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내겐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 대해 나보다 어쩌면 조금 더 잘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런 사이가 되기까진 정말 많은 대화가 오고갔다. 사람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고, 이야기해야 상대방도 그 사람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대화가 없으면 동감도 없다. 어떤 이야기든 밖으로 꺼내고 상대방에게 들려주어야 동감이 있고, 비판이 있고,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입장이 정리된다. 이런 과정을 수도없이 반복하고, 반복한 끝에,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람이, 그런 내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치만 앞으로도 계속 시간은 한정적이라,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 또한 한정적이겠지.

생각해보면 기분좋은 눈빛들이 있다. 이를테면, 의심에서 인정으로 변하는 눈빛.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 무한신뢰한다는 눈빛. 불안에 떨며 흔들리지 않고 굉장히 편안한 눈빛.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도란도란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손가락  (0) 2014.04.21
14.선인장  (0) 2014.04.20
13.눈빛  (0) 2014.04.11
12.연필  (0) 2014.04.02
11.염색  (0) 2014.04.02
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스북 페이지  (0) 2014.03.22

설정

트랙백

댓글

 


*연필


1.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거실에서 숙제를 하려고 연필을 깎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더워서 거실을 지나 베란다에 가서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돌아와 앉아서 숙제를 하려는 찰나! !!!!!!!!!!!!!!!!!!!!!!!!!!!!!!!!!!!!!!!!!!!!!!!!!!!!!!!!!!!!!!!!!!!!!!!!!!!!!!!!!!!!!!!!!!!!!!!!!!!!!!!! 왼쪽 엄지발가락에 굉장한 통증을 느꼈다. 발가락을 쳐다보니 아까 정말 뾰족하게 깎아놓은 연필이 내 왼쪽 엄지발가락 아래쪽에 박힌 게 아닌가………………………. 호러다 호러. 어떻게 이럴수 있지……. 일단 연필심이 안에서 부러지면 더 큰일나겠다는 생각에, 아픈 것을 참고 연필을 조심스럽게 내 발가락에서 뽑았다… 킁. 벌써 그게 13년 전 일이다. 지금도 내 왼쪽 엄지발가락 아래엔 박힌 자국이 있다. 점처럼, 연필심이 들어간 것 처럼, 그런 자국이 있다.


2. 연필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페이퍼에 와이어프레임을 그릴때, 나는 12cm자와 연필, 그리고 연필깎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필통에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들고다니다보니, 필통을 열어보면 연필심이 부러져 있는것이 아닌가….. 끙.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나는 샤프를 선택했다. 내 필통에 연필과 연필깎기를 추방시키고 샤프와 샤프심을 넣었다. 그리고 어느날 필통을 열자, 이게 웬일………. 샤프심통을 제대로 안닫아서 샤프심이 다 새어나와 필통 안에서 샤프심들이 자잘자잘 부서져 있는 것이 아닌가…… !!!!!!!!!!!!!!!!!!!!!!!!!!!!!!!!!!!!!! 젠장.너무한 아이들.


3. 아주 가끔, 시간도 연필처럼 다시 지우고, 바꿀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이진욱과 조윤희가 완전 잘 어울리게 나오는 드라마 나인처럼 말이다. 내가 그때 다르게 행동했으면 어땠을까, 그럼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그땐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을까? 등 의 생각들. 하지만 다시 생각을 바꿨다. 아무도 예측할 수도 없고, 번복할 수도 없는 그런 지금의 인생이 더 재미있다. 더 흥미진진하고 더 스릴있다. 친구 Y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설레임에 얼른 잠을 자고 싶다고. 더 신나는 내일이 궁금하다고. 그 말을 한 번이 아니라, 정말 항상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이 내게도 굉장히 좋은 영향을 주었다. 오늘 힘들었어도, 내일은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새로운 시간들을 기대하게 했다. 좋은 마음가짐인 것 같다. 하긴, 이런 생각은 고등학교1학년 2학기때도 했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일의 해는 뜬다’고.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도란도란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선인장  (0) 2014.04.20
13.눈빛  (0) 2014.04.11
12.연필  (0) 2014.04.02
11.염색  (0) 2014.04.02
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스북 페이지  (0) 2014.03.22
10.밥  (0) 2014.03.22

설정

트랙백

댓글

 


#염색


1. 나의 하루는 내 머리가 갈색이였을때, 검정색으로 염색을 하고 싶었다. 친구 Y양에게 물어보니, 검정색은 집에서 염색을 해도 괜찮다고 나에게 일러주었다. 그래서 검정색 염색약을 사들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 아빠가 약주를 하고 계셨다. 그래서 엄마에게 염색을 해달라고 하니, 술을 드셨다며 모른척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오늘은 염색을 못하겠구나, 했는데, 갑자기 청하 한 병에 얼큰하게 취한 아빠가 염색을 해준다고 했다. 음. 일단 고마운데, 과연 그 아빠 상태에서 염색을 할 수 있을까.. 의심을 해봤다. 하지만 내 성격은, 한번 마음 먹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고, 또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아빠에게 내 머리를 맡겼다. 아빠의 손아귀 힘은 굉장히 세서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아빠의 성격은 굉장히 꼼꼼해서 일단 한번 시작하고 나니 굉장히 꼼꼼히 내 머리에 검정색 염색약을 바르는게 아닌가………. 새벽 한 시에 내 머리 염색은 끝이 났다. 이미 엄마는 주무시고 계셨고, 아빠는 내 머리카락에 (나는 머리숯도 많다) 꼼꼼히 염색약을 모두 바르신 후, 유유히 컴퓨터를 하고 계셨다. 나는 정해진 30분이란 시간이 지난 후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모두 감고 나서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추어 보니 머리 염색이 굉장히 잘 되있었다. 물론 검정색이라는 고유의 색 때문에 잘 되었을 수도 있곘지만, 다시 한번 아빠의 꼼꼼함에 놀랐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아빠가 내 머리에 염색약을 발라주리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우리 아빠의 성격은 굉장히 무뚝뚝하며, 살갑지 않다. 3형제 중 첫째로 태어났고, 할아버지 고향이 경상도인데다가 군인이셨기 때문에 집안 분위기 또한 딱딱했다. 덧붙여 할머니 이야기까지 하자면, 우리 할머니는 3형제를 낳으셨고, 군인인 할아버지에게 아주아주 어릴 적에 시집을 갔기 떄문에, 할머니 또한 성격이 살갑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엄마가 아빠에게 시집와서 8년동안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서운함을 굉장히 많이 느꼈다) 무튼 나중에 우리가족이 따로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독립을 하면서도, 집안 분위기가 굉장히 (예전에 할아버지댁에 살던 것을 닮아) 무뚝뚝했다. 누구 하나 애교있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아빠도, 그리고 8년동안 시집살이를 한 엄마도, 그리고 그 밑에서 자란 나와 내 동생도.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때 친구를 부를 떄, 그냥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꼭 성을 붙여서 불러야 편했다. 동생을 부를때도 그랬다. 괜히 이름만 부르기가 어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정말 많이 살가워졌고, 유해졌으며, 정다워졌다. 어떤 이들은 예전의 내 모습을 이야기하면 전혀 상상이 안간다고도 했다.


2. 나는 내 고유의 색을 잃지 않으려고, 지키려고 애쓰는 측에 속한다. 어느 누가 안그러겠냐만은. 사실 그 전엔 지금의 색에 만족을 못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저렇게 변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데 누군가가 그랬다. 넌 지금 너의 모습, 그 자체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내 모습을,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하는 것들을 잃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어쩌면 내가 변하는 것보다, 내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도란도란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눈빛  (0) 2014.04.11
12.연필  (0) 2014.04.02
11.염색  (0) 2014.04.02
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스북 페이지  (0) 2014.03.22
10.밥  (0) 2014.03.22
9.꿈  (0) 2014.03.09

설정

트랙백

댓글


도란도란 프로젝트


안녕하세요.
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지를 개설했습니다.

도란도란 프로젝트란,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는 프로젝트입니다.

담백하고 소소한 글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업데이트 됩니다.
일주일에 조금씩만 여유를 내어 읽어주세요

아!
그리고 이 글들을 함께 읽고 싶은 사람을 살짝 초대해주세요!




 https://www.facebook.com/doranproject



'도란도란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연필  (0) 2014.04.02
11.염색  (0) 2014.04.02
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스북 페이지  (0) 2014.03.22
10.밥  (0) 2014.03.22
9.꿈  (0) 2014.03.09
8.신기루  (0) 2014.03.09

설정

트랙백

댓글

 

#밥


1. 머리털나고 난생처음으로 엄마한테 밖에서 밥을 사 준적이 있다. 나는 21살 때였고, 염리동에서 자취를 하며, 홍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을 적이다. 엄마랑 통화를 했는데, 내가 엄마보고 서울로 놀러오라고 한 것 같다. (잘 기억은 안난다)

엄마는 토요일이 되자 홍대를 방문하셨다. 나는 엄마를 데리고 홍대 미술학원 거리에 내가 좋아하던 ‘이찌방테리야끼’라는 가게를 갔다. 그 가게에서 고기를 찍어먹는 소스가 엄청 달달하며 맛있어서, 그걸 꼭 엄마랑 같이 먹고 싶었다. 엄마랑 둘이 앉아, 지금 어떻게 살고있냐, 밥은 어떻게 먹냐, 아르바이트는 괜찮냐, 는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음식이 나오자 고기 한 점에 소스를 듬뿍 찍어 엄마에게 드렸다.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맛있다고 해주셨다. 나는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많아서, 엄마도 맛있어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소스가 굉장히 달 수도 있었으나, 괜찮다고 해주셨다.

마치 내가 한 음식도 아니면서, 내가 한 음식을 맛있다고 해줬을 때 드는 뿌듯함이랄까.

밥을 다 먹고, 지금보다 어린 나는 지금보다 젊고 날씬했었던 엄마와 함께, 홍대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그 때가 따뜻했을 때라 프리마켓이 했어서, 길거리에서 귀걸이도 구경하고, 지갑도 구경하고, 수제품도 구경했다. 아마 엄마는 이런 문화들을 경험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해서 마구마구 데리고 다니고 싶었다. 그 당시에 만나던 남자친구가 마침 프리마켓에서 공연을 한다고 해서, 저 사람이 내 남자친구야, 하면서 노래도 들려주고 싶었으나 엄마는 다음 약속때문에 엄청나게 아쉽지만 오후 4시쯤 엄마와 헤어져야 했다. 뭐야.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감정이 생각난다. 엄청 아쉽고 시원섭섭한.

아주 가끔은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2. 점점 나이가 들수록 특이한 버릇이 생겼다. 버릇? 습관? 식습관이라는 말이 맞겠네.

어릴 적에는 국이나 찌개 등에 밥을 비벼먹는 걸 좋아했다. 국에는 물론 밥을 말아서 김치랑 같이 먹는걸 좋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어쩌면 본 재료의 맛을 느끼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국과 찌개와 밥은 각각 따로따로 먹게 되었다. 뭐 그럴수도 있지, 하겠지만, 더 웃긴건 카레가 있어도 왠만하면 비벼서 먹지 않고 따로따로 먹는다. (물론 집카레 기준) 볶음밥도 왠만하면 먹지 않는다. 뭐 아예 안먹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난 그냥 따로따로 먹는게 참 좋다. 

어릴 적에는 진 밥이 좋았다. 그냥 부들부들하고, 씹기도 편하고, 목구멍에서 잘 넘어가고. 그런데 커가면서, 그리고 현미밥의 그 꼬들함을 느끼면서 진 밥이 싫어졌다. 

그리고 나는 방금 갓 한 밥을 싫어한다. 엄마가 보통 밥을 해두시면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들 직장에 다니고, 밖에서 밥을 먹고 오는 그런 날이 많아서, 밥을 해두면 대부분은 그냥 식게 된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 식은 밥을 다시 데워먹는 것이 더 맛있어졌다. 어느날 나는 갓 한 밥을 싫어한다고 엄마에게 선전포고하자 엄마가 넌 참 특이하다고 했다.



3. 나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침밥을 챙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나로 인해 든든하게 먹고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아침밥 같은 존재가 되고싶다.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도란도란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염색  (0) 2014.04.02
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스북 페이지  (0) 2014.03.22
10.밥  (0) 2014.03.22
9.꿈  (0) 2014.03.09
8.신기루  (0) 2014.03.09
7.사탕  (0) 2014.02.23

설정

트랙백

댓글

9.꿈

도란도란 프로젝트 2014.03.09 11:41

 


*꿈 : 막연한 꿈


그냥 막연하게 

내 꿈은 건강하게 살고싶은 것. 몸도, 마음도, 생각도, 모든 것이 병들지 않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씩씩하고 건강하게 사는게 내 꿈. 그리고 애교 없는 내가 애교를 부리고, 칭얼대기도 하며, 내가 힘들거나 지칠 때 오래오래 기댈 수 있고, 나를 무지막지하게 사랑해주고, 끝까지 믿어주는 그런 사람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하니까 마음 껏 요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멋진 그릇에 그 요리를 담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 대접하고 싶은 것. 그 사람들과 철학, 문학, 트렌드, 예술 등의 여러가지 분야를 넘나들며 시시껄렁한 담소를 나누고 싶은 것. 커피 향을 무지 좋아하니, 내가 사는 집엔 커피향이 가득 한 것. 움직이는 걸 좋아하니, 저녁을 먹고 밖을 나가 산책을 하는 것. 저혈압인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이른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운동하는 것. 내가 만들어 낸 것들이 사람들에게 소소하지만 유용하게 쓰이는 것. 때로는 눈물을 잊지 않고 울기도 하는 것.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는 것. 보고싶은 영화를 큰 화면으로 보는 것.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 냉장고에 사과가 가득 차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하는 것. 우리 팀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하는 것. 예쁘게 꽃꽂이를 해 식탁에 내가 내킬 때 마다 다양한 꽃들이 놓여있는 것. 사랑하는 가족들이 아프지 않는 것. 그리고 행복한 것.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도란도란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스북 페이지  (0) 2014.03.22
10.밥  (0) 2014.03.22
9.꿈  (0) 2014.03.09
8.신기루  (0) 2014.03.09
7.사탕  (0) 2014.02.23
6.손톱  (0) 2014.02.16

설정

트랙백

댓글